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간다인과의 금전거래
처음 치왕갈라에 자리를 잡았을 때는 돈을 아껴볼 요량으로 물장수 아저씨들이 파는 제리캔 물을 커피포트에 끓여서 마시려고 했지만 이내 캄팔라에서 지낼 때처럼 르웬조리(Rwenzori=우간다의 높은 산) 생수를 사서 마셨다. 나는 빈 병을 방안에 모아두고 주말에 학교에 아무도 없을 때 몰래 학교 한켠에 구덩이를 파서 만든 소각장에 한꺼번에 버렸다. 소각장에 쓰레기를 버리면 어디선가 아이들이 나타나 쓰레기를 뒤졌는데, 빈 병은 이러한 아이들의 좋은 타겟이 되었다. 빈 병 뿐만 아니라 내가 버린 비닐 봉지, 다 쓴 화장품 용기, 플라스틱 포크 등 음식물 쓰레기들 사이로 보이는 '쓸 만한' 쓰레기들은 모두 아이들의 차지가 되었다. 나의 소비행태와 식습관 등 모든 결과물이 쓰레기장을 뒤지는 아이들을 통해 낱낱히 밝혀진다는 게 소름 돋았던 나는 쓸만한 쓰레기는 소각장 옆 눈에 잘 띄는 곳에 놓고, 나머지는 성냥을 켜서 태워버렸다.
나는 무급 봉사자 신분에 항공권이며 비자, 봉사자 등록비 등을 모두 자비로 부담한 것도 모자라, 숙소 또한 월세를 내는 입장이었으나 대부분이 무급 인턴인 현지인 선생님들보다는 오히려 형편이 나은 편이었다. 하루는 이메(Imetres)가 나를 조용히 부르더니 곤란한 표정으로 돈을 빌려달라고 했다. 현지인과는 절대 돈거래를 하지 말라는 것이 당시 한국인 봉사자들 사이에서 돌던 불문율이었지만, 나와 친한 이메가 어렵게 부탁했다는 점에 갈등을 하다가 결국 빌려주었다. 언제쯤 돌려받을까 초조해 하던 중 이메가 나를 집으로 초대하여 밥을 먹고 난 후,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머친슨 폭포(Murchison) 폭포로 여행간 사진을 보여주며 "너도 나중에 꼭 가봐"라고 말했다. 나는 속으로 '니가 돈을 갚아줘야 가지!'라고 생각했지만 차마 입밖으로 돈을 돌려달란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로부터 한달 쯤 지나자 이메가 나를 조용한 곳으로 불러 고마웠다면서 돈을 돌려주었다. 현지인에게 돈을 빌려주고 못 받았다는 다른 한국인 봉사자들의 후일담에 벌벌 떨다가 막상 내 돈을 떼먹히지 않았을 때의 그 감격이란...! 그동안 이메를 원망하며 어서 돈을 주기만을 기다렸던 내가 조금은 한심하게 느껴졌다.
같은 외국인 봉사자 신분이지만 어느 누구도 히로키에게는 절대로 돈을 빌려달라는 말을 안했는데, 정말이지 히로키는 뒤져도 돈 한푼 안 나올 것 같은 행색으로 살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생수 대신 제리캔 물을 약품으로 정화해서 마시고 있었는데, 어렸을 때 급식소에서나 봤던 보리차 나오는 큰 물통이 그의 집에 있었다. 그러다보니 그가 버리는 쓰레기에 빈 병 같은 게 있을리가 없었고, 쓰레기는 아예 화장실에 버려서 아무도 그가 한 소비의 결과물을 볼 수가 없었다. 가끔 마을에 나가서 돈을 달라고 하는 아이를 볼 때면 큰 소리로 화를 내는 통에 동네 아이들 또한 그에게 겁을 먹고 다가가지 않았다. 또한 "무중구 Mzungu"라고 불리는 걸 지독히 싫어해서 누가 무중구라고 부르기만 하면 그가 어디에 있건 끝까지 쫓아가서 "나는 무중구가 아니야"라고 말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옷은 어떻게 일본에 저런 옷이 있지 싶을 정도로 낡은 옷을 입었는데, 그 옷마저 헤져서 구멍이 나면 색깔도 맞지 않은 옷감을 덧대 덕지덕지 기워입고 다녔다. 이럴 정도니 아무도 그에게는 돈 빌려달라는 소리를 안했다.
오죽하면 마사카의 다른 일본인들도 히로키에게 옷 좀 사입으라고 난리였다. 이때다 싶어 나도 히로키에게 "왜 낡은 옷만 입어?"라고 물으니 히로키는 "돈이 많아 보이게 입고 다니면 골치 아파진다"고 말했다. 실제로 예전 카잉가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보니 말끔한 정장을 입고 있었고, 방안 한켠에는 구찌 모자도 있는 걸 봐선 그가 처음부터 돈 없는 외국인의 원형을 보여준 건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었다. 그가 일년을 우간다에서 보낸 후 나름 체득한 생활의 지혜는 돈이 많은 것처럼 보이면 안된다였으리라. 그동안 그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전부 알 수는 없었지만, 늘 "킴은 옷을 Smart하게 입는다"고 칭찬해주는 사람들이 나중에 나에게 금전적 도움을 요청했다는 것을 통해 그가 왜 옷을 그렇게 입고 다니는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봉사활동이 끝나고 일을 하면서 우간다 사람이 쓴 책을 읽으니 옷차림에 대한 우간다 사람들의 생각을 알 수 있었는데, 우간다 사람들은 상대방이 옷을 잘 입었을 때 자신이 중요한 사람임을 체감한다고 한다. 옷을 거지같이 입으면 자기를 무시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기 위해 아무리 가난해도 자기가 가진 옷중에 가장 좋은 옷을 입고 만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히로키는 돈 없는 외국인의 원형을 보여주는 옷차림을 통해, 현지인들에게 돈에 대해서는 아예 말 걸기 싫을 정도의 불쾌감을 안겨준 것은 아니었을까. 아무 상상이나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