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이 시작한 1월을 너무 힘들게 보냈다. 졸업 전에 아이도 나도 큰 일을 겪으며 정신적으로도 너무 피폐해졌고 졸업과 동시에 발표된 중학교 발표에 큰 좌절을 맛봐야 했다. 올해 구정 휴일은 2월에 있었고 졸업은 1 월초에 해서 한 달 4주를 꼬박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에 고민을 해야 했다. 도서관을 다니는 생활이 메인이지만 중간중간 학원도 가야 해서 아이들 점심뿐 아니라 큰 아이 저녁 먹는 것도 걱정해야 했다. 도서관 생활에 적응이 된 아이들이긴 하지만 긴 시간 아이들 케어하며 주변의 상황도 계속 눈치를 봐야 하고 내가 하고 싶어 저질러 놓은 일도 한가득 이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방학 한 달 전부터 아이들과 다닐 미술전시와 공연들을 미리 알아봐서 예약하고 아이들이 매일 도서관에 가지 않고 종종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스케줄을 미리 꽉 채워 세웠었다. 하지만 이번 겨울 방학은 나 혼자 해야 하는 일들로 정신이 없었고 오랫동안 다녀온 큰 아이 수학 학원을 바꾸며 스케줄과 학원비에 큰 변동이 있었다. 역시나 가장 큰 타격을 준 건 큰 아이의 학원비였다. 방학 특강에 새로 들어간 수업까지 하루종일 학원에 있는 요일도 있다 보니 학원비는 배가 아니라 3~4배 이상 껑충 뛰었다. 이쯤 되면 학원 수업과 숙제에 올인해도 모자란 시간. 우리의 방학은 큰 아이의 학원 스케줄에 따라 움직여야 했다. 그렇게 1월 한 달을 꼬박 도서관에 출근하며 학원숙제와 방학대비 문제집 풀이를 하고 학기 중 읽지 못했던 독서를 하며 시간에 맞춰 도시락을 먹고 학원을 다니는 생활을 기계처럼 살았다.
매번 싸는 도시락과 지칠 때마다 아이들을 다독이며 나도 내 공부와 글쓰기를 놓지 못해 스스로를 옭아매며 살다 보니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어졌다. 거기다 방학이라고 저녁이면 가던 윗집 아이들이 주중에 살다시피 하니 밤늦게까지도 쉬지 못해 피로가 극에 달했다. 드디어 구정이 오면서 내 숨통이 트였다. 억지로 스키장도 가고 아이들과 할 만들기 재료도 준비하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녔다. 그렇게 개학할 날을 하루하루 세어가며 드디어 끝을 앞두고 있다.
모루인형 만들기
만들기를 너무 좋아하는 나를 닮아 종이 접기나 손으로 만드는 걸 좋아하고 즐기는 아이들. 너무 만들고 싶은 가방이 있어 뜨개 재료를 사러 들어갔다 끌리듯이 클릭해서 구경한 모루인형. 방학 전 좋아하는 단골 독립서점에서 만들기 수업도 하고 만들어 놓은 인형을 보면서 신기하다 생각했는데 아예 패키지 재료를 팔고 유튜브를 보고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엄마 뜨개질 하는 것만 봐도 나도 하고 싶다 난리인 아이들에게 시켜보려 샀는데 정신없이 살다 보니 대충 던져놓고 시간이 흘렀다. 아이들의 계속 조름에도 모르는 척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둘째가 설거지하고 있는 엄마에게 붙어서 조르기 시작한다.
“엄마 나 너무 만들고 싶어~ 왜 사다 놓기만 하고 해 준다고 하면서 안 해줘?” 마침 저녁을 다 먹고 일찍 치운 저녁시간이라 “그래 해보자! 근데 엄마가 먼저 해보고 가르쳐 주려고 했는데 엄마가 바빠서 못 봤어 한번 보고 가르쳐 줄게 같이 만들어보자!” 그렇게 우리의 작업은 시작되었다. 영상을 보며 살짝은 버벅거린 엄마와 달리 찰떡같이 알아듣고 금방 만들어 내는 아이들! 금세 인형을 만들고 자유자재로 변형도 너무 잘한다. 그 과정이 재미있다며 깔깔대고 장난치고 한참이 웃음바다! 아직 까지 순수한 건지 사소한 것에도 저렇게 즐겁게 좋을까 싶어 재료를 사다 둔 나를 칭찬했다.
