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대원하는 교대원생]
EP8. 교생실습을 하는 장교 출신 기자EP8. 교생실습을 하는 장교 출신 기자
[EP8. 교생실습을 하는 장교 출신 기자]
나의 삶의 에너지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다.
초ㆍ중ㆍ고 학창 시절도 그랬고, 대학 시절도 그랬지만, 실제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더욱 또렷하게 나의 성향과 삶의 에너지원에 대해 인식하게 됐다. 나는 아주 가끔, 1년에 한 두 번 정도 조용한 곳에서 쉬며 약 6개월 가량을 살아갈 힘을 충전하는 것 같다. 1박 2일도 괜찮고, 2박 3일도 괜찮다. 가족이나 아주 친한 친구와 아주 한적한 곳을 가는 것은 나에게 6개월 정도를 살아갈 힘이 되는 힐링타임이다. 나는 자연의 풍경을 좋아하고, 공해 없는 공기와 바람을 좋아한다. 그리고, 편한 마음. 이러한 조건들이 충족되는 곳이라면 어디든, 나에게 힐링의 장소와 시간을 제공해준다.
가족들과 자주 가던 강원도 강릉이나 양양도 그렇고, 강화도에 있는 기도원도 그렇고, 인천에 올라와 글을 쓰고 있는 지금으로서는 많은 추억이 담긴 대구도 그런 장소가 될 것 같다. 함께하는 사람도 그렇다. 사실 나 혼자 가는 여행도 좋아하지만, 그래도 대화가 통하고 마음이 맞고, 무엇보다 마음이 편한 사람과 함께 가는 것이 나에게는 최상의 힐링이다. 가족이나, 편한 친구 몇 명정도가 그렇다.
앞서 말한 그런 힐링의 시간을 통해 에너지를 충전하면, 그 이후부터는 나에게 기본적인 잠 자는 시간 외에 별다른 휴식은 크게 필요 없다. 체력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에너지의 문제인 것 같다. 나는 평소의 삶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침대에서 뒹구르거나, 침대 위에서 유튜브 쇼츠를 통해 도파민을 채우는 것이 오히려 에너지가 깎이는 체질이라는 것을 느낀다. 그런 시간도 꽤 좋지만, 내가 가진 에너지와는 맞지 않는 것 같다. 나는 무언가 새로운걸 기획하거나, 하고 싶은 것, 혹은 해야 하는 일들에 집중하는 시간이 에너지원이 된다. 쉽게 말해, 바쁜 게 안 바쁜 것보다 좋다. 일이 많이 맡겨지는 게, 일을 맡기지 않는 것보다 좋다.
내가 그런 체질이라는 것을, 교생실습을 하던 시기에 느꼈다. 나는 교생실습을 하던 당시의 신분은 기자였고 대학원생이었다. 물리적으로는 불가능할 것 같았던 교생실습과 기자 생활의 병행이었지만, 어찌저찌 그것이 가능해졌다. 신문사 입사 후 휴가를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이때를 위해서, 평일 휴가를 사용하지 않고 연차를 모았다. 그리고, 교생실습을 해야하는 시기에 회사와 선배들께 양해를 구하기 위해, 그 말을 꺼내기 전부터 더 유독 열심히 일을하고 기사를 썼다. 교생실습을 해야 하는 시기에, 조금의 양해를 구해볼 심산으로 말이다.
바쁘던 총선의 시기가 지나고, 교생실습을 해야하는 5월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나는 먼저, 회사 선배들께 슬쩍 운을 떼기 시작했다. 대학원 졸업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고, 3주 정도 진행될 것이라는 말씀을 드렸다. 일~목으로 근무하는 신문사의 근무일에 따라, 일요일과 공휴일은 모두 출근하고 그 전날인 원래 휴무하는 날에는 휴가를 사용하지 않으며, 남은 기간에 휴가를 몰아서 사용하겠다고 말씀드렸다. 거기에 더해, 교생실습이 8시 30분쯤부터 시작하는데, 그 전에 경찰서를 들리고, 기사 발제를 교생실습 중간에 올리며, 지면 마감 전 보도자료 마감과 이전에 준비해놓은 시의성 없는 기사들을 작성하겠다는 조건을 스스로 붙였다. 사실 휴가라 그냥 일을 안해도 되는 것이었지만, 휴가를 몰아서 쓰겠다는 막내 기자가 아니꼬와 보이실까 혼자 지레 겁을 먹고 나는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그게 마음이 편했다. 여기에 더해, 4시쯤 교생실습 일정을 마치면, 회사로 들어가 기사 마감하는 6시까지 근무를 하고, 기자로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저녁 자리에도 참석하겠다고 했다.
