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8. 동기의 퇴사, 우유부단했던 한 달

Let's be hugged to 안기자

by 안이오

[EP8. 동기의 퇴사, 우유부단했던 한 달]


기자가 된 지 만 1년. 2년차가 된 첫 달을 평소와 같이 보내고 있었다.


이제는 ‘안기자’라는 말이 익숙해졌고, 기자로서의 삶과 교육대학원을 병행하던 삶이 꽤나 안정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하루하루 비슷한 루틴 속에서 나에겐 완벽히 타지인 이곳 대구에서의 삶이 안정적으로 정착되고 있구나 느낄 무렵이었고, 군에서 전역하고 기자로서 취업하며 새로 경북대 인근에 얻었던 원룸도 1년 계약이 만료되기 전 재계약을 했다. 적어도 1년은 더 대구에서 기자로서 살아가겠거니 하는 생각에 새롭게 시작된 기자로서의 2년차의 목표를 세워가던 참이었다.


불투명하긴 했지만, 한 번 정도는 다른 언론사로 이직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 군 생활부터 시작된 교육대학원도 마지막 학기를 마무리해서 졸업식만 앞두고 있었고, 이제는 보다 기자로서의 삶에 더 많은 에너지를 투입하면서, 아름아름 임용시험도 준비해보고, 업그레이드를 위한 언론고시 준비도 병행해볼 생각이었다.

평소와 같이 아침 루틴에 따라 해야 할 것들을 하고, 별다른 사안이 없어서 또래 기자들이 자주 방문하는 중구청 기자실로 출근을 했다. 출근을 하는 길에 친한 동료 기자를 픽업해서 갔다. 이 친구는 나와 굉장히 비슷했다. 그래서 더 빨리 친해졌다. ROTC 동기였다. 동갑이었고, 수도권에서 살다가 장교 임관에 따라 대구 인근의 영천 지역으로 발령받아 군 생활을 했다. 나와 마찬가지로, 장교로 전역을 하자마자 대구 지역의 한 신문사에 입사를 했다. 축구도 잘 하고, 축구를 좋아했다.


기자가 된 후 처음 이 친구를 대면해서 인사하기 전부터, 주변 선배들을 통해 서로의 이야기를 꽤나 전해들었다. 지난 에피소드에서 적었던 기자협회 체육대회 즈음하여 이 친구와 친해지게 됐다. 이 친구를 비롯해, 우리와 동갑이었던 다른 기자, 입사 시기가 비슷하고 또래가 비슷한 기자들과 꽤나 친하게 지내며 연고 없는 대구에서의 삶을 즐기게 됐다.


이 친구와 출입처도 비슷하고, 연차도 비슷하여 정말 자주 함께 다녔다. 이날도 이 친구를 태워 함께 출근하고 함께 취재하고 밥을 먹기로 했다. 잘 출근하여, 출입처에서 점심을 먹지 않고 둘이 점심을 먹게 됐다. 그러다 뜻밖의 소식을 듣게 됐다. 3주 정도 후에 회사를 그만두려고 생각중이라는 이야기였다. 나와 마찬가지로 군 전역 이후에 연고 없는 타지에서 지내왔던 친구라 당분간은 조금 쉬며 수도권으로 다시 올라가 언론고시를 더 준비해본다는 계획이었다. 마침 수도권 지방 일간지에서 시험 공고가 떴다며 본인은 퇴사하는 김에 한번 응시해볼 계획이라면서 내게도 생각이 있으면 지원해보라는 말을 했다. 당시에 이 친구는 퇴사 결심을 한 지 얼마되지 않아 나에게 먼저 말했고, 아직 회사나 다른 동료들에게 퇴사를 이야기하지 않았을 때였다.


말을 들었을 때는 조금 놀라긴 했지만, 잘 선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화를 잘 나누고, 일을 마치고 퇴근을 했는데 헛헛한 마음이 찾아왔다. 나와 정말 비슷한 상황이었던 친구의 퇴사 결심이 부럽기도 하면서, ‘나도 좀 더 생각해봐야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취방 재계약을 이미 1년 해놔서 사실상 1년은 이곳에서 더 있을 생각이었는데, 한편으로는 이곳에서 남은 1년의 기자 생활이 걱정되기도 했다. 그러면서, 막연했던 나의 짧은 미래에 대한 계획을 고민해보게 됐다.


동기의 퇴사 결심을 듣고, 내 삶에 대해 고민해보면서 차근차근 정리해보니 몇 가지 선택의 기로가 있었다. 첫째는, 같은 지역 언론 중에서 좀 더 큰 규모였던 언론사 두 군데에서 이직할 생각이 없는지 비공식적으로 오퍼를 해온 상황이어서 언론사 이직을 하는 선택지였다. 둘째는, 나를 뽑아주고 믿어줬던 현재의 회사에 남으면서 약간의 변화를 가져가는 선택이었다. 이를테면, 정치부 기자를 한다든지, 대통령실과 국회에 출입하는 서울본부로 가는 등의 선택지가 주어졌다. 셋째는, 아예 다른 직종으로 전직을 하는 것이었다. 교육대학원도 한 달 뒤에 졸업하는 상황이었고, 계획했던 다음 직업이었던 교사로 넘어가는 시기를 예상보다 땡기는 것도 선택지였다. 대구에서 기간제 교사를 하면서 11월에 있을 임용시험을 좀 더 신경써보기로 하는 선택지였다.


여러 선택지 중에서, 나의 가치 판단이 흔들리기도 했다. 어떤 삶을 원하는지,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욕구는 무엇인지 등이 시간마다, 날마다 흔들렸다. 각 선택지마다 장ㆍ단점이 명확했다. 어느 하나 뚜렷하게 특출난 선택지가 없었다. 다 좋으면서 싫었고, 걱정되면서 설렜다. 그러다보니, 내 선택도 굉장히 우유부단했다. 한 가지로 명확히 선택을 내리고 집중하지 못하고, 이것저것 놓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만 있었다.

캡처.JPG 당시 여러 선택지 중에서 어떤 것을 선택해야할지 판단이 흔들려 나의 직업 가치관을 바탕으로 판단표를 작성해보며 고민했던 흔적.

친한 동기 기자의 퇴사 결심을 듣고 난 후, 약 한 달의 시간은 정말 우유부단한 모습으로 지냈던 것 같다.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전역 이후 신문사에 입사하면서 잠시 미뤄두었던 짧은 미래를 결정짓는 선택을 급하게 마주하게 됐다. 그로부터 약 1년이 지난 지금, 이 때를 회상하며 글을 쓰면서 생각해봤을 때 결과적으로 당시의 나는 최선의 선택을 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약간의 아쉬움과 아련함도 남는다. 너무 급작스러웠고, 차분하지 못했던 그 한 달도 하나의 추억으로 회상할 수 있어 다행이기도 하다.


(다음 화 예고) : EP9. 언론고시 흑서와 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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