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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zy Cow Society Oct 06. 2021

공감무능력자

나는 왜 너를 싫어하는가 (2)유형1

MBTI에 가장 열광하는 유형 INFP가 50%의 확률로 나오는 xNFP 인간이어서일까, 흔히 말하는 과몰입러 중 한 명으로서 사고형 T의 관심은 질문, 감정형 F의 관심은 리액션이라는 분석이  흥미로웠다. T 유형은 사실관계 파악을 해야 어떻게 공감할지 알 수 있다고 주장하며, 공감을 못하는 로봇이 아니라는 댓글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극단적 F인간으로서 T의 방식은 확실히 익숙하지 않을 때가 많았지만 사회생활을 할수록 어쩌면 공감 이야말로 철저하게 이성의 영역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는 것이었다.


공감의 근본은 표현 방식의 문제가 아니라 프롤로그에서 언급했던 역지사지라고 생각한다. 역지사지가 불가능한 사람은 행동 결정과 이해의 기준이 본인이다. 이런 유형과 대화를 하면 흔히 볼 수 있는 패턴이 어떤 상담이나 화두를 던져도 자신의 경험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최근 전남 실종자들이 잇달아 숨진 채 발견되었다는 비보 기사를 보았다. 당신의 반응은 무엇인가? ‘안타깝네’, ‘가족들이 많이 찾았을 텐데’, ‘어떻게 사고가 발생했을까?’, ‘타살이 아닌 건 맞을까’ 등등 벌어진 사건 자체에 대한 반응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사건에 놀라울 만큼 관심이 없는 댓글을 보았다. 언젠가 데이트했던 추억이 담긴 광주호에서 사건이 발생했다는 안타까움으로 시작해서, 호수의 경관에 대한 감탄으로 마무리하는 댓글이었다. 댓글은 꽤 적극적인 관심의 표현일 텐데, 화자가 말하고자 한 주제가 아닌 자신과 관련된 아주 작은 소재 하나가 그의 관심을 끌어당긴 것이다.

현실에서 이러한 사람과 대화하면 어떨까. 회사가 힘들다고 하소연하면 다독여주거나 경험에 기반한 해결방안을 도출하기보다 본인이 느끼기에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과거의 경험을 끄집어내어 그 때 자신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말할 것이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상대가 좋아하는 것을 언제나 궁금해하고 탐구한다. 사회적 관계에서의 배려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원하는 방식이 아닌 상대의 방식을 고민한다. 회사에서의 공감무능력자는 관계 맺기에서 이 과정이 절대적으로 결여 되어있다.


감정이 결정을 지배하는 사람과 일한 적이 있다. 인과과정이 결코 보이지 않고, 바이오리듬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을 감정기복이 무척이나 심했는데, 그 기분에 따라 어느 날 통과된 내용이 이튿날은 엎어지는 경우가 참 많았다. 또 부하들을 감정 쓰레기통인 마냥 대하자(상사 앞에서는 감정 조절이 아주 잘 되는 사람이었다.) 동료들은 솥뚜껑 보고 놀란 가슴 자라보고 놀란다고, 비슷한 기미만 보여도 보고를 미룬다든지 말을 섞지 않으려 노력했다.(주제와 맞지는 않지만 부모의 일관성 없는 태도 역시 자식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매일매일 길가다 묻지마 폭행을 받는 기분이었던 우리에게 상대는 갑자기 또 홀로 기분이 좋아져서, 혹은 뒷말이 나올까 걱정이 되었든지,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과도하게 활짝 웃는 얼굴로 장난을 치곤 했다. 일적으로 잘못하고 사적으로 풀려는 행동만큼 아마추어처럼 보이는 경우도 없다. 게다가 소화하기도 힘든 모멸감을 안고 평정심까지 잃지 않으려 노력중인 사람에게는 충분한 시간과 진중한 사과가 필요하지 느닷없는 화만큼 느닷없는 (화해를 가장한) 장난까지 결코 필요하지 않다. 이 일방적인 화해의 제스쳐는 얼마나 폭력적인가. 그러나 이에 웃으며 답하지 않는다면 상대는 자신의 호의를 거절했다는 사실만을 주목해서, 또다시 공격모드로 바뀔 것이다… 이런 유형과 함께 일하게 되었다면 감정노동의 굴레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인사이드 아웃>과 <조커>는 완전히 다른 장르이지만, 나는 두 영화에서 공통적인 놀라움을 느꼈다. 모두 일상에서의 악이 탄생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인사이드 아웃>의 어린이는 부모의 갈등 속에서 감정의 불균형을 경험했고, 점차 외부와 소통하기보다 자신에 집중하며 죄책감에 무감각해지는 모습을 보였다. <조커>는 물론 특수한 캐릭터이지만, 보통 사람처럼 살아보려는 의지를 잃은 순간부터 그의 핸디캡들은 거꾸로 조커가 되기 위한 필수조건이 되어버린다. 처음부터 그런 사람보다 그렇게 된 사람이 많을 수 있기에 한 사람이 주변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력이 가볍지 않아 보인다.


앞으로 게재할 여러 유형들은 모두 이 유형1번을 기반으로 한다. 역시나 ‘악의’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공감은 이성의 영역이다. 모든 일에 감정적으로 동화될 필요는 없다. 단지 그 상황에 적합한 행동이 무엇인지 알고리즘을 배우고 판단하면 된다. 왜 이런 수고로움을 거쳐야해? 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이 ‘악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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