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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독 Apr 15. 2024

기다림

빼기

서울숲을 걷는다. 사람이 기분 좋게 느끼는 17도의 초저녁 공기를 느낀다. 날이 좋아서 그런지 사람이 많다. 겨울이 길었던 만큼 봄이 짧게만 느껴지는 순간이다. 겹벚꽃이 피고 목련과 복숭아꽃이 피었다. 초록색 잔디를 배경 삼아 걷는다. 해가 지기 시작하는 시간에 노을은 주황색의 빛을 내리며 서서히 사라져 가는 중이다. 그걸 보며 걷는다. 많았던 생각을 아무렇지 않게, 아무 생각 없게 치우기 위해서.


볕은 나무들 사이로 내리쬐었다. 그림자와 겹쳐서 아름다운 액자처럼 눈에 담겼다. 꽃나무들은 만개를 이루어 제각기 매력을 뽐내고 있었다. 그중 조금 늦은 나무들이 있는지 아직도 피우지 못한 것들이 있다. 어떤 나무들은 화려함을 다하고 초록색 잎으로 익어가는 중인데. 자세히 보니 건물에 가려 볕이 잘 닿지 않는 곳에 있는 것들은 아직 피워내지 못했나 보다. 그래도 봉오리를 힘겹게 뜯어가며 헤어 나오려는 게 보인다. 모두가 꽃피울 계절에 누구는 피우고 누구는 피우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나름 애쓰는 중이겠다 싶었다.


뭐든지 시기가 있다고 믿는다. 환경과 배경이 그래서 쉽게 피우지 못하는 사람들. 언젠가 피우길 원하는 사람들. 조금은 느리게 꽃 피우는 사람들. 과정을 즐기고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 어렵게 피워낼 것이라 남들보다 더 소중하게 간직하는 사람들. 늦게 피워 짧게 있다 져버리지만 아쉬운 만큼 최선을 다했던 사람들. 무엇보다 외로움을 잘 아는 사람들. 남들은 폈는데 나 혼자만 못 폈다는 억울함을 갖지 말기. 그 자체로 아름다운 사람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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