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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독 Mar 24. 2024

활짝 웃어보세요

곱하기

날씨가 조금씩 풀리기 시작할 때 집을 나섰다. 커다란 쇼핑백 안에 처방받은 약을 한 보따리 들고 의정부로 향하는 길이다. 할아버지의 약을 가지고 운전을 해서 의정부에 가는 길은 조금은 무거운 마음이 곁들어 있다. 병을 얻은 이후로는 집 밖을 못 나가셔서 직접 찾아가서 안부를 묻는 일이 최선이다. 문을 열고 인사를 드리면 여지없이 할머니 할아버지께선 웃는 얼굴로 맞이해 주신다.


날이 좋아서 카메라도 챙겼다.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지만 더 늦지 않게 두 분의 모습을 담고 싶어서. 평소 같았으면 이렇게 좋은 날 어디라도 갔을 텐데. 그날은 이상하게 두 사람의 모습을 기록하고 싶었다. 약 보따리를 풀어헤치고 설명을 해드린 뒤 소파에 앉으라고 말씀드렸다.


“ 제가 사진 찍어드릴게요 “

“ 여기 보시고 활짝 웃어보세요 “


사진을 찍어준다는 말에 두 분 다 어색해하셨다. 곧이어 할아버지는 머리를 빗고 보청기를 빼시곤 자세를 잡았다. 할머니는 상의가 맘에 들지 않는 다며 꽃무늬 블라우스로 갈아입으시고 틀니도 끼셨다. 거울을 보며 대충 단정하게 하시곤 소파에 앉으셨다. 하얀 벽지를 배경으로 한 두 사람의 모습은 올곧은 한 쌍의 나무 같았다. 조금은 거친 피부를 가졌고 뿌리 깊은 가을의 낙엽을 지닌 나무.


어색한 웃음과 표정. 렌즈를 쳐다보는 게 익숙하진 않아도 너무 예쁜 모습에 나도 덩달아 미소 지었다. 손을 꼭 맞잡고 때로는 팔짱을 끼며 여느 사랑하는 연인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그 모습을 눈으로도 담으며 평생 기억하겠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그날의 그 순간은 더할 나위 없이 소중했기에.


좋은 기억은 오래 남곤 한다. 그게 곧 그리움이 될지언정 그전에 추억으로 물들어서 서로의 머릿속에 윤슬처럼 일렁인다. 특별한 날을 만들려고 애쓰기보다 평범함을 특별하게 만든다. 웃는 모습이 예쁘고 너무나도 닮고 싶은 두 사람을 늘 기억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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