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은 기억의 재료다

*히야시샤브, 돈토로 :후함동 竹本(타케모토)

by HERMI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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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를 타고 싶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매일 타야 하는 바퀴 달린, 形形色色(형형색색)의 한 줄로 빼곡히 도시를 달리는 <버스> 말고, 전기로 짙은 어둠을 뚫어 버리는, 정시성의 <지하철> 말고, 높은 하늘을 가르는, 지금 이 순간에도 浮揚(부양) 하고 있을, 보기만 해도 설레는 바로 그 ‘비행기’ 말이다. 서울, (서) 쪽에 오래 머무르면 어느 方位(방위)에 있는 사람보다 비행기를 가까이에서, 자주, 또 그 탈것에 오르내리는 사람들을 계속해서 만나야 한다. 조금 높은 곳에 오르면 착륙을 준비하는, 하늘길에 오른 평소보다 가까이에 있어 더욱 거대하게 보이는 머리 위에 비행기를 마주하고 황금색 9호선 열차 환승 구간에는 [김포공항] 비행 스케줄을 알리는 TV 화면을 보며 ‘급행’ 열차를 기다린다. 에스컬레이터에는 줄지어 여행에서 막 도착한, 그리고 이제 막 떠나는 커플과 가족, 그밖에 사람들이 상, 하행으로 교차하듯 猜忌(시기)와 嫉妒(질투)를 마주하는 순간을 지난다. 이 모든 것들은 이제 막 旅行(여행) 길에 오른 당사자일 땐 못 본 듯이 지나치는 것들이다.


여권’을 손에 들어본 지 얼마나 지났을까. 서랍 안 어딘가에 잘 지내는지 安否(안부)를 묻고 싶다. 혹여나 유효기간이 훌쩍 지나 갱신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캐리어 위에 하나씩 ‘제주’가 쓰인 희고 파란 쇼핑백이 눈에 들어온다. (안에는 구좌읍에서 만든 [백년초 초콜릿]이나 타르트 같은 게 들어 있을 것이다 아니면 귤향과즐이거나) 그 옆에는 최소 한 시간 이상은 준비했을 것 같은 세팅된 머리와 단단해 보이는 제복, 저 사람들은 하늘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어느 해엔, 두 달에 한 번 비행기를 탔던 해가 있었다. 그리고 그곳은 주로 섬이었다. 美味(미미)를 채워 올 수 있었고, 물론 그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이유가 되었지만 어딘가 갈 수 있는 ‘동굴’이 있다는 자체만으로 위안이 됐다. 숨기도 하고, 도망치기도 했던 두 곳은, 비행시간이 조금 달랐다. 한 곳은 한 시간 사십 분에서 두 시간 남짓, 다른 한 곳은 한 시간 이내였다. 기내에서 착륙을 기다리는 동안 눈을 붙일 수 없을 만큼 고대하던 순간들이다. 창밖의 구름은 돌아오는 하늘길보다는 날아가는 날이 더 낭만적이고, 보통은 일찍 도착하는 비행 편을 골라 하루를 길게 보내려 애썼다. ‘섬에 하루는 도시보다 짧으니까’.


섬에서 쓰는 화폐가 조금 달라 때마다 방법은 조금씩 달리했지만, 도착해서 하는 건 비슷했다. 가고 싶은 가게를 지도에 표시해두고, 직접 운전해서 가거나, 몸을 실을 수 있는 대중교통으로, 때론 무자비한 도보만으로 이동해 다시 돌아가는 비행기는 까맣게 잊은 채로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거나, 마음에 드는 어느 한 장소에 하루 종일 머물면서 갖고 있던 계획을 수정해 본다거나 그동안 어질러놓기만 했던 머릿속 생각의 방들을 하나씩 정리하는 일. 그러다 허기가 찾아오면, 탄탄하게 리스트업 되어 있는 美食(미식)의 현장들을 훑어보면서 언제든지 박차고 나가, 쉴 새 없이 사진을 찍어대는 日課(일과)가 바로 지금 기억 속에 희미한 旅行(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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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도 맛있는 걸 먹어보겠다고 그렇게까지 하겠냐고 누군가는 물었지만 그랬다. 어떤 침대에 누워 푹신함의 정도가 어땠는지를 설명하는 것보다, (물론 숙소 컨디션은 매우 중요하다) 어떤 음식을 어떤 계절에 무엇과 곁들였었는지를. 떠올리는 편이 몰입에는 훨씬 유리하다. 시간이 흘러 희미해지는 기억을 붙들어놓는데도 그 짧은 순간들, 어쩌면 전체를 놓고 봤을 때 찰나 일지 모를 작은 시간에 의지하고, 힘을 내며 언젠가는 또다시, 그러한 장소에 가보고야 말겠다는 다짐으로 일상을 견딜 수 있는지도 모른다.


거기에 그때 만들었던 맛의 기억과 쌓은 경험만큼, 더 새롭고 珍貴(진귀) 한 것들이 가보지 않은 세상 어딘가에 반드시 존재하고 있을 거라는 희망, 어딘가에서 애타게 찾아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곳을 다시 한번 발견하고야 말겠다는 기대. ‘맛은 기억의 材料(재료)’다. 당장은 섬으로 도망칠 수 없어 [후암동]에 간다. 그리고 <타케모토>의 고요한 문을 열었다. 여기다. 安息(안식)으로 떠나던 그때, 도망치듯 날아갔던 섬에 이제 막 도착했다. 먼저 도쿠리를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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