혼자 겁을 먹고 여러 조건들을 붙여 양해를 구하니, 선배들께서도 딱히 뭐가 달라질게 없다는 마음으로 허락을 해주셨다. 그렇게, 3개의 삶이 동시에 돌아갔다. 교생실습과 기자와 대학원생.
아침 여섯시쯤 일어나 준비해서 인근 경찰서를 들렸다. 잠시 특별한 정보가 있는지 확인하고는 바로 실습 학교로 향했다. 항상 내가 1등으로 도착했다. 그리고 그날의 기삿거리들을 찾아보고, 당시에 하던 기사 필사 연습도 시간에 맞춰 진행해 선배에게 전송했다. 교생실습 일과중에는 교생실습에 완전히 몰입했다. 수업 준비와 가끔 주어지는 행정업무들에 초점을 맞췄다. 사실은 나는 조금 뒤로 빠지고 싶었다. 대학원생이 나서기보다, 같이간 학부 실습생들이 열정을 가지고 할만한 일이었다. 특히, 같은 과에서 같은 학번인 실습생들이 왔기에 서로 정보를 공유하며 뭔가 나서서 할 법도 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의 생각과 달리 나와 함께 같이 실습을 했던 학부 실습생들은 그다지 큰 열정이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소극적이었고, 효과적으로 업무 처리를 하지 못하는 모습도 보여서, 어쩔 수 없이 내가 총대를 메기로 했다.
업무와 일정 분배, 담당 선생님과 소통하는 것, 나중에는 을종 대표수업까지 내가 맡게 되었다. 그래서 예상보다 좀 더 바빠졌다. 그리고 쉬는 시간마다는, 기사 작성을 위해 취재가 필요한 경우 전화를 통해 취재원의 멘트를 받아 기사를 작성했다. 퇴근을 하면 바로 차를 타고 회사로 향했다. 회사에서 남은 기사와 보도자료를 마감하고 상황을 유지했다. 이후 대학원 수업이 있는 날에는 대학원으로 바로 갔다. 수업을 듣고, 집에와서 뻗으면 하루의 일과가 끝났다.
그런 삶이, 이상하게 나는 즐거웠다. 보람찼고, 에너지가 알아서 충전되는 느낌이었다. 남들은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물어보는 이들도 내 주위에는 꽤 있었다. 내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나의 체질이 그냥 그런 바쁜 일상에 에너지를 얻는 체질이라 그렇다는 것을 이 시기에 몸소 알게 됐다.
교생실습을 하는 기자이면서, 군 장교 출신이라는 것이 현직에 계신 선생님들이나 학생들에게는 약간의 관심사였던 것 같다. 관심있게 나를 바라봐줬다. 또, 그것에 힘입어 교생실습을 했던 학교 주변의 교통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기사도 작성하기도 했다.
교생실습의 낭만도 내게는 너무 좋았다. 학생들이 나의 수업을 잘 따라 와 줬고, 꽤 깐깐함을 풍기시던 도덕과 지도 선생님께서도 나중에는 나를 인정해주시고 칭찬해주셨다. 과를 대표한 대표수업도 성황리에 마무리했고, 담임 반 학생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현직 선생님들과 성공적인 피드백을 주고 받으며 에너지 넘치는 5월을 보냈다.
지금 글을 쓰는 이 시기는 그로부터 약 1년이 채 되지 않은 4월이다. 이 글을 쓰려고 그때를 회상해보니, 다시 에너지가 솟는 느낌이다. 그 시기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꽤 빠른 시간으로 지난 것처럼 느껴지면서도, 그때의 감정과 에너지는 아직까지 남아있는 느낌이다. 그 때가 있어서, 지금 교사로서의 내 모습이 있는 것 같아 참 소중한 추억이었다.
(다음 화 예고) : EP9. 눈 깜짝할 사이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