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을 지켜주는 친구들에게 무안한 감사와 애정을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는 게 좋았고 혼자 있는 시간이 싫었다. 혼자 있는 시간에 밀려드는 외로움을 느끼는 순간이 너무 고통스러웠다. 친구들 사이가 꼭 아니라도 누군가 옆을 지켜줄 수 있고 흔들리지 않는 누군가를 찾아 헤매는 시간들이 많았다. 잠시라도 나를 내버려 두지 말길 바라며 끊임없이 애정을 갈구하고 대화와 소통을 원했지만 가족도 친구도 같은 마음은 아무도 없었다. 삶의 긴 터널 속에서 사람에게 받은 배신과 상처로 가득한 시간들만 차곡차곡 쌓여갔다.
항상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표현하며 아낌없이 주는 사랑을 받고 싶었기에 무한한 사랑을 여러 사람에게 받고 사는 로맨스의 여주인공이 되고 싶기도 했다. 사춘기 시절 유독 로맨스 나 연애 소설책이 끌렸던 것도 그런 이유였을까. 내가 원하는 기준의 애정과 안정이 어느 정도인지도 스스로 가늠하지는 못했다. 어린 시절의 모습을 되돌아보면 항상 불안하고 초조하고 두려운 시간들이 많았다. 바쁜 부모님의 부재시간이 길어지면 동생에 대한 책임감까지 얹어진 시간들이 내 삶에 얽혀 굴러가는 일은 매번 당연하다 여겼다. 첫째라서 언니라서 어깨에 올려진 과업들은 털어내지도 다 수행해내지도 못한 채 스스로를 재촉하다 좌절하다 극복하는 무한루프의 삶이 되었다. 잘해도 못해도 칭찬보다 원망이나 꾸짖는 이야기가 더 많아지다 보니 자존감은 바닥을 쳤고 스스로에 대해 자신감마저 상실했다. 외모부터 성격까지 무엇하나 갖추지 못한 그야말로 실패한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았다. 존재의 이유를 찾을 수가 없어 계속 밖으로 밖으로 떠돌았다. 나를 절실히 원하는 누군가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러나 그곳엔 상처투성이에 외로운 영혼만이 남겨져 있을 뿐이었다.
나름의 인생의 우여곡절 끝에 곁에 있어준 사람은 그야말로 소나무 같았다. 수년이 한결같았고 다정하고 따뜻하지 않았지만 꿋꿋하고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어주었다. 삶 곳곳의 롤러코스터를 24시간 타고 있는 사람에게 돌아갈 곳이 드디어 생긴 것이다. 인스턴트 같은 애정은 싫었고 책임감 없는 마음도 싫었다. 구속하고 타박하고 원망하는 시간들을 그저 묵묵히 들어주고 곁에 있어주고 기댈 수 있는 든든한 나무 아래서 드디어 자존감은 뿌리를 내렸다. 할 수 없을 것 같은 일에 도전과 격려를 아낌없이 보내주었고 하나하나 이뤄내는 과정들을 경험하게 도와주었다. 아이 둘을 낳고 키우는 40대가 되어서야 주변을 바라볼 수 있는 다양한 시선과 자기 성찰에 조금씩 다가갈 수 있는 단단한 마음이 완성된 것 같다.
많은 친구들 틈바구니에서 항상 인기 많은 친구를 막연히 동경하며 그런 세계에서의 생활도 꿈꿔본 적이 있었다. 무대 위 혹은 TV속 인기 연예인들의 무조건적인 사랑이 나에게도 향하기를 간절히 원해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모두 내 안의 꿈일 뿐이라는 걸 깨닫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려야 했다. 연예인을 좋아해 보기도 하고 직접 무대에 올라가 춤을 추고 싶어 팀에 들어가 공연을 다니며 활동도 해보았지만 결국 내가 가질 수 있는 건 인기나 사랑과 거리가 먼, 혼자 내 자리에 머무르고 고민하고 버텨내야 하는 내 자리를 지키는 일뿐이었다.