쌍란을 깨는 기쁨
요리에 도사급인 시어머니가 요알못 며느리를 만나면 답답해서 음식을 계속 만들어주는 일이 생긴다. 그게 바로 우리 집. 설거지나 겨우 할 수 있지 음식 만들 때는 옆에도 못 오게 하시는 시어머니, 옆에서 말동무해 드리는 것만으로도 좋아하신다. 덕분에 나는 맛있는 음식을 많이 맛봐서 입덧이 심해 물도 못 마실 때도 시어머니가 해주신 찌개만 맛있게 잘 먹었었다. 지금도 맛있는 반찬이나 김치를 하면 연락하시고 아이들 방학이라 고생한다며 바리바리 싸주신다. 미리 만들어 둔 만두와 식혜 그리고 반찬 없을 때 해 먹으라며 계란 두 판이나 싸주신다. 손이 큰 시어머니는 조금 주시는 게 없다. 뭐든 많이 가득 싸주시는 바람에 며느리는 배도 부르고 몸도 편하다. 종종 주시는 계란은 안 그랬는데 이번에 주신 계란은 깨는 족족 쌍란이 나온다. 처음에는 혼자 신기하다가 애들을 부르기 시작한다. 아이들도 덩달아 신이 나서 계란을 깰 때마다 옆으로 온다. 그리고 소리를 질러댄다 “와 또 쌍란이다. 어떻게 계란을 깰 때마다 쌍란이 나오지? “ 나도 신기한데 애들은 오죽할까. 계란을 한 번에 두 개씩 먹는 기분이란다. 작은 것도 기쁘고 재밌는 아이들이다.
<feat. 메추리알프라이>
메추리알장조림을 하기 위해 사 왔는데 막내가 메추리알로 프라이를 해 먹고 싶단다. 한 번 해보지머 시작했으니 계란과 달리 껍질을 깨기가 어려웠다. 굽고 나니 작고 귀여운 데다 작은 아이 입에도 쏙 들어가서 아이들은 신기하면서도 재미있어했다.
도서관 생활의 애환
오랜 기간의 단련을 통해 도서관에서의 장시간 생활이 편하지만 집보다 몸이 편하진 않은 건 사실. 특히 아이들은 여러모로 불편할 텐데 괜찮다고만 해서 항상 미안하다. 가끔은 큰 애가 먼저 집에 가고 싶어 하거나 조금은 힘들고 피곤한 기색을 보이다가도 엄마 눈치를 보며 “아니야 괜찮아 그냥 있자.” 하면 마음은 아프지만 몸은 움직이지 않는다.
도서관이라고 사실 항상 조용하게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은 아니다. 친구와 같이 온 초등학생들은 도서관에서도 눈치를 보는 척하지만 끊임없이 친구와 떠든다. 요즘 같은 세상에 다른 아이에게 한마디 할 수는 없는 현실 다시 이어폰을 내 귀에도 아이들 귀에도 꽂아주며 시간을 넘겨야 했다.
