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램버거 :브루클린 더 버거 조인트
마침내, <램버거>를 고른다. [맥도날드]의 <더블쿼터파운드치즈버거>가 없던 시절, [치즈버거]를 시작으로 고민 없이 <빅맥>을 고르던 때가 있었다. 엄마 손을 잡고 백화점을 갈 때면 버스정류장에 내려 붉은 간판과 샛노란 로고에 매혹되어 이끌려 들어갔던 그때 그 ‘패스트푸드점’은 간판부터 올록볼록한 것이, 동네의 백반을 파는 얌전한 일반 음식점들 이랑은 입구에서부터 결이 달랐다. 무거운 문을 겨우 밀고 들어 서면 어느 지점이나 비슷한 구운 패티 냄새와 기름 연기로 코팅된듯한 미세하게 미끄러운 바닥, 부자연스러우리만큼 분장을 하고선 빨간 곱슬머리 아저씨가 꿈에 나오는 건 아닐까 조금은 무섭기도 했다.
건강에는 좋지 않을 거라며 염려 섞인 표정으로 쿠션감은 없지만 있어 보이는 빨갛고 하얀 의자에 앉은 그 시절 초보 엄마는 작은 손으로 버거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미국 솔트로 뒤범벅된 프렌치프라이를 집고 있던 를 귀엽다는 듯이 관찰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신이 직접 만든 반찬보다 빅맥을 더 허겁지겁 먹는 모습에 조금은 질투가 났을게다. 지금은 없어진 청량리의 한 낡은 극장 옆 맥도날드를 그렇게 종종 건강한 저염의 식탁에서 일탈을 명목으로 구슬려 데려가곤 했었다.
프랜차이즈 브랜드는 그 이후로 꾸준히 발전해 왔다. 풍부한 경험으로 쌓아 올린 상당 수준의 입맛을 가진 사람들의 ‘니즈’를 반영하고, 프리미엄화를 시도했다. 현지의 맛을 추구하는 노선부터 브랜드를 수입하거나 독자적인 노하우로 새로운 브랜드를 창조하면서 일명 사진이 잘 나오는 비주얼로 맛까지 챙겨 넣은 ‘고오급 버거’들이 곳곳에 나타났다. 어느 순간 프리미엄 버거는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았고 한철의 유행도 아니요, 단지 한 끼 가볍게 때우는 패스트푸드에서 진화해 진정성 있는 음식으로, 영혼을 갈아 넣은 음식으로 누군가에게는 한국인의 뜨끈한 국밥처럼 ‘소울푸드’가 되었다.
소울을 흔들 선택지가 다양해지는 건 언제나 반가운 일이다. 거기에 기억에 남을 기막힌 메뉴, 아주 자주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종종 ‘어느 타이밍’에 생각나는 한 가지 메뉴로 손에 꼽는 ‘버거’는 주로 소주를 많이 마신 다음날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본능이 있다고 해야 할까. ‘해장’에도 ‘파’가 있다며 (확실한 건 꼭 해장국을 먹자는 주의는 아니다)이 같은 논쟁은 다양한데 정리해 보자면 주류마다 그 방식은 조금씩 달라진다.
우선 와인의 경우, <곰탕> 같은 김치와 어우러진 한식이 더 큰 비중을 두고 떠오르는 반면(아마도 마리아주의 영향은 아닐까) 얼큰한 소주를 여러 병, 그것도 지속적으로 오랜 시간 마셔온 밤이었다면, 다음날은 ‘기름’ 그것도 엄마가 지었던 표정만큼이나 지나치게 염려스러운 녹진한 무거운 기름이 생각난다. 그때 주저 없이 등장하는 메뉴가 수제버거다.
여러 브랜드마다 고민을 줄여주는 메뉴가 단언컨대 하나씩 있다면, [브루클린]에서는 그게 바로 <램버거>다. 양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보다 어떤 표현으로도 형용하기 어려 우리만큼 자주 떠올리는 사람에게 이 메뉴란 거나하게 실력자가 구워주는 양고기를 한 점 한 점 먹어가며 어린양의 풍미에 취하기엔 조금 부담스러워 주저하다 결국, 발길을 돌려 구웠던 지난밤의 삼겹살집에서 소주를 어정쩡하지 않게 마신 다음날 점심으로 먹기 좋게 담아놓은 축소판이자 미니어처가 되어준다.
간편하고 기름진 데다 사이드 메뉴만 조금 도와주면 공허함을 채워줄 만큼 배도 부르다. 빠트릴 수 없는 코울슬로와 콘샐러드는 정신을 또렷하고 맑아질 수 있도록 거드는데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앞서, 그 위에 테이블 한쪽에 준비되어 있는 후추 그라인더로 마스터 셰프처럼 과격하게 돌려 갈아주면 완성이다. 완벽하게 해장이 된다기보다는 숙취가 남긴 공허함과 오락가락하는 체온을 다시금 정상화할 수 있도록 든든함으로 채워 주는 인상이라고 할까. <램버거>는 종종 [브루클린]에 들르게 하는 메뉴다. 들어서기 전부터 이곳에 가기로 한 날이면 가는 동안 머릿속으로 이미 주문을 마친 상태다. ‘램버거요’ 그리고 부랴부랴 점심에 어울리는 차가운 생맥주 한 잔을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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