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Lazy Cow Society
Oct 14. 2021
최근 스타벅스 MD 상품 이벤트로 인한 이슈를 보며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을 운영하는 팀에서 멤버십 관리를 했던 마지막 2년 동안의 일들이 생각났다. 주요 업무는 매달 영화를 선정해 관람한 회원 대상 선착순 영화 굿즈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광고가 불가능한 한정된 예산 안에서 빠듯하게 개봉하는 다양성 영화 특성상, 저비용 고효율을 낼 수 있는 프로모션으로써 굿즈 마케팅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지금은 모든 산업에서 굿즈 마케팅이 보편화 되었지만 체감상 다양성 영화 시장에서 약 2~3년 정도 더 앞서 있었던 것 같다. 기억하고 싶은 장면을 포착한 사물을 간직하는 행위는 영화 팬들에게 각별한 일이어서, 반응도 꽤 좋았다. 문제는 어느 순간 영화와 굿즈가 주객전도 되기 시작하며 발생했다.
내 업무의 목적은 회원들이 영화를 한 편이라도 더 보도록 유도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내가 굿즈 MD가 된 것인지 헷갈릴 때가 많았다. 영화는 예매만 한 채 선착순 굿즈만 수령해가는 사람들은 기본이고,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웃돈에 팔기 위해 흔히 말하는 ‘업자’들도 종종 나타났다. 이 문제가 심각한 이유는 해당 이벤트를 관리하는 현장에서 대응하기 어려울 수준으로 굿즈에 집착하는 관객들이 많아졌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은 이 이벤트를 즐기는 고마운 관객들이었지만, 언제나 소수의 사람들이 이 흥을 망치는 법이다.
당시 출근 후 메일함을 열면 고객센터의 응답 요청 문의가 평균 3~5건 정도 쌓여 있었다. 대부분 선착순으로 받지 못했거나, 굿즈에 흠집이 났으니 교환을 요청하는 등의 항의였다.(참고로 굿즈 증정은 무료였다…) 그 메일에 남겨진 단어와 맥락은 하나같이 무례했다. 뉴스에서나 보던 ‘이딴 곳(고객센터)에서 일하는 걸 보니 네 수준을 알 만하다’는 말들도 적지 않게 보았다. 그러니까 납득할 순 없지만 고객센터 직원은 나보다 아래에 있는 사람이니 함부로 해도 된다는 뜻이었다.
누가 그들에게 그 권한을 부여한 걸까? 그들은 약 1만 2천원의 티켓을, 그나마도 대부분 쿠폰을 사용해서 헐값에, 혹은 무료로 보는 사람들이었고(티켓가에서 영화발전기금과 할인가를 제외하고 남은 금액을 극장과 배급사가 평균 50%의 비율로 나눠 갖는다. 때문에 할인 비중이 높아지면 극장, 배급사 모두 손해이다.) 자신이 영화시장을 살리는 Very Important Person이기 때문에 대우받아야 한다는 사고 회로를 지니고 있었다. 영화와 굿즈, 그리고 VIP 대우 권한까지 구매할 수 있다고 하기에 그들이 지불한 티켓가는 너무 저렴했다. 그 때 생각 난 것은 대학시절 크게 존재감 없던 이들이 우리를 일이병 취급하며, 아직 병장인 마냥 사람들을 줄 세우고 거들먹거리던 모습이었다. 평생 가져보지 못한 권력을 손에 넣자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었던 모양이다.
서비스를 이용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성격적 결함을 흘리고야 마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사회적 역할이 계급이라고 착각하거나, 서비스를 구매하는 입장이 되면 권력이 생긴다고 착각한다는 점이다. 전형적으로 약한 자에게 강하고 강한자에게 약한 자라, 상대의 계급이 자신보다 높다고 판단하면 우습게도 흔쾌히 스스로 낮은 위치를 자처한다. 한편으론 인간관계를 수직으로 밖에 이해하지 못하는 그들이 불쌍하기도 했다. 평소에 마음이 얼마나 가난하고 타인에게 인정받을 기회가 없었으면 자신이 노력해서 얻은 능력도 아닌, 구매만으로 성취할 수 있는 영화관 VIP등급이 자신의 가장 자랑스러운 계급이 되어버리는 걸까.
나는 그들을 보지 않기 위해 회사를 떠났다. 비단 고객센터에 연락하는 소시민들 뿐 아니라 학교, 사내에서도 수시로 상대에 따라 얼굴이 변하는 사람을 많이 보았다. 나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은 발견하기 쉬운데, 생각보다 나에게 잘하고 남에게 함부로 대하는 사람을 알아차리기는 어렵다는 것도 알았다. 나이가 늘어나며 내가 얻지 않은 권력이 자의든, 타의든 자연스레 생기고 있었던 것이다. 나 역시 이 문제에서 떳떳할 수 있는지 최근 들어 자주 곱씹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