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9. 언론고시 흑서와 백서

Let's be hugged to 안기자

by 안이오

[EP9. 언론고시 흑서와 백서]


친한 동기의 퇴사 결심을 들은 후로부터 우유부단한 한 달을 보내던 중, 한 가지 이슈가 더 생겼다. 내가 대구로 오기 전 평생 지내왔고, 지금도 본가가 있는 인천 지역 본사가 있는 지역 신문사 채용 소식을 동기로부터 듣고 난 후 이직을 목적으로 하기보다도 언론고시 경험을 한 번 쌓아볼 요량으로 원서를 접수했다. 갑작스러운 지원이었기에 좋은 결과를 예상하거나, 기대하지 않았다.


예상과 달리 꽤나 복잡했던 채용과정에서 합격 소식이 들려왔다. 1차 서류전형이야 통과할 것 같았지만, 제대로된 언론고시 경험이나 마음 먹고 시험 준비를 체계적으로 해본 적이 없었던 것에 비해 순탄하게 최종 임원면접까지 진출하게 됐다. 1년 정도의 지역 언론사에서의 경험이 꽤나 많은 자산이 되어 실력 향상에 도움을 주었던 것 같다.


전형은 총 4단계였다. 1차 서류전형은 220명이 지원하여 137명이 선발되었다. 문자로 1차 서류전형 합격 통보를 받고, 토요일에 경기대학교에서 2차 상식 및 논술, 작문 시험이 진행된다는 안내를 받았다. 부랴부랴 상식책을 사서 문제를 풀어보긴 했지만,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험 장소로 향했다. 대구에서 친하게 지내던 동료 기자도 같은 신문사 수원본사에 지원해 합격하여 함께 시험을 봤다.


1교시 시사상식 문제는 객관식 20문제 단답형 5문제로 출제됐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스포츠, 지역 등 다방면의 시사상식 문제가 나왔고, 짧은 준비 기간 치고는 꽤 괜찮게 문제를 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2~3교시는 논술과 작문이었다. 논술 주제는 “의대 증원 문제와 관련된 의정 갈등에 대해 논하시오.”였다. 나는 이를 “갈등의 순기능만 작동하길”이라는 제목으로 논술을 써 내려갔다. 글을 쓴 후 나 스스로의 만족도는 60% 정도였던 것 같다. 그다지 특색있게 쓰지도 못했던 것 같고, 해당 이슈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견지하지 못했던 것 같아 아쉬움이 있었다. 작문은 처음 해봤다. 주제는 “팬덤”이었다. 나는 이를 “고이면 썩기 마련이다.”라는 제목으로 글을 써 내려갔다. 글을 쓴 후 나의 만족도는 95% 정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글을 썼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글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제목과 첫 문장의 임팩트가 괜찮았던 것 같고, 전혀 다른 주제들을 현실의 구체적인 문제와 간접적으로 연결하며 풀어낸 글로 잘 써냈던 것 같다.


감사하게도 2차 시험 합격 통보를 받았다. 3차 실무역량평가 및 실무면접 일정이 통보됐다. 평일 이틀에 걸쳐 진행된다고 했고, 회사에는 지원 사실을 알리지 않은 상태여서 연차를 활용하여 이틀간 평가에 참석했다. 마찬가지로, 친한 동료 기자도 합격하여 함께 이동하며 정보를 공유했다. 3차 전형 합격자는 28명이었다. 두 명을 뽑는 수원본사, 한 명을 뽑는 인천본사, 1명을 뽑는 편집기자 지원자 모두를 합하여 28명이 남았다. 이때부터는 해 볼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무 평가는 동일한 주제로 취재 기사를 제한 시간까지 작성하여 제출하는 방식이었다. 주제는 ‘뜨거움’이었다. 후기로 쓸 만한 이야기는 많지만 생략하고, 나는 해당 주제에 대해 “‘초복’ 맞아 보양 나선 시민들…보신탕은 ‘포장’, 삼계탕은 ‘매장’”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작성해 제출했다. 다음 날, 해당 언론사 중견 기자들을 중심으로 다대다 실무면접이 진행됐다. 여러 질문들이 있었지만, 장교 경험 등 덕분인지 떨리지도 않았고, 오히려 유머를 겸하여 적절한 답변을 잘해서 면접관들의 미소를 보기도 했던 것 같다. 합격할 것만 같은 분위기 속에서 일상을 보내던 중 합격 소식을 통보받고 최종 임원면접만을 남겨두었다.

실무평가 당시 작성했던 취재 기사.

한 명을 뽑는 인천본사 지원자 세명중 한 명이 뽑히는 면접이었고, 면접에 자신이 있었던 나는 거의 합격할 것 같다는 분위기에 젖어있었다. 예상치도 못한 시점에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기대감이 생기기도 했다. 면접도 무난하게 잘 응시했다.










예비 1번. 한 명 뽑는데 예비 1번이라...꽤나 실망이었다.


예상치 못한 시점에, 기대하지 못한 상황들이 있었던 언론고시를 통해 나는 얻은 것도 있었고, 잃은 것도 있었다.

최종 임원면접 후 받은 불합격 통보문자.

먼저, 언론고시를 통해 내가 얻은 것들이다. 경쟁률이 꽤 심했던 시험의 경험을 통해 자신감을 얻었다. 내가 가진 역량을 시험과 면접을 통해 충분히 발휘하고 인정받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또, 글 쓰는 것에 대한 자부심을 얻었다. 논술과 작문시험을 통해 제한 시간 안에 논리적인 글을 작성하는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면접 스킬을 얻었다. 면접이 즐겁게 느껴졌다. 외운 것을 떨면서 그대로 읊는 게 아니라, 주어진 상황과 질문에 보다 창의적이면서 자기 PR을 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와 스킬을 얻고 증명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언론고시를 통해 내가 얻은 것들은 결과적으로 임용시험에 대한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고, 교육학 논술 시험에 큰 도움이 되었으며, 임용 2차 면접 및 최종 면접에서 좋은 결과물을 이끌어내도록 하는 소중한 경험이 됐다.


반면, 언론고시를 통해 잃은 것도 있었다. 먼저는 합격할 것 같다는 기대감 속에서 큰 상실감으로 다가왔다. 또, 오랜 채용 과정 속에서 대구와 수원을 왔다갔다하는 시간과 비용적 측면에서 손해가 있었다. 결정적으로는, 모든 채용 과정을 마친 후, 내 눈높이가 높아져버렸다. 시험 낙방 후, 다시 마음을 잡고 당시 다니던 신문사에서 주어진 본연의 일을 잘 해내려고 노력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곳에서 배울 것이 남지 않은 것 같아 보였고, 내가 가진 역량을 인정받고 싶은 욕구 속에서 기존 다니던 회사보다 더 높은 인정을 바라게 되며 자연스럽게 기존 회사에 대한 나의 마음이 정리가 되었다.


그렇게 예상치 못했던 채용과정이라는 한 달 정도의 시간을 통해 소중한 경험을 얻기도, 마음과 열정을 잃기도 했다.


(다음 화 예고) : EP10. 돌연 퇴사할 결심, “굿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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