도서관에 오랜 시간 지내다 보니 다양하고 희한한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대부분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종일 도서관에 사는 사람들인데 공부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힘들어 보이는 그들의 모습에 마음으로는 응원을 보내지만 공부와 전혀 상관없이 하루종일 도서관에서 놀며 특이한 행동을 반복하는 사람들도 많다. 휴게실에 온종일 기거하며 도서관 곳곳에 슬리퍼 물병 생활용품을 숨겨놓고 넣고 꺼내고를 반복하면서 가끔 나이 어린 중고등학생들이 만만해 보이면 시비도 건다. 큰 문제는 일어나지 않으니 도서관에서도 큰 제재는 안 하는데 보다 못한 어른들이 한마디 하면 급하게 사과하고 한동안은 가만히 있던 아저씨. 매일 핸드폰과 도서관 PC에서 별별 동영상을 찾아보며 주변에 앉은 여자들을 자꾸 넘겨보는 아저씨. 반쯤 풀린 눈으로 하루종일 열람실에서 왔다 갔다 하며 사람들도 보고 책도보던 아저씨. 오전에 도서관에 와서 공부하는 자리가 비길 기다렸다 얼른 짐을 놓고 안 보는 책을 잔뜩 쌓고 약을 먹고 기침하며 신문을 뒤적이며 간식을 먹는 할머니. 몇 년 동안 같은 도서관에 자주 다니다 보니 항상 눈에 띄는 그들에게 나도 도시락을 잔뜩 싸서 아이들을 끌고 와 집에도 안 가고 사는 이상한 아줌마로 보이지는 않을까 문득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매일 마주칠 때마다 사서 선생님들이 먼저 인사해 주시고 아이들도 예뻐해 주신다. 우리를 잘 챙겨 주시는 걸 보면 우리가 진상으로 보이지 않는 거겠지.
과천 과학관 도장 찍기
여름 겨울 방학마다 한 번은 꼭 가는 과천 과학관. 한 동안 별로 안 가고 싶어 하는 눈치 더니 도서관이 답답했던 건지 어디라도 놀러 가고 싶었던 건지 과학관 한번 가자고 해서 가장 학원시간이 늦는 날을 골랐다. 과천 과학관은 아이들도 좋지만 엄마도 참 편하다. 아침 일찍 일어나 김밥을 싸고 아이들 마실 음료와 과자등을 싸서 도착하면 식당 한쪽구석에 자리를 잡는다. 아이들은 자주 왔던 곳이라 어디가 재미있는지 어디가 가고 싶은지 미리 다 정하고 둘이 같이 또는 각자 다니고 싶은 체험관을 다닌다. 그날그날 과학관에서 하는 이벤트도 엄마 없이 등록하고 즐기다 와서 자랑을 한다. 그동안 엄마는 준비해 간 음식을 내려놓고 밀렸던 수업을 듣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하고 글을 쓰기도 하면서 자유 시간을 즐긴다. 종종 와서 물도 마시고 간식도 먹고 밥도 먹으면서 자유롭게 다니는 아이들. 이번에는 하필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날씨가 좋지 않아 야외 놀이터를 실컷 이용해 보지 못하고 운전하는 상황이 조금은 어려웠지만 하루 종일 즐거운 아이들과 자유를 맛본 엄마의 즐거운 하루다.
정월대보름, 달을 만나지 못한 날씨
음식을 챙겨 먹어야 하는 날이 가까워 오면 친정엄마에게 전화가 온다. “정월 대보름인데 오곡밥 먹어야지! 음식 해놨어 가지고 가” 냉큼 가져와서 맛있게 먹는 나이 들어도 철없는 딸. 시어머니도 전화를 하신다 그날인데 음식은 챙겨 먹었냐고. 지켜보던 아이들이 묻는다. 엄마도 나중에 우리한테 이렇게 해줘야 한단다. “웃기지 마, 엄마는 음식 같은 거 이렇게 못해! 니들이 알아서 해 먹어! “ 말을 하고 보니 엄마께 괜히 미안해진다. 정월 대보름을 맞아 아이들 식사 챙기기 어려울 텐데 가져가라며 오곡밥과 각종 나물들을 챙겨주신 엄마. 마침 남편은 장기 출장으로 맛보지 못하고 우리 3 모자만 맛있게 3끼에 나눠 먹었다고 한다. 날이 너무 흐리던 정월 대보름 결국 오후부터 비가 내리며 눈발이 되고 하늘은 까맣게 변해 달의 그림자조차 보지 못했고 당연히 소원조차 빌지 못했다. 아이들을 재우고 마음속으로 혼자 소원을 빌어봤다. ”올 한 해 가족 모두 아프지 말고 원하는 일 잘 이루는 편안한 일 년이 되게 해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