이젠 누구보다 든든하게 내 곁을 지켜주는 남편과 아이들만으로 충분했던 시간 속에서도 끊임없이 믿었던 사람에게서 받는 실망의 폭풍우에 휘말리는 건 지치지도 않고 반복되었다. 사람을 여전히 좋아하면서도 두려워 하지만 진심으로 느껴지는 다정한 말과 행동에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자꾸 다가갔고 옆에서 지켜보는 냉정한 사람은 항상 주의를 주곤 했다. “너무 빠지지 마. 그러다 다 해주고 혼자 상처받는 거 반복이잖아. 이제 적당히 하면 좋겠어" 알면서도 반복되는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에서 이루어지는 관계들에 자꾸 빠지고 혼자 상처받는 시간의 반복을 벗어날 수 없기에 마음이라도 단단해지려 노력했다. 정 맞는 돌이 아닌 이끼가 끼지 않는 돌이 되고 싶었다.
혼자도 괜찮다고 굳이 친구는 필요 없다고 대외적으로 말은 했지만 그래도 마음을 나누고 대화를 채워 줄 친구가 언제나 필요했다. 고등학교에서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순간들을 모두 함께한 베프는 물리적으로 먼 거리에 살고 있어 아이들이 자라다 보니 만나는 횟수가 확 줄었다. 쉽게 만나 수다를 떨 수 있는 친구는 없었지만 다행히 집 근처에 사는 나이 어린 마음 맞는 큰아이 친구엄마가 오히려 편하게 이야기하고 오고 갈 수 있어 한숨 쉬어갈 수 있었다. 아이의 친구엄마가 엄마의 벗이 될 수 있구나 신기한 경험이었다. 여전히 아이들 이야기, 글 쓰는 이야기, 우리 생활 전반의 이야기를 편하게 나눌 수 있는 한 사람의 존재가 소중하다는 걸 새삼 느끼고 있다. 그 친구 덕분에 내게 온 브런지 작가의 세계가 마흔을 지나가는 힘들고 우울한 시기의 또 다른 인생을 시작할 수 있도록 들어갈 수 있는 문이 되어주었다. 같이 글을 쓰고 고민을 나누는 ‘브런치 작가 동기‘ 친구들까지 생기다 보니 인생에 큰 선물을 받아 풍성해지는 기분이 들고 구름 위를 붕붕 떠다니는 것 같았다. 언제 어디서나 응원과 위로를 보내는 이런 사람들이 어디 있을까? 매일 대화를 하면서도 매일 신기하고 감동의 연속이다. 그래도 항상 불안하다 이 행복의 끝은 과연 언제까지일까 걱정의 무한 굴레에 빠지고 만다. 그래도 다시 만난 소중한 친구가 있고 함께하는 매일이 있어 소중한 이 시간들이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길 항상 기도한다. 불안한 마음을 붙들 수 있도록 함께 위로하고 이야기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즐거운 장소에 함께할 수 있는 그런 친구가 언제나 함께이기를. 긍정과 부정이 매번 교차하는 간사한 마음이란 어쩔 수 없나 보다.
여자가 나이가 들어감에 가장 필요한 건 ‘돈, 친구, 건강’이라고 한다. 자꾸 여기저기 아프신 몸으로 친구들을 만나러 다니는 엄마를 보면 혹시라도 몸이 힘드실까 걱정이 되곤 했다. 혹시라도 아프실 때면 여기저기서 걱정하는 친구들의 전화를 받는 걸 볼 때, 소소하게 친구들과 만남을 이어가며 서로를 응원하고 위로하는 친구들이 있는 엄마를 볼 때 행복함과 감사함이 엿보였다. 그런 분위기를 감지할 때면 나의 미래에도 저런 친구들이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친구들과 지속적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는 아직 벌어야 할 돈도, 지켜야 할 건강도, 이루어야 할 일들도 끝이 보이지 않는 먼 가시밭길이다. 하지만 든든한 친구들이 가득한 소중한 순간들을 잘 지켜내고 이어갈 수 있기를 끝없이 소망한다. 지금처럼 변함없이 즐겁게 이야기하고 글을 쓰고 서로를 진심으로 응원하는 나의 친구들과 계속 함께할 수 있기를 변치 않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