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azy Cow Society Oct 22. 2021

좋아하는 걸 일로 하지 말 걸 그랬어

나는 왜 너를 싫어하는가 (9)에필로그1

업계에서 만난 동료들을 제외하고 사실상 내 업무를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아마 우리 가족도 정확하게 내가 무슨 일을 했는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다 아주 가끔씩 나와 다른 분야의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생기면 아래와 같은 대화를 나누게 됐다.


무슨 일 하세요?”, “영화 관련 일 해요”, “오, 영화 찍으세요? 그럼 연예인 많이 보겠네요? 어벤져스도 개봉 전에 보고 그래요?”, “아뇨, 저는 독립영화 전용 극장 브랜드에서 일해요”, “아 그럼 극장에서 매니저 하시는 거예요?”, “아뇨, 극장에서 상영하는 영화를 선정하는 팀인데 브랜드 마케팅이 될 수 있는 여러 프로그램들 기획해요”, “아…네…”

 

대부분 ‘영화’를 엔터테인먼트의 의미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오해인데, 이 업계에도 나름 ‘영화인’의 테두리 안에 들어갈 수 있는 분야들이 세세하게 나뉘어 있다. 한국영화 제작에 관련될수록 영화인 계급 중 탑티어라 할 수 있다. 나는 그로부터는 다소 먼, 월급을 받으며 회사의 목표를 착실하게 수행하는 수많은 직장인 중 한 사람이었다. 때문에 ‘영화’에서 파생된 오해도 풀지 못하고 ‘그래도 넌 네가 좋아하는 일 하니까 걱정 없겠다’는 말을 듣고 나면, 그 말의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언짢음을 느꼈다. 분명 영화를 많이 보고, 영화를 관객에게 소개하는 일을 하지만 나 역시 다른 직장인들과 다를 바 없이 기획안 작성, 실적 보고, 결재를 위한 타 부서 협의 등을 매일같이 하고 있었으니까.

 

돌이켜보면 그렇게까지 예민하게 받아들일 말은 아니었다. 타인의 수고를 단편적으로 해석하는 발언이라 생각해 다소 방어적인 태도를 취했던 것 같다. 내 손톱 밑의 가시가 다른 사람의 큰 질병보다 아프다는 말처럼, 상대도, 나도 본인의 고통이 가장 크다고 인정받고 싶었을 뿐이다. 그런데 막상 영화 업계를 떠나보고 나니, 지루함을 못 견디는 내가 8시 반 출근을 꼬박꼬박 해가며 열성적일 수 있었던 것은 진짜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닫게 되었다.

 

나는 영화를 깊이 사랑했다. 영화 자체도 좋았고, 영화가 좋아 모인 사람들도 좋았다. 같은 것을 애정하는 사람들이 모인 한 공동체의 유기적인 마음들에 취해 있었다. 어릴 때부터 난 자기 중심적인 성격이라 사회성이 다소 떨어지는 편이었는데,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의 감정을 영화 안에서 발견했다. 살아보지 못한 삶을 천여 번 들여다보며 조금은 세상을 알 것 같았다. 현실에는 없는 ‘영화 같은’ 순간이 펼쳐지는 아름다움이 가득했다. 하나의 영화를 완성하기 위해 연출자, 각본가, 촬영, 조명, 미술, 사운드, 음악, 편집, 이후 개봉을 위해 수입/배급사, 온라인/오프라인 마케팅, 극장 관계자, 포스터 디자인, 예고편 편집 등 수많은 분야의 사람들이 모인다. 영화마다 내가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세계가 모두 달라서, 오로지 나 하나만 담고 있던 좁은 울타리가 점차 넓어질 수 있었다. 무엇보다 현실이 싫어 영화로 도망칠 때마다, 그 안에는 나 대신 울어주고, 화를 내고, 용기를 내고, 좌절하고, 희망을 꿈꾸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이 세계를 나와 같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 영화 일을 시작했었던 것이다. 좋아하는 것이 일상이 된다면 재미있을 것 같아서 말이다.

 

이십대 초중반의 나는 이미 영화로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한다면 그 삶이 영화 같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멋진 성장영화를 꿈 꿨지만, 현실은 답답한 한국독립영화일 때가 많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업계엔 영화를 사랑하는 것이지, 현실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분명 영화에 등장한 약자의 편에 섰던 사람들이, 현실에선 자신이 약자를 괴롭히고 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영화를 좋아하면서 어째서 현실에 그 감정을 적용하지 못하는 것일까? 생각해보지 못했던 가설이었다.

 

또 상영작 검토를 위해 기본 매주 1편 이상 스크리너를 보았는데, 걸러지지 않은 날것의 작품들이 모여 내 감정을 불쾌하게 쑤셔 놓고 가기 일쑤였다. 관객일 때처럼 더 이상 좋은 영화만 볼 수 없었다. 나는 이윽고 영상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2012년부터 영화 관람 목록을 매년 적던 습관은 작년 9월부터 멈추고 말았다. 올해 극장에 간 일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이다. 그러고 나니 취미를 묻는 말에 대답할 수 없게 되었다. 난 이제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가?

 

인간적으로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과 사랑에 빠졌을 때, 친구를 유지한다면 오래오래 함께할 수 있을 텐데 연인이 되고 나면 고작 몇 년 안에 완전히 관계가 끝나지 않느냐는 소리를 들은 적 있다. 다른 분야에 아주 짧게 몸 담는 기간 동안엔 그 말을 떠올리며 일리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전과 마찬가지로 하루 8시간 이상 키보드를 두들기는 일상의 행위가 유달리 버겁게 느껴질 때가 잦아졌다. 그래서 생각했다. '너무 좋아하는 사람이라 만나지 않을거야'같은 바보같은 말은 하지 않을 것이다. 끝이 있더라도 온전히 깊이 있게 그 사람을 이해하고 싶어서 사랑을 택한다. 이후론 애정이 사그라드는 과정만이 남았지만, 그 기간이 얼마이든 기꺼이 애정을 다 주었으니 후회도 없다.


무용수들은 관중들에게 완벽한 고난이도 동작을 아주 쉬운 듯 보여주지만, 그 순간을 위해 뒤에서는 관중이 가늠하기 힘들 고통을 견디고 견딘다. 좋아하는 일을 일로 삼는 다는 것도 비슷했다. 좋아하는 일을 성취하는 과정엔 내가 싫어하는, 고통스러운 일이 90%를 차지한다. 그럼에도 나머지 10% 때문에 견딜 수 있다. 그래서 이번에도 내가 좋아서 당장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일을 선택했다. 또다시 기대가 실망으로, 사랑이 환멸로 바뀌는 순간이 올테지만 그래도 그 끝이 오기 전까지는 다시 맘껏 좋아하고 싶다. 적어도 애정이 없는 일을 시작하는 것보단 더 오래 즐기며 할 수 있다.


이전 08화 착한데 눈치 없는 사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