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azy Cow Society Oct 12. 2021

리틀핑거

나는 왜 너를 싫어하는가 (5)유형4

지금까지는 주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하지만 스스로 그 결과를 의도하거나, 인지하고 있는 경우가 드문 유형들에 대해 썼다. 나쁜 사람에도 등급이 있다면, 바로 이 자각의 차이 때문일 것이다. [왕좌의 게임] ‘리틀핑거’ 캐릭터가 과연 드라마에만 존재할까? 다행히(?) 내가 만났던 ‘리틀핑거’는 회사 밖의 관계였다. 왜 다행이냐 하면, 겪어본 바로 이들에게 조종당하지 않기 위해선 그저 피하는 것 외에는 도리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만난다면 퇴사 외에는 방법이 없다.

 

혼돈은 사다리”라는 명 대사를 남긴 드라마에서의 ‘리틀핑거’는 그 대단한 ‘왕좌의 게임’을 시작하게 한 장본인이라고도 할 수 있다. 모든 인물들이 그에겐 장기의 말 같은 존재다. 권모술수의 대가인 그는 원하는 것을 쟁취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기꺼이 이용한다. 곳곳에 심어 둔 심복들을 통해 정보를 누구보다 빠르고 풍부하게 획득하고, 떠다니는 사실들을 유리하게 조합해 의도를 섞어 흘린다. 거짓말도 서슴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거짓말이지만, 소소한 숨김 같은 거짓말까지 시시비비를 가리기는 어렵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피해를 입을 수 있음을 알고도 혹은 그것을 노리고 하는 거짓말은 차원이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현실에서의 이런 유형은 죄책감에 무디고 도덕성이 크게 결여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들은 판을 짜는 데에 익숙하고 사람들 간의 편을 나눈다. A와 B가 서로 협력하는 관계라 했을 때, 그들의 교류가 C를 불리하게 만든다면 C는 A에게 가서 B가 한 말과 거짓을 섞어 교묘하게 이간질할 수 있고, B에게는 A의 그런 반응만 일부 발췌해 전달할 수 있다. 흔히 말하는 사내 정치질이다. 이런 유형에게 동료, 협력이라는 단어는 와 닿지 않는 모양이다. 진짜 중요한 일을 잘 되게 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다. 그저 자신의 권모술수로 벌어진 혼돈을 틈타 자신이 얻고자 하는 곳으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갈 뿐이다.


내가 만났던 ‘리틀핑거’ 덕에 한 무리의 관계가 완전히 파탄 난 적이 있었는데, 어렵사리 진실을 알게 된 후 그 사람에게 물어보았다. 도대체 왜 그런 짓을 하는지, 미안한 마음은 없는지.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렇게 해야 자신이 원하는 상황이 될 수 있어서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진심으로 미안한 감정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아 무서울 정도였다. 이미 사건이 벌어진 다음 내가 해볼 수 있는 일은 없으며, 수습했다 하더라도 주변은 이미 황폐해진 후였다. 언론사 헤드라인처럼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에겐 감정만이 남는다.

 

사건이 벌어지기 전엔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인지하기 어려울 수 있다. 본인의 이익을 위해 나에게 잘 해주기로 마음먹었다면 전혀 눈치 챌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나 나를 위해, 걱정을 담아 메시지가 전해온다면 의심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누군가가 전하는 말은 조심해야한다. 특히 부정적인 말에 관해서는 모두의 입장을 들어봐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한편 이들은 기본적으로 통제성향이 강해 어떤 목적의식이 대단히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습관처럼, 사람들을 조종할 수 있고 자신의 의도에 따라 사람들이 좌지우지하는 현상 자체를 즐기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자칫 가스라이팅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겪어본다면 자책하게 될 수도 있다. 그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던 것에 대하여, 그리고 내 말이 전해짐으로서 공범이 된 것 같은 기분에. 하지만 피해자는 잘못하지 않았다. 자연재해 같은 사람인 것이다. 준비한다고 피할 수 없다.

이전 04화 인지부조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