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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u Dec 18. 2024

엄마에게도 빛나던 날이 있었다.

아직 뭐든 시도하고 빛날 수 있어!!


까르르 웃으며 교복을 입고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거나 친구들과 함께 걸어 다니는 어린 여학생들의 모습을 보면 마음 깊이 아련한 마음이 들곤 한다. 딸이 없어서인지 그 시절의 감사함을 만끽하지 못함인지 이유는 알 수 없다. 수능이 끝나고 아직 고등학생의 모습을 벗지 못한 시기에 친한 대학생 언니들이 말했다. “아직 어려서 피부도 좋고 화장을 안 해도 귀엽고 예뻐. 지금이 정말 좋을 때야 “. 하지만 그 말에 1%도  동의할 수 없었고 놀리는 건가 싶어 기분이 좋지 않았다. 대학생 언니들은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말투로 상큼한 외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하지만 10대의 끄트머리에 서있던 그때의 나는 여드름이 남아있는 피부와 고등학교 내내 붙은 퉁퉁한 살들 그리고 차림새마저 초라한 몰골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 모습 그대로 얼마나 아름다운 어린 날의 모습이었는지 40대가 된 지금에서야 뒤늦게 깨달았다. 언니들의 말들이 모두 진심이었다는 것까지.


항상 바쁘게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다 보니 가끔은 날짜가 지나가는 것도 잊고 나이 세는 것도 잊을 때가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잠시 숨을 돌리면서 돌아보면 잊고 있던 것들 혹은 보지 못했던 모습들이 보이곤 한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엄마로만 살아왔기에 ‘~엄마’가 익숙하면서도 싫었던 적이 있었다. 자신의 존재에 대한 애착이 강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아이가 아닌 ‘나’ 자체로 보는 상황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핸드폰 가득 차지한 무수한 전화번호는 아이의 학원 선생님이나 아이 친구 엄마로 모두 채워졌고 가족을 제외하면 그들의 연락처가 전부였다. 우연히 남편과의 대화에서 서로에게 저장된 너무 다른 전화번호 목록을 보고 사회와의 단절을 뼈저리게 느낀 순간 머리에 정을 맞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마음은 사회의 일부가 되어 달려 나가고 싶었지만 현실은 양쪽 다리에 매달려 수시로 엄마만 불러대는 아이들과 씨름하며 하루살이처럼 매일을 살아내야 했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인 날들로 아이들은 엄마의 품 안에서 무럭무럭 행복하게 자라나고 있었지만 엄마는 점점 더 사회라는 울타리에서 소외되고 밀려나는 것 같아 마음 한구석이 항상 시렸다. 아이의 친구 엄마들과도 나이, 취향, 관심 분야가 다르다 보니 잠시의 즐거운 시간을 보내긴 해도 친구처럼 잦은 만남을 갖거나 관계들이 길게 지속되는 건 힘들었다. 마주하는 그런 상황이나 사람사이의 관계가 점점 버겁고 어렵게 다가왔다. 단절된 시간 속에 혼자가 된 채로 계속 집 안에서만 머무는 아이들의 엄마로 남은 인생을 통째로 날려버릴 것 같아 두려워지기 시작했고 앞으로 살아야 할 날이 더 많이 남아있음을 절절히 느꼈다. 나이가 더 들어 정말 늦어 시작도 못하는 상황이 오기 전에 해보고 싶은 뭐라도 할 수 있는 일들이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혼자가 된 시간이면 공부도 하고 싶고 자격증도 따고 싶고 책도 많이 읽고 싶고 운동도 해보고 싶었다. 남편도 아이들을 돌보면서 남는 여유시간에 원하는 공부를 하거나 취미생활 갖는 걸 적극 찬성했고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아이 엄마로서가 아니라 나라는 존재 자체로 아직 할 수 있는 게 많다는 자신감이 생겨났다.


유난히 호기심도 많고 여기저기 기웃대길 좋아하는 성향은 어릴 때부터였다. 관심이 가는 건 다 한 번씩 해봐야지 안 그럼 속병이 나서 못 견뎠다. 어린 시절 유난히 라디오를 좋아해 항상 라디오를 곁에서 주파수를 맞추며 흘러나오는 유행가에 귀를 쫑긋 세웠다. 사촌오빠가 라디오를 납땜을 해서 만드는 것을 보고 언젠가 나도 만들어 봐야지 마음먹기도 했다.(컴퓨터 공학과에 진학한 덕에 납땜을 정말 하게 될 줄이야!) 중학교 때는 수학의 매력에 퐁당 빠져 시간만 나면 문제집을 펼쳐 들고 수학문제를 풀고 또 풀면서 수학자를 꿈꾸기도 했다. 춤추는 걸 좋아하다 보니 학창 시절에서 무용반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다가 대학생이 된 후에는 댄스 팀에 들어가서 공연을 다니며 댄서가 되는 꿈도 꾸었다. 이런 성향이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된다고 사라질 리 만무하다. 여전히 하고 싶은 것도 도전해보고 싶은 것도 많은 욕심쟁이 엄마의 현재 진행형이다.


처음엔 길어져가는 경력단절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며 좌절하기만 반복했다. 나이가 들어가고 경력단절이 길어지면 당연히 사회에서 일을 할 수 있는 범위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건 아니다. 무조건 덤벼들어 예전에 했던 일이나 돈이 되는 일을 할 수도 있었지만 성향상 그건 힘들었기에 다른 방법을 찾기로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능력 안에서의 일이어야 가능하다 생각했고 쉽게 지치지 않고 아이들을 키우고 나서도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 필요했다. 그렇게 도서관을 드나들면서 나를 위한 일, 나의 미래를 위한 일을 찾기 위해 이 책 저 책을 읽고 또 읽었다. 인문학책을 파고들다 철학 공부에 푹 빠지게 되었고 아이들의 학습에 함께 하다 보니 다양한 외국어를 공부하는 방향도 찾아냈다. 공부나 독서를 하는 중간에는 운동이나 취미 생활도 틈틈이 해서 조금이라도 남는 시간이 없도록 빈틈을 꽉꽉 채워가고 있다.



누구나 삶의 열정을 다해 열심히 달리다 고개를 들어 문득 바라보면 맞이하는 나이 40. 많이 온 것 같지만 여전히 갈 길이 먼 나이이다. 아직은 어떤 일이라도 다시 달려갈 수 있고 시도해 볼 수 있는 그게 가능한 나이가 40대이다. 아이들이 잘 커주는 것이 부모로서는 최고의 기쁨이겠지만 그 길로만 가다 보면 아이도 부모도 가야 할 길을 잃고 늪에 빠지거나 서로를 원망하는 슬픈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엄마로서 아이의 성장을 뒷받침하며 응원하는 시간도 필요하지만 아이들이 자란 뒤 빈 둥지 증후군에 빠지지 않기 위해 엄마에게도 할 수 있는 취미 생활이나 직업, 좋은 사람들과의 정기적인 만남들이 꼭 필요하다고 믿는다. 엄마도 존재만으로도 소중한 ‘한 사람‘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좌절하고 지치고 포기하지 말고 다시 용기를 내서 자신을 찾아가는 엄마들을 응원하고 싶다. 아이의 미래만 바라보며 힘들어하는 엄마의 삶을 벗어나 앞으로 다가 올 엄마만의 즐겁고 신나는 미래를 만들어 나가는 시간이 모두에게 찾아오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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