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료의 本質(본질)과 骨格(골격)

*감베리 피스타치오 파스타 :역삼동 비네트

by HERMITAGE


역삼동 뒤안길을 걷는다. 여름을 발견하고 아직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더위를 짊어질 때였다. 익숙하게 지나오던 길들을 뒤로하고 설렘과 호기심이 깔린 걸음으로 낯설기로 한 길을 마저 지나 보낸다. 본 적 있지만 가본 적 없는 풍경과 낯선 동네의 일상이 물밀듯이 들어온다. 여유 있는 점심 나절의 향수가 이곳 방향으로 피어올라 가는 내내 떠올리고 상상해 보기를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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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번에 정체성을 꿰뚫어 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알아차리고 발견해 내는 과정이, 이를테면 서로가 주고받는 티키타카처럼 말없이 낸 문제에도 짙은 호응이 따라만 준다면 그만큼 부드러운 전개는 없다. 많은 대화를 나눠보지 않아도 애써보려는 마음만 있다면 추측할 수 있다. 첫 번째 문제는 우직한 眞僞(진위)를 알아봐야 하는 대목이었고 그건 너무 하릴없이 조용하기만 해서 동질감이 느껴졌다. 알아보고야 말겠다는 믿음을 전제하에 깔리는 차분함은 보챌 것도 초조할 것 없는 여유 있는 미덕으로 남았다. 미처 헤아리지 못한 여러 방면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정체성만큼은 그랬다. 단번에도, 한순간만으로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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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남이 해준 파스타가 아니다. 사람도 음식도 말 수는 적지만 진하게 드러나는 개성은 별다른 설명 없이도 직관적이다. 손글씨로 적어 넣은 메뉴판의 모양처럼 자세히 들여다보면 알아차릴 수 있는 이름 그대로의 정서가 완연하다. 와인이 말하는 밸런스가 음식을 먹는 내내 입안에서 균형을 맞추고 있다고 해야 할까. 모양새는 팽팽하다기보다 맛의 질량이 충분해 흐트러짐이 없다. 단단한 와인을 선호하는 편이 아니지만 음식의 맛에서만큼은 다르다. 그래서 언제나 특이한 식재료 파격적인 시도에 눈이 간다. 무엇이든 실험해 보기를 좋아하는 호기심이 두 번째 문제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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起承轉結(기승전결)을 사랑한다. 객관적인 사실만을 근거로 보도해야 하는 기사의 육하원칙보다, 집착해 마지않는 내러티브, 스토리텔링의 과정이다. 식탁 위에서도 마찬가지다. 에어컨으로 충분히 쾌적함을 갖춰놓은 실내에서도 오는 길에 나타났을 첫 번째 葛藤(갈등) 구조인 渴症(갈증)을 달래줄 물 한 잔을 깨끗하게 닦아 놓은 유리잔에 가득, 보다 조금 못 미치게 따라낸다. 반복된 호기심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등장인물인 메뉴를 차분히 소개하고 주연 배우들 읊는 것으로 추천 메뉴를 각인한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는 동안 와인의 온도를 낮추고 넓고 깊지만 긴 빈 잔이 테이블 위에 오브제처럼 자리를 잡고 나면 ‘Antipasti’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사건이 하나 둘 발생해 테이블 위에 오른다.


세 번째는 빈틈없는 자신감이다. 바질 페스토에 피스타치오가 섞여있다. 개성을 좇는다기보다 극복할 만한, 실험과 도전을 통해 간극을 좁혀갈 만한 에너지를 그것으로부터 얻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확신이 서야 가능한 일이겠지만 파를 나눠 갈등하기도 하는 재료가 드러나도록 만든 파스타는 기호의 여부를 떠나, 설득할 만한 신선함으로 플러팅 했다. 평소에 선택하지 않는 이름이지만 한 번쯤 걸어 볼 만한 정도에 시작으로 그칠 줄 알았다면 한 그릇을 비워내는 동안 설득에 이러 조금 당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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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선호하는 재료에 킥이 들어간다면 어떨까. (양)을 보면 그렇고 라구를 읽을 때 그렇다. 기출 변형은 즐겁다. 찾아오는 미묘한 변화를 알아가는 재미는 絕頂(절정)에 다다르게 한다. 나아가 본연의 색을 잃어버리지 않고 우직하게 고수하는 경우가 더욱 그렇다. 불호의 세계에 매몰되어 타협하고 마는데 스토리의 중간쯤에서 느낀 균형의 정서가 다시 찾아오면서도 동시에 초반부에 느꼈던 우직한 진위를 한 스푼 입에 넣고는 풍미를 관찰했다. 首尾相關(수미상관)에 늪에 빠진 듯 미식의 시간은 돌고 돌아 처음 제자리로 돌아왔다.


붉게 타오르는 와인을 조금 나눠 마시는 동안에도 그랬지만 짤막하게 와인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 요리부터 와인까지 준비해 직접 내어주는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전개로 이어졌다. 페어링으로 맛을 극대화해 보는 것 대신 직관적으로 표현되는 맛을 온전하고 균형감 있게 끝까지 유지하는 게 전반의 흐름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을 끝으로 마지막을 알리는 ‘Dolce’가 등장한다. 끝난 줄 알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마지막 장면에는 육중한 섬세함이 남았다. 선호하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대적으로 경험치가 적어 깊이 있게 동화되기 어려운 디저트가 기억 남을 만큼 기분 좋은 맛을 보여주는 것으로 은은하게 찾아오는 달달한 반전으로 매력적인 이야기는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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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HERMI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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