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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zy Cow Society Oct 08. 2021

자격지심

나는 왜 너를 싫어하는가 (3)유형2

누군가 이상형을 묻는다면 반드시 충족해야 하는 조건과 있으면 좋을 조건으로 나누어 대답하곤 한다. 내가 3조건이라 부르는 전자는 아래와 같다. 1. 무쌍일 것 2. 허세 없을 것 3. 자격지심 없을 것. 1번을 제외하면 모든 관계에서 중요한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3번을 장착한 사람과의 대화는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한다. 자신감 부족과는 다르다. 자신감이 부족한 이들은 화살의 방향이 과도하게 본인에게 향해서 안타까우나, 자격지심이 심해져 피해의식으로 번진 이들의 화살은 밖을 향한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최고의 팀을 경험한 적이 있다. 나이차가 있었던 한 선배와 동갑이지만 직급은 더 높았던 친구, 그리고 나 이렇게 셋. 성향도, 취미도, 업무 특기도 달랐던 우리는 신규사업을 개발하는 시즌마다 의견 조율이 쉽지 않았다. 며칠에 걸쳐 같은 주제를 이야기한 적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그들과 논쟁하는 것을 피하고 싶었던 적은 없다. 우리는 서로의 다름을 기본 전제에 두고 논의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 다름을 무척이나 다행이라 여겼다. 서로의 제안에 대해 더 디벨롭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더해보고, 반대의 경우에는 어떤 부분에서 기대효과가 떨어진다고 생각하는지 말했다. 감정이 격해진 적 없다고 한다면 거짓말이지만 아마 누구도 그것이 앙금으로 남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회의의 끝에 승패가 있거나, 결과가 한사람만의 성과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건강한 토론문화를 구성하려면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태도는 지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꼭 싸워야만 좋은 토론도 아니다. 나 역시 서로의 감정을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 나름대로는 단어를 잘 골라보려 노력했다. 다만 직급과 관계가 신경 쓰여 반대 의견을 내지 못하는 분위기에서의 토론은 실패할 확률이 더 높다. 그런데 자격지심이 있는 사람과 일한다면 업무의 첫 번째 관문, 커뮤니케이션에서 문제가 생긴다. 그들은 매번 상대의 말을 듣고 저의를 생각한다. 예를 들어 A가 담당하는 프로젝트의 개편안을 준비하는 회의라고 가정하자. B와 C가 개선점을 이야기했을 때 A가 "그래서 지금까지 내가 제대로 못해서 문제였다는 거야?"라고 받아치면 더이상 회의는 진행되지 못할 것이다.

 

작가 토끼리 [싫어하는 사람] @tokki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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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서로 대화 없이 일할 수 있을까? 특수직을 제외하곤 대부분은 운명공동체이다. 하지만 A를 A라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동료는 단순한 상황을 복잡하게 꼬아버린다. ‘너 지금 나 무시하는 거야?'는 상황을 망치는 마법의 문장이다. 상대가 이 카드를 내놓은 순간 업무를 해결해야하는 의지, 공격 신호를 받은 내 몸의 전투력은 무력화되고, 그저 급격하게 집에 가고 싶어 진다.(퇴근하고 싶다… 혹은 퇴사하고 싶다…). 처음엔 혹시 내가 말 실수를 했나 싶어서, 갸우뚱하며 사과를 하곤 했다. 나에게 괜찮은 말도 상대에겐 괜찮지 않을 수 있기 마련이다. 같은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했었다. 하지만 일대일일 경우엔 남들이 없는 자리여서, 여럿이 모인 공식 회의자리라면 남들 앞이어서, 다른 제안이라도 한다면 자신이 맘에 들지 않아서, 나는 온갖 이유로 가해자가 되었다. 하지만 같은 패턴을 여러 번 경험하고 나서야 알았다. 자신의 약점을 감추고 싶은 방어적인 태도가 이런 식으로 발현되는 구나. 무엇보다 ‘나는 틀리지 않았다’고 확신할 수 있어서 마음 한 구석이 편안해졌다.

 

자격지심은 랜덤카드처럼 규칙을 무시하고, 전혀 다른 도착지로 점프해 본질을 왜곡한다. 어떤 루트로 대화하든 결론이 하나로 귀결되는 것이다. 문제의 싹은 본인에게 있는데, 싹을 뿌린 것이 상대방인 것처럼 책임을 전가하고 공격한다. 감추고 싶은 자신을 간파 당했다는 두려움이 그렇게 만든다. 이들과는 심도 깊고, 발전적인 대화가 애초에 불가능하다. 핵심을 건드리기 위해선 때로 예민한 발언도 감수해야하는 회사에서 수박 겉핥는 대화가 무슨 필요 있겠나. 직진할 수 있는 길이 있는데 뱅뱅 돌아가야 한다. 사내 업무 효율을 굉장히 떨어트리는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버닝>에 배우 유아인이 연기한 ‘종수’ 캐릭터가 생각난다. 자격지심은 처음에 작은 불편함 정도로 생겨나지만, 결국 자신을 잡아먹는다. 누구나 감추고 싶은 열등감이 있다. 하지만 건강한 마음을 지닌 사람들은 그 열등감 때문에 노력한다. 혹은 자신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사람을 끌어안는다. 나의 못난 마음을 인정하기란 쉽지 않다. 내가 이렇게 구릴 리 없다고 울었던 과거가 생각난다…(흑역사) 하지만 못난 것도 서러운데, 이 마음이 내 걸림돌이 되는 것이 더 괴로운 일이었다. 나 역시 열등감과 자격지심 덩어리여서 종종 뒤틀린 마음이 생길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어설프게 내 마음을 숨기려다 더 하찮은 비꼼이 나오지 않게 그냥 생각한 마음을 그대로 말한다. ‘부러워’, ‘멋있다’,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 A를 A라고 말하고, B를 B라고 알아듣기. 내 맘대로 괄호와 행간을 채우지 않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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