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쪽 하늘의 축복

*초밥 :강서구 등촌동 스시현

by HERMITAGE


일상을 사랑한다. 하릴없이 거니는 거리, 낯설기만 하던 골목, 타지 않을 것 같던 초록빛의 자전거, 전보다 자취를 감춘 전동 킥보드, 자주 드나들던 카페, 걸어서 다닐 수 있는 가게가 모두 일상이 되어 들어왔다. 어디로 갈지 방향을 떠올리면 얼추 근방까지는 무수한 길들이 머릿속에 떠오르니까 분명한 일상이 맞다. 닮고 싶은 한적한 낮에 반했다. 하루만이라도 편안하기만을 바랐던 여러 날 중에서 시간이 멈춘 것 같은 기분, 사람들이 제각기 녹초가 된 몸을 끌고 집으로 또 내일을 위해 황급히 걷는 모습 대신, 유유자적 땅바닥을 쓸어 담는 무던함에 눈이 간다. 비슷하게 몇 발자국 걷다가 서둘러도 보지만 낮에는 역시 이 시간만의 분위기가 있다.


간밤에 뜨겁게 타올랐던 거리의 온도가 찬찬히 사그라든다. 잔열은 남았지만 정화의 단계를 지나 다시 찾아올 아쉬운 밤이라거나 주말을 매섭게 달리는 거리의 풍경을 준비한다. 꾸준하지만 치우치지 않을 소소한 시간을 만들어가기 위한 작업이다. 지킬과 하이드처럼 둘은 하나다. 밤은 확실히 다르다. 낮보다 생각의 허기는 강해진다. 어디에 들를까. 멀리 가기에 지난한 하루는 너무 길었다. 어쩌면 고민하는 자체가 휴식이 필요한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 하루를 보내고 어떤 시간으로 저녁을 채워야 할까. 되도록 텀을 두어야 한다. 무엇 하나라도 물리는 기분이 들고 싶지 않아 그렇다. 자칫 소중함을 잃어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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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이라는 생각이 들면 차라리 미웠다. 애증이라고 해야 할까.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이끌린다. 禁斷(금단)을 그리기만 해도 선명하다. 느껴지는 모든 것에 여전히 기대가 남았다. 조금씩 더 알게 되었다고 생각할수록 알 수 없는 수렁에 빠진 것만 같다. 어쩌다 일상을, 그 일상에 녹아있는 이곳을 사랑하게 된 걸까. 그날은 평범해 보이는 어느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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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한 끼는 소중하다. 고심은 많은 기대를 걸었고 신중했다. 기왕이면, 가능한 범위 안에서 선택은 어느새 지역을 막론하고 랜드마크를 건설해 냈고 거리의 상징이 되어주었다. 그렇게 조금씩 일상은 구체화되었다. 설명하고 싶어지는 장소와 소개할 맛은 바라던 대로 점점 다양해졌다. 가장 일상적인 곳에서 어떤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포장을 해왔다. 이 순간까지 헤아릴 수 없는 시도가 있었지만 두툼한 비주얼만으로는 반신반의했다. 언제나 외형만으로 판단하는 것은 서툴고 조금 이르니까. 천천히 다가가야 했다. 조급하지 않은 감상은 늦은 저녁에 낮을 닮은 여유가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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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에는 정적이 흘렀고 소중하게 포장해 온 종이로 된 용기와 둘 뿐이었다. 의도치 않게 분위기는 무르익었다. 가장 잘 어울릴만한 옷을 입고 있었고 그에 가장 곁들이기에 좋은 것을 준비해 채우기만 하면 되었다. 떨림과 설렘은 그렇게 찾아왔다. 너무 아파도 그렇지만 놀라거나 당황한 기색도 지나치면 오히려 차분하다. 몸서리친다거나 큰 소리를 낸다는 건 미안한 말이지만 얕은 일렁임일지 모르겠다. 그러게 한동안 정적은 이어졌다. 고요한 공기 위로 [Ryuichi Sakamoto]의 <Merry Christmas Mr. Lawrence>가 흘렀다. 분위기는 고조되었고 하루를 참아낸 모든 것들이 너그러이 이해되는 시간이었다. 이곳에 닿으려고 여기까지 왔구나. 드디어 도착했다. 그리고 여전히 말없이 정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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在野(재야)의 고수를 만났다. 중독된 감정을 깊이 있게 알아가고 싶어졌다. 가게로 가야겠다. 이번엔 포장 대신 ‘카운터 좌석’ (닷지)라고 부르는 자리에 앉았다. 대체로 밖은 추웠고 안은 자세히 보이지 않아 문을 열고 머리를 밀어 넣는 것으로 시작했다. 투박해 보이는 고수는 상반되게도 보이는 것만큼 거칠게 상냥했다. 인사는 다정했고 시작과 끝이 한결같았다. 두툼한 생선만큼 도톰한 손으로 누구보다 예리한 칼을 꺼내 능숙하게 이야기를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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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히 설득당한 뒤였지만 가장 인상적이었던 첫인상은 처음 온 사람도 여러 해 동안 다녀간 적이 있었던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자연스러움이었다. 잘은 모르는 부동산시장의 심각성에 관한 이야기, 그보다 중요한 <재벌집 막내아들> 같은 희대의 역작을 시청하는지와 같은 중요한 문제에 대해 진지한 토론이 이어진다.

어쩌면 그보다 심각한 여러 주제들이 있겠지만 입이 즐거워지는 동안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밤은 깊어가고 자리를 정리하고 나설 때면 예보에 눈이 많이 오니까, 내일은 밖에 나오지 말고 집에만 있으라는 ‘고수’의 애정 어린 바람에 치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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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MI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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