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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zy Cow Society Oct 19. 2021

착한데 눈치 없는 사람

나는 왜 너를 싫어하는가 (8)유형7

영화 좋아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 보니 가치관의 기준을 확인할 때도 밸런스 게임을 하듯 영화를 예시로 드는 경우가 종종 있다. 최근 본 영화 <그린 나이트>를 예로 들면, ‘녹색 기사가 찾아왔을 때 내기에 응할거야? 하기 싫은데 왕이 시키면 어떻게 할거야?’라고 묻는 식. 그 중 언급되면 꼭 같은 질문을 하게 되는 영화가 있는데 바로 <소공녀>이다. 나 역시 흥미롭게 보긴 했지만 내 감상보다 더 열성적인 팬들이 많은 영화였던 터라, 완벽하게 주인공 ‘미소’의 행동에 감정이입이 어려웠던 나는 ‘너 그 영화 좋았어? 미소가 그렇게 너네 집에 와 있어도 괜찮아?’라고 상대에게 꼭 묻고는 했다.

 

혼자 작은 집에서 살아가는 ‘미소’는 월세가 오르자 집을 과감하게 빼 버린다. 하루를 마무리할 위스키 한 잔과 담뱃값을 줄일 순 없어서였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포기할 수 없어서 홈리스 생활을 선언한다. 미소는 그 때부터 친구 집을 전전한다. 발칙하고 신선한 시작이었지만 언제까지 이런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 불편함이 가득했다. 2018년, <소공녀>를 관람한 당시 자취 12년차였던 나는 자꾸만 미소 친구들의 입장에서 영화를 볼 수밖에 없었다. 미소는 부, 명예가 아니라 진정성 있는 가치를 알고 있는 데에 반해, 친구는 현실의 허상을 쫓는 사람처럼 대비되는 묘사가 의아했기 때문이다.

 

미소는 전형적으로 착한데 눈치 없는 사람이었다. 이런 유형은 악의 없이 한 행동들로 다른 사람들을 난감하게 만든다. 때론 도와주려 한 경우도 있다. 그래서 문제다. 상대의 행동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이 화를 낼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화를 내는 사람이 나쁜 사람이 되는 듯한 죄책감을 안겨준다. 미소의 친구들은 무기한 친구의 숙식을 해결해주는 것도 모자라 그 대가로 친구의 가사노동력은 더더욱 받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미소가 때맞춰 떠났어야 하는 상식적인 상황에서 친구가 오히려 미안함을 느끼며 나가 달라 말을 꺼내는데, 이에 진심으로 괜찮다고 생각하는 미소. 미소는 본인에게 친구가 자신처럼 찾아온다면 기꺼이 집을 내어줄 사람이기 때문에, 친구는 미소 같지 않은 자신에게 죄책감을 느낀다.

 

눈치 없는 사람은 나쁜가? ‘피해는 주지만 나쁜 사람은 아니다 vs 피해를 주니까 나쁜 사람이다’ 두 가지로 나뉘어 사람들과 이야기하곤 했다. 나는 당연히 후자였다. 눈치가 없는 것은 기본적으로 상대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뜻이고, 상대의 관점에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기 중심적이라는 뜻이다. 나에게 눈치 없는 사람은 이기적인 사람과 같다. 일상적으로 사람들이 베푸는 배려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다들 자신에게 더 편한 방법이 있음에도 한 번 더 고민해서 행동하는 수고로움이다. 공감능력과 마찬가지로 눈치 역시 감정이 아닌 이성의 영역이기 때문에 분명 노력하면 개선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영화가 끝날 때 미소의 선택은 씁쓸하면서도 인간 꽈배기인 나는 또 불편하고 말았다... 처음부터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히 자신이었어야 하는 게 맞는데, 왜 누구도 위스키와 담배, 작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포기하지 못하는 하는 삶을 지켜주지 못한 것처럼 보이게 할까. 그 죄책감은 관객의 몫일까. 이런 유형은 가책을 피해 받은 사람에게 전가시키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평소에 가까이하고 싶지 않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눈치 없는 유형의 가장 무서운 가능성은 앞서 썼던 모든 유형의 빌런들이 그 글을 읽어도 자신인지 모를 수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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