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허세였지만 지금은 진심
드디어(?) 코로나에 걸리고 이제는 뭐라도 하자 싶어, 회사 근처 무교동 맥도날드 지하에 있는 요가원을 찾았다. 그 때가 22년 3월이었다. 일주일에 두 번 점심시간에 요가를 했는데, 제 아무리 코로나 시국이었어도 광화문 점심시간 요가원은 30여명의 직장인들이 다닥다닥 붙어 앉아 마스크를 끼고, 꽤나 위험한 요가를 했어야 했다. 이 요가원을 1년 6개월 정도 다녔다.
23년 7월, 친구와 함께 떠난 발리 요가여행을 기점으로 나는 새로운 요가원을 찾아 나섰다. 더이상 환기도 안 되는 지하에서 전쟁같은 요가를 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하타요가를 제대로 배우고 싶었다. 다니던 요가원 수강기간이 몇 개월 더 남아 있어서, 일요일에 원데이 수업이 있는 요가원을 따로 알아봤다. 성신여대 근처 요가원에서 일요일 오후 2시간짜리 하타요가 수업이 있었다. 이거다! 그런데 막상 가봤더니 이 수업은 현직 요가강사들이 고난도 아사나를 배우는 워크숍 형식이었다. 다정한 원장님의 격려로 4번 정도 수업에 참여했으나, 내가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다시 일요일에 여는 요가원을 검색했다. 그러다 이번에 찾은 요가원은 이화여대 근처의 신생 요가원. 발리 스타일 공간에, 음악도, 향도 좋은, 오감만족을 주는 요가원이었다. 5번 정도 수업을 들어보고 50회권을 끊었다. 주중에는 집에서 수련할 요량으로 온라인 요가원을 알아봤고, 24년 1월부터는 아침에는 줌으로 요가 수업을 듣고, 주말에는 이대 앞 요가원에 가서 수련을 했다.
이렇게 의욕 가득한 채 출발했던 24년이었는데, 봄에 이석증과 전정기관염이 발병해, 어지럼증 이슈로 얼마간 요가를 하지 못했다. 간간히 온라인 요가만 소극적으로 하던 때다. 그러다 9월에 새 부서로 인사이동이 있었고, 환경이 바뀌어서인지 어지럼증이 많이 완화되어 25년부터 다시 요가를 제대로 시작할 수 있겠다 싶었다.
다시 요가를 제대로 해야겠다 마음먹은 날, 점심 먹고 회사로 돌아가는 길에 후배가 알려준 회사 근처 요가원에 등록했다. 그 요가원에서 하타요가를 수련한 지 어느덧 1년이 되었다. 여기서 1년간 나의 요가는 호흡도, 아사나도 많이 성장했다.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아 부장가사나에서 고개를 뒤로 젖힐 수 없었던 내가, 이제는 가슴을 활짝 열고 편안하게 호흡한다. 아무리 두 손으로 바닥을 힘차게 밀어도 좀처럼 매트에서 떨어지지 않던 무겁디 무겁던 내 정수리, 이제 매트에서 정수리를 띄우고 우르드바 다누라아사나를 해낸다. 머리서기도 하고.
요가한 지 얼마나 되셨어요? 라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이렇게 3년 정도 되었다고 대답한다. 이제 해가 바뀌었으니 4년 정도 되었다고 대답하는 게 맞겠네. 나 스스로 이 정도가 내가 제대로 요가한 기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가를 언제 처음 해 보셨어요? 라고 질문한다면 이야기가 한참 달라진다.
처음 요가를 한 건 무려 2003년이었다. 그것도 캐나다의 해밀턴이라는 도시에서. 캐나다 어학연수 시절 3개월 정도 머물렀던 해밀턴의 한 대학교에서(아마도 평생교육원 프로그램이었던 것 같다) 심리학과 요가 수업을 들었다. inhale, exhale만 주의깊게 들으면서 적당히 동작만 따라했던 시절이었다. 기억나는 건 선생님이 동작 시범을 보이면서 방구를 자주 꼈다는 것과 늘 가지고 다니던 월마트에서 50불 주고 산 보라색 요가매트다.(이 요가매트는 지금도 우리 집에 있는데, 두 번 접힌 채 다른 운동기구의 소음방지 역할을 하고 있다.) 그 시절은 요가수업을 들었다는 사실 외에는 뚜렷이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없다.
오히려 ‘요가’에 얽힌 뚜렷한 에피소드는 그로부터 2년 후, 지금 다니는 회사 입사면접장에서였다. 내가 입사지원서에 ‘취미는 요가, 특기는 요리’라고 적어 놓았던 것. 남들 다 적는 ‘독서’, ‘영화감상’과 같은 평범한 것을 적기가 싫어서, 내 딴에는 나름대로 필승 전략을 가지고 뽑은 아이템들이었다. 떡볶이, 파스타 등 나름대로 요리를 곧잘 하는 편이었고, 요리는 창의적 작업인데다 여성성도 좀 뽐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요가는? 당시 학교 후문 쪽에 요가원이 새로 생겼는데, 입사원서를 쓸 당시가 등록을 해서 한 달 정도 다닐 때였다. 뭔가 최신 유행하는 운동을 취미로 즐기고 있다는 건강하고 세련된 이미지를 주고 싶었던 것 같다. 4학년 취준생이었던 터라 이래저래 바빠서 결석한 날이 더 많았고, 그 다음 달부터는 요가원에 나가지 않았다.
그러고 두 달 후 임원면접장에서 한 임원이 이런 질문을 했다. “***씨는 요가가 취미네요. 우리 직원들의 건강을 위해서 입사하면 직원들에게 요가를 가르쳐 줄 수 있습니까?” 오마이갓. 지금이라도 한두 달 배운 게 다라고 고백해야 하나 잠깐 고민하다, 정신차리고 내가 했던 대답은, “두 달 정도 시간을 주시면 프로그램 잘 준비해서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얼마 전 요가강사 자격증을 따고 원데이 클래스를 연다는 소식을 인스타로 알린 날, 그 때 면접장에 같이 있었던 입사 동기가 “예전에 면접볼 때 면접관이 입사해서 요가를 가르칠 수도 있느냐고 물었던 기억이 난다”며 댓글을 남겼다. 그 때 요가를 말로만 뽐냈던 나는 마침내 20년이 지나 진짜 요가를 가르칠 수 있게 되었다.
요즘은 평일엔 회사 근처 요가원, 주말엔 이대역 요가원에 다닌다. 권태기가 와서 몇 달 쉬기도 하고, 어지럼증 이슈로 하고 싶어도 하지 못했던 얼마간의 기간도 있었지만, 요가와 함께 한 4년 가까운 시간은 한결같이 좋았다. 20년 전 시작은 허세였지만 지금은 진심으로 요가를 하고 있다.
진심으로 요가한지 이제 4년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