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마다 우는 아이의 비밀

성진국에서 온 남자

by 만다지
262467_142872905795562_5534723_n.jpg 2011년 휴가 때 방문한 우간다 시피 폴(Sipi fall) 근처 식당에서 저녁을 먹을 때 찍은 사진.

치왕갈라의 밤은 무척 길었다. 시골 사람들은 해 떨어지기 무섭게 밥먹고 일찍 잤다. 물론 밤에도 마을 야시장에 가면 곱창구이, 생선튀김, 롤렉스를 팔고 있었고, 술집과 클럽도 문을 열고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당시 호기심이 무척 많았던 나는 한번 밤에 나가봤다가 카잉가한테 혼나는 바람에 잔소리 듣기가 싫어서 해가 지면 밖에 안나갔다. 학교가 마치는 오후 4시가 되면 집에 가서 청소 조금 하고, 물장수 아저씨한테 물 주문하고, 마을에 나가 먹을 것을 사왔다. 밥을 먹고 나면 설거지를 하고 샤워를 한 후 일찍 침대에 누웠다. 누워서 (한국에서 쓰던) 휴대폰 사진첩을 뒤져서 추억을 소환하기도 하고, PMP에 저장된 음악이나 영화를 보다가 잠이 드는 것이 일과였다.


2009년 당시 우간다로 봉사활동을 오면서 도난이 걱정돼서 노트북 대신 PMP를 들고왔는데 알고보니 마케레레(Makerere) 대학교로 연수온 대학생들도 다 노트북을 가져왔고, 한국인 봉사자들 중에서도 노트북을 가져온 사람이 꽤 있었다. 그러니까 아프리카는 위험하다고 지레 겁을 먹고 노트북을 안 들고 온 것인데, 나중에 한국에 있는 동생에게 노트북 보내달랬다가 배송료가 엄청 들어서 욕만 얻어먹었던 기억이 난다. 결국 PMP로 6개월 넘는 시간을 버텼고, 사진도 잘 찍은 사진만 선별해서 지우기를 반복하며 어쨌든 별탈없이 시간도 보내고 사진도 건졌다.


가수 윤하의 "오늘 서울은 하루종일 맑음”을 들으면 예전에 좋아했던 남자들도 생각나고, 그들도 나를 그리워하고 있을 지 궁금해하며 설레는 가슴을 안고 잠에 들곤 했다. 치왕갈라 숙소에서 자리를 잡은 지 일주일 쯤 지나서였을까. 매일 밤 11시가 지나면 어김없이 여자아이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냥 슬퍼서 우는 게 아니라 아파서 우는 소리였기에 누가 이 밤에 아이를 때리는 건지 궁금했다. 아프리카가 가정 내 체벌이 이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었나 싶었지만, 그 밤에 내가 밖에 나갈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그냥 다시 잠들 뿐이었다.


당시 내가 머물던 봉사자 숙소는 히로키와 내 방 그리고 빈 방, 총 3개의 방이 한 건물을 이루고 있었고, 카잉가의 집은 대각선 방향으로 150미터 쯤 떨어져 있었다. 카잉가의 딸 줄리아(Julia)는 한 살이었는데 해만 졌다하면 큰 소리로 울었다. 카잉가와 베티는 우는 줄리아에게 "씨리카 줄리아(울지마 줄리아)"만 반복할 뿐이었다. 줄리아는 목청도 커서 내 방까지 울음 소리가 들렸고, 아이 울음 소리를 매일 듣는 것도 고역이었다. 이런 이유로 처음에는 밤마다 우는 아이가 줄리아 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줄리아의 울음 소리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억지로 우는 그런 억지스러움이 있었는데, 밤에 우는 여자아이는 정말 아파서 우는 소리로 여겨졌다.


어느 날 밤 11시가 되자 또 여자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고, 이번에는 아예 자리에서 일어나 모기장 밖으로 나와 보았다. 창문을 열어서 카잉가의 집에 불이 꺼진 것을 확인하니, 그 울음소리는 옆방 히로키의 방안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히로키와 내 방은 지붕을 서로 공유하는 상태였고, 우간다 시골 가정집이 그러하듯 천장이 없었다. 지붕 아래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벽 너머로 별의별 소리며 냄새며 하는 것들이 오고 가고 있었다. 벽에 귀를 기울이니 밤마다 우는 건 아이가 아니라 성인 여성이었고, 계속 울기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웃었다가 울었다가 말도 했다가... 그 여성이 큰 소리로 울 때 쯤이면, 거친 숨을 내쉬던 히로키도 흥분했는지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그 후로 나는 자연스럽게 취침 시각에 대해 물어보며, "나는 밤에 늦게 잔다"고 나름대로 눈치를 주었는데도 히로키는 계속해서 그 시간에 야동을 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왜 이어폰을 사용하지 않는지 정말 궁금해서 나중에 술 마실 때 살짝 돌려서 물어봤더니, 히로키는 "일본에서 가져온 이어폰이 고장났는데, 우간다에는 품질 좋은 이어폰이 없어서 안산다"고 대답했다. 나중에 핀란드인 봉사자 아이노(Aino), 한국인 봉사자 k와 함께 걷다가 히로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히로키가 밤마다 야동을 보는데 시끄러워서 잠을 못잤다"고 털어놓는 나에게 아이노는 "남자의 본능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해 우리 모두 큰 소리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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