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7. 기자로서의 루틴

Let's be hugged to 안기자

by 안이오

[EP7. 기자로서의 루틴]


나는 관계중심적인 사람이다.


학창 시절, 인간의 유형을 분류하는 수많은 잣대 중 ‘관계중심’과 ‘과업중심’의 분류를 들은 적이 있다. 주어진 일이나 과업과 비교해 관계를 좀 더 중요하게 여기는 성향의 관계중심적인 인간과, 반대로 인간관계보다 주어진 과업을 좀 더 중요하게 여기는 성향의 과업중심적인 인간으로 나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당시에도, 글을 작성하고 있는 지금도 역시, 관계중심적인 사람이다. 아마 내 주변 인물의 대부분에게 나에 대한 질문을 한다면, 분명히 관계중심적인 사람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나의 기질과 성향은, 일보다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는데 더 적합하게 형성되었다.


무엇이든 장ㆍ단점이 있듯이, 관계중심적인 인간에게도 장ㆍ단점이 명확했다. 주변에 좋은 관계를 형성하고 사회적 민감성을 바탕으로 태도나 언행에 많이 신경을 쓰게 된다는 장점이 있지만, 반대로 미련한 모습도 있어서 공과 사의 감정을 적절히 분리하지 못하기도 하고, 관계에서 발생하는 소모적인 감정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는 단점도 명확하다.


나는 분명히 그런 인간이다. 관계를 생각하지만, 미련한 모습 때문에 우유부단하여 일을 그르칠 때도 많다. 지나친 반추와 상대방의 관심과 인정을 요구하는 모습이 때론 상대방을 성가시게 만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나의 성향과 기질이 관계적인 민감성이 뚜렷하게 드러나기에 어느정도 고쳐야할 부분을 고치려고 하지만 완벽히 바끼지는 않는 것 같다.


나는 뚜렷한 관계중심적인 사람이라고 믿고 살아왔다. 지금도 물론 그렇다. 그럼에도, 반대 축에 속하는 일과 과업을 등한시하는 성향은 또 아닌 것 같다. 휴학없이 대학을 졸업하고, 군 복무를 시작으로 쉬지 않고 사회생활을 해오면서 새롭게 느끼는 나의 모습이기도 하다. 나는 일 욕심이 많고, 완벽하게 해내고 싶어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기자로서 살아갈 때, 더욱 그렇게 느끼게 됐다. 직전 직업이었던 군인으로 복무할 때야, 조직과 명령체계에 맡게 해야하는 과업이 존재했기에 주어진 일을 성실히 하려고 한 것이지만, 사기업에서 꽤나 자율성이 있는 기자로 일을 해보며, 내가 일 욕심이 꽤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된 것 같다.


나에게는 일종의 자격지심이 있었다. 내가 속한 회사가 주변 지역 언론과 비교했을 때, 조금은 적은 규모라고 혼자 생각했고, 주요 뉴스를 놓치는 경우도 많은데다가, 나는 본사가 아닌 대구 본부에서 지내다보니 제대로 된 기자로 다른 사람이 평가를 할지에 대해 스스로 의구심을 가지는 모습이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그래서 지고 싶지 않았다. 주변 지역언론에 비해 열악한 환경일지라도, 기자로서 나의 역량을 키워서 인정받고 싶다는 강한 욕구가 있었다.


언론사 입사시험을 오래 준비하지도, 신문방송학과 등 언론에 관련한 전문지식을 배워보지도 않은 상태로 입사를 하여 더욱 그런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특별히 젊은 날의 패기로 나의 역량을 발전시키는 것에 집중하고 싶었다. 기자로서의 역량은 무엇인가 자연스럽게 고민하게 됐고, 다른 어떤 것보다도 당연히 ‘기사’를 통해 평가받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나도 어느 정도 글을 쓸 줄은 아는 사람이라는 근자감을 가지고 살았지만, 막상 기사는 한 줄 쓰기도 어려웠다. 그런데 자격지심때문에 인정은 받고 싶고, 더 나은 기사를 쓰지 못하는 내 자신이 초라해보이는 것이 싫었다.


마침, 회사의 여러 선배들은 나를 잘 지도해주기 위해 이것저것 방식을 추천해주셨다. 그 중 당시 구미지역에서 활동하시던 오랜 경력을 가진 선배가 한 가지 제안을 하셨다. 매일 아침마다 중앙지 기사를 분야별로 정해서 오전 8시전까지 필사하여 사진을 찍어 보내보라고 하셨다. 다른 기사를 많이 보는 것, 문장을 따라 써보는 것이 기사 작성을 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는 취지였다. 사실 이 제안을 해준 선배도 내가 이것을 실제로 이행할지까지는 별 기대 없이 제안을 하셨던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무조건 하고 싶었다. 사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미라클모닝’을 시도해본 많은 이들은 공감하겠지만, 아침 일찍 무언가 작은 일 하나를 하는 것도 정말 힘든 일이다. 그것도 아침에 경찰서나 출입처를 가기 전에 기사를 선별해서 꽤나 시간을 들여 필사를 해야했기에 쉬운 일은 분명 아니었다. 그래도, 하기로 마음먹고, 제안을 받고 퇴사하기 직전까지 그렇게 해왔다.


글쎄, 최종적으로 나는 좋은 기자나 역량을 인정받은 기자는 아니었다. 택도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 시절의 나를 자부하고, 이제는 불필요한 자격지심도 가지지 않게 됐다. 나는 후회없이 노력했고,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스스로의 약속으로 지키며 끊임없이 발전을 도모했다는 것이 큰 자산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침마다 필사하던 기사 노트.

매일 아침 이른 시간 책상 앞에 앉아 기사를 필사하던 나의 루틴, 그 노력이 지금의 나를 참 뿌듯하게 만든다.

(다음 화 예고) : EP8. 동기의 퇴사, 우유부단했던 한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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