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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zy Cow Society Oct 06. 2021

그렇게 나쁜사람은 아니잖아

나는 왜 너를 싫어하는가 (1)프롤로그

이 글을 읽으며 자신처럼 느껴졌다면 아마도 당신이 맞습니다.




내가 ‘화’를 구체적으로 인지하게 된 것은 고등학교 때였다. 여중고가 한 운동장을 쓰고 있는 폐쇄적인 시골 사립학교의 전형.


어떤 선생님은 고3시절 살이 쪄 교복이 더 이상 맞지 않아 체육복을 입고 있는 학생들에게 지금 눈 앞에서 당장 갈아입으라는 고함을 치고 멈칫한 아이들의 몸에 막대기를 무작위로 휘둘렀고, 어떤 선생님은 중간고사를 치르는 나에게 슬금 다가와 왼쪽 귀를 만지작거리다 지나갔다. 또 어떤 선생님은 빼빼로 데이였던가, 기억나지 않는 어느 기념일 파티를 받지 못해 반 아이들에게 화풀이를 했고, 또 어떤 선생님은 스탬플러를 던져 학생의 허벅지에 심이 박히기도 했다.


선생님들끼리 서로 누가 더 고약한지 대결이라도 펼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는데, 그런 학교 안의 동아리 사정도 별반 다를 바는 없었다. 신학기가 시작되면 재학생들은 어느 동아리에 신입생이 가장 많이 신청하는지를 두고 경쟁하다가, 오디션 후엔 어느 동아리가 신입생에게 인격모독을 더 잘 하고 신체의 한계를 시험하는지 공공연히 대결했다. 우습게도 그것은 ‘잡들이’를 하는 사람과 당한 사람 모두의 신경전이어서, 누가 더 모욕적이었는지, 몇 명이 쓰러졌는지에 따라 동아리의 위상이 결정되곤 했다. 방송부에 가입했던 나는 3시간 정도 고개를 들지 못한 채 차렷 자세로 욕을 위한 욕을 들으며 벌을 섰던 기억이 난다. 비슷한 벌을 세 번쯤 더 당했고, 이후 부모님이 선생님께 부탁드려서 겨우 탈퇴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교외활동이었던 지역학생신문연합 활동 중엔 한 선배가 벽을 주먹으로 치며 “죽고 싶냐? 씨발”이라고 외치는 것을 들어야 했다.


그 시절 같은 학교, 같은 동아리를 다녔던 쌍둥이 언니와 나는 김영랑 시인의 ‘독을 차고’를 즐겨 외우곤 했다.  


마치 생존게임에 참여한 마냥 이를 악물고 버텨낸 10대의 고등학생은 착실하게 자라 화가 많은 30대 사회인이 되었다. 부지런히 독의 씨앗을 뿌려주는 사람들은 때마다 다른 이름으로 나타나 <매트릭스>의 스미스 요원처럼 똑같은 얼굴이 되어 지겹도록 내 곁을 쫓았다. 나름 마케터라고 영감을 필사적으로 찾아다니는 나에게 현실의 인풋이란 부조리한 인간들과의 만남뿐이었다. 싫어하는 사람을 욕하다 보니 그 사람과 닮아가는 듯한 기분에 ‘그래, 그 사람도 그렇게까지 나쁜 사람은 아니야. 범죄를 저지르는 최악은 아니잖아’라고 스스로 브레이크를 걸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선언한다. ‘그렇게까지’, 나쁜 사람‘은’이라는 수식어가 나와버렸다면 그 자는 나쁜 사람이다.


‘좋아하는 일을 돈 받고 할 수 있다니,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걸까’라고까지 생각했던 일을 그만두게 된 결정적 계기는 만연하게 나를 둘러싼 악의 평범성 때문이었다. 그들은 모두 인간적으로 하찮았고, 내게 생존의 위협을 줄 만큼 무섭지도 않았다. 하지만 바로 그 점을 참을 수 없었다. 내 기준상 인격 미달인 자들이 의지와 상관없이 나에게 큰 영향을 주는 사회적 관계로 묶여 있다는 것 만으로 무력감이 들 때가 많았다. 개개인의 사연을 살펴보면 한 인간으로서 측은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업무 능력은 부족하지만 윗사람들에게 납작 엎드리는 능력이 탁월해 살아남은 자도 집안의 가장이니 그것이 그만의 생존 전략이었다고 생각한다. 회사의 이름이 자신의 능력인 듯 사람을 쉽게 하대하던 자는 자신의 깊은 인정욕구를 그럴듯한 사람들의 친구가 됨으로써 해소하려 그들에게 좋은 선물을 하곤 했다. 선착순 경품을 받지 못해 정신적 피해보상을 요구하며 고객센터와 싸우는 익명의 관객도 내면의 치명적인 결핍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도 면죄부가 될 수 없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속담처럼 한 사람이 어느새 물 속에 잠길 만큼 일상적이지만 분명한 폭력이었다. ‘악의’는 결심 없이도 발생한다. 내 언행이 상대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거나, 현 상황에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는 역지사지를 하지 않는 자기중심적인 사고, 그리고 무책임한 행동에서 비롯된다. 우리 사회는 ‘악의’의 기준에 너무 관대하다.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벌어졌을 때 그럴 의도는 아니었는데, 라는 말은 가장 쉬운 회피이다.


연쇄살인범이나 뺑소니범은 비록 아닐지라도 이것이 악의 표정이 아니라면 무엇일까 하는 확신의 순간들이 자주 있었다. 그들은 절대 일반인들과 격리되지 않는다. 언제나 우리 주변에 있다.


많은 악행이 일상성, 평범함에 기대어 ‘사회 생활이 원래 다 그런거야’로 치부되어 왔다. 내가 할 수 있는 반격은 괴로워서 쓸모 없어졌다고 생각했던 한 시기를 실재하는 결과물로 치환시키고 그 시간을 의미있게 되돌려 받는 것이다. 형편없는 이들이 앗아간 평화 대신 고통에 기대어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싶다. 기록은 무기가 된다. “나는 독을 차고 선선히 가리라. 내 깨끗한 마음 건지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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