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hugged to 안기자
[EP10. 돌연 퇴사할 결심, “굿바이”]
우유부단함의 끝을 달리던 내 마음속에 마침내 결단이 내려졌다. 군을 떠나서 갈 곳 없는 나를 처음 받아줬던 곳, 꽤나 정들었던 이들과 집 같은 사무실이 있던 곳, 내 첫 회사, 첫 명함의 추억이 있던 곳, 나를 ‘기자’라고 불리게 해준 곳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남들이 뭐라 해도, 내게 이 신문사는 위와 같은 의미가 있었던 곳이다. 수많은 의미와 추억이 담긴 것 치고는 정말 돌연, 퇴사할 결심을 내렸다.
당시의 결심을 이끌었던 나를 둘러싼 상황들은 아래와 같다.
-친한 동료 기자의 퇴사 및 상경
-보다 규모가 큰 언론사로 이직할 수 있는 기회
-2년 6개월간의 교육대학원 졸업
-4개월 가량을 남겨둔 임용시험
-회사의 (불만족스러운 방향으로의) 변화
앞선 에피소드에서 이야기했던, 친하게 지낸 동료기자의 퇴사로부터 시작된 우유부단한 한 달의 기간동안 위와 같은 상황들이 내 앞에 놓여있었다. 결국 내 개인의 가치판단과 소망을 담아 선택해야하는 문제들이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선택에 약했던 삶을 살았다. 좋은 방향을 제시받으면 제시된대로 선택하는 것이 마음이 편했다. 학교에서는 선생님들께서, 가정에서는 부모님께서, 또 이래저래 속한 공동체에서 리더역할을 해오면서도 소위 ‘민주적 부담감’이라는 핑계 뒤에 숨어 리더로서 선택해야할 문제들을 다수에게로 돌려, 집단의 결정을 등에 업고 나의 결정을 해오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그런데, 지금 내 앞에 당장 놓인 위와 같은 문제들은 그 누가 뚜렷한 길과 방향을 제시해줄 수 없던 문제들이다. 결국은 내가 독단적이고 주체적으로, 나의 가치판단을 통해 선택하고, 선택한 결과에 대해 책임질 준비를 해야하는 것들이었다. 동료 기자와 의논하면 상경하는 것이 맞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다른 회사 선배들과 이야기하면 더 큰 회사로 옮기는 것이 맞다고 했다. 대학원 동기들이나 교수님과 대화할 때는 교직 시험에 집중하는 것이 맞다고 느껴졌다. 회사 선배와 대화할 때는 조금 더 이 회사에 남아 배우고 역량을 키우며 그간의 신뢰에 보답하는 것이 옳게 느껴졌다. 전화로 부모님과 의논할 때는, 보다 안정적인 교직을 선택하고 대구에서 올라와 인천으로 가는 것이 좋았다.
수많은 이해관계, 수많은 조언을 의지하려다보니 배가 산으로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을 다 쥐고 갈 수 있는 인생은 없어보였다. 이제 몇 가지는 내려놓아야 할 때가 됐고, 오로지 그 판단은 내가 해야 나중에 다른 누군가를 탓하는 불상사 또는 불행한 시간이 찾아오지 않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쁘고 다양하게 변화했던 한 달의 시간 속, 돌연 퇴사해야겠다는 결심이 찾아왔다. 회사에 오래 헌신해오신 선배들이 퇴직하는 상황들이 내가 여기에 남아있는 시간동안 원망스럽게 느껴질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침착함이 성숙의 징표여야한다면, 무모함은 젊음의 징표여야하기 때문이다.”
『모스크바의 신사』라는 책에서 읽은 마음에 와닿는 한 구절. 내가 지향하고 원하는 덕목은 ‘침착함’이 분명하나, 당시의 내가 (지금의 나도 물론) 강력히 끌렸던 덕목은 ‘무모함’이었다. 이전에 구축해놓은 꽤나 안정적인 일상을 내려놓고 다시 새로운 직종을 선택하는 무모함이 내게 더 즐겁고 설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것을 받아들였다.
8월 중순, 퇴사를 결심했다. 동료 기자가 퇴사한 지 약 한 달이 지난 시점이다. 결심을 마치고 대구본부장님을 만나 사직의사를 밝히고, 사직서를 작성하여 포항 본사로 향했다. 사장님과 경영팀장님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고 붙잡으실게 분명했지만, 퇴사를 결심한 이상 불편한 일들을 감수하는 것도 오롯이 나의 책임임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렇게 했다.
사직서를 제출하고 약 2~3주의 기간 동안 기자로서의 삶을 정리하며, 마지막으로 기자로서의 열정을 발휘하려 노력했다. 만났던 수많은 출입처 사람들에게 인사하고, 기자 동료 및 선후배에게 인사하고, 짐을 정리하고, 또 취재하고 기사를 썼다.
그리고, 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 잉크도 마르지 않은 졸업장으로 인근 중고등학교 도덕ㆍ윤리 기간제 교사 모집공고에 지원했다. 감사히 몇 군데에서 합격 소식이 들려왔다. 그렇게 다시 쉼 없이 새로운 길로 달려가는 길 앞에 섰다.
새로운 길을 나아가는 무모함을 선택해서 찾아온 설렘, 그와 동시에 뒤를 돌아보면 너무나도 정들었고 감사했던 추억이 묻어있는 나의 첫 회사. 말 그대로 Good bye가 되길 간절히 바랬다. 나의 시작도, 내가 떠나온 신문사의 앞으로의 성장과 여정도 Good으로 가득차길 바라며.
(다음 화 예고) : Epilogue. 난 그저 그런 찍먹 기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