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내가 돈을 더 내야 해?

무중구 프라이스

by 만다지
282997_142872459128940_835977_n.jpg 이 사진은 아이들과 싸우는 사진이 아니다. 2011년 휴가 때 코트폰 아이들에게 줄 사탕수수를 구입 후 자전거에 싣는 모습.

봉사활동 2개월 차에 접어들자 나의 영어도 많이 나아졌는데, 확실히 영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리고 보니 그럭저럭 생존을 넘어선 대화가 가능한 영어가 되었다. 그동안 문자 그대로만 들리던 영어도 화자의 말투나, 표정 등도 고려해서 들으니 영어로도 풍부한 감정을 담아낼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우간다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데, 교육 수준에 따라 구사 가능한 영어의 수준이 있었다. 한마디로 말이 짧거나 길거나 그 둘 중 하나였다.


마타투(Matatu 미니버스)에 타면 손님들의 좌석을 지정하고 요금을 받고 거슬러주는 일종의 차장인 컨덕터(Conductor)가 있는데, 컨덕터가 “You seat here”라고 말하며 가리키는 자리에 앉으면 됐다. 식당에 가도 “You choose your food”, 가게에 가도 “You pay”, 구걸하는 아이들은 “Give me money”… 나중에 이런 표현들을 한국말로 그대로 바꿔서 “너는 여기 앉는다”, “너는 너의 음식을 고른다”, “너는 지불한다”, “나에게 돈을 주어라”고 말하는 k오빠 덕분에 많이 웃었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 한 외국인이 쓴 우간다 여행기를 읽어보니 버스에서 대뜸 자기에게 다가와 “Give me money”라고 말하는 차장을 향해 “Say please”라며 화를 냈다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듣기에는 엄청 무례한 영어이긴 한데 루간다어를 영어로 그대로 바꾸어 말하기 때문에 저런 촌극이 발생했던 것 같다. 나 또한 책에서 배운 영어와는 다른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들과 대화하며 조금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지만 중학교만 마쳐도 고급영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이 꽤 많기 때문에 교육 수준에 따른 영어 구사 능력의 차이를 실감할 수 있었다.


사실 나의 영어가 조금 나아진 이유는 밝히기엔 쑥스럽지만 불의에 대항하기 위한 쌈닭의 마음으로 계속 싸우다 보니 혼을 담아 영어로 말할 수 있게 됐다. 시장에 가거나 버스를 타면 현지인들은 얼마를 내는 지 유심히 관찰하다가 나에게 무중구 프라이스(Mzungu price 바가지 요금)를 씌우려는 상인에게는 득달같이 달려들어 제 값을 치루고야 말았다. 한번 나의 마음 밑바닥에 자리잡은 의심은 한국에 돌아가서도 나아지지 않았는데, 한번은 도서관 회원증을 만들었다 탈퇴하는 과정에서 당일 보증금 환불이 안된다고 하자, 사서에게 “나중에 환불해주겠다”는 서명을 받기까지 했다. 지금도 그 사서분을 생각하면 죄송한데, 내가 처음 만난 아프리카는 스스로 자신을 지키지 않으면 안되는 곳이었기 때문에 이런 저런 의심으로 무장한 게 한국에서도 쉽게 해제되지 않았던 탓이라고 변명해본다.


우간다 생활에 익숙해지자 나는 그동안 내가 인내했던 상황들에 대해서 싸우기 시작했다. 첫 번째는 내가 캄팔라에서 활동하는 봉사자들과 달리 모든 생활용품을 구입해야 했던 상황과 숙소 월세를 따로 지불해야 했던 상황에 관한 것이었다. 나는 UPA에 불만을 이야기했고 UPA는 그동안 전례가 없다며 거절했지만, 지속적으로 따지자 내가 그동안 구입한 물품들을 활동 종료 후 반납하면 그 비용을 환불해주는 것으로 합의했다. 월세는 내가 머물렀던 숙소가 UPA 소유가 아닌 코트폰(Cotfone)의 소유이므로 어쩔 수 없다는 것으로 일단락 지어졌다. 그리고 다음 타겟은 카잉가(Kaying)였는데, 내가 내는 월세가 결코 작지 않아서 내 월세로 카잉가네 집 전체와 학교의 전기세를 납부한다는 점을 알게 된 것이다. 월세 경우는 자이카(JICA)에서 파견된 히로키 또한 비슷한 금액을 내기 때문에 나는 화력이 떨어져 더 이상 항의하지는 않았다.


영어로 말하는 것에 자신감이 붙을수록 내가 바로잡아야 할 일들은 더 많아 보였다. 하루는 코트폰의 외국인 봉사자들 모두에게 학교 화단을 정비하는 업무가 주어졌는데, 가축들이 화단에 침범하여 꽃이나 야채를 먹는 것을 막고자 펜스를 만드는 일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말뚝과 노끈이 필요했고, 땅에 꽂는 말뚝이 썩지 않도록 페인트나 파라핀을 칠해야 했다. 그런데 카잉가는 이러한 것들을 구입할 돈이 없다며 봉사자들에게 돈을 걷어 구입하자고 한 것이다. 나를 비롯한 다른 봉사자들은 화가 나기도 했지만, 꾹 참고 돈을 걷어서 물품들을 구입했다. 당시 불만을 반드시 표출해야 직성이 풀렸던 나는 같이 일하는 학교 선생님에게 “왜 봉사자들이 돈을 걷어야 해? 이 학교는 카잉가가 만든 학교잖아”라고 말했고, “이 학교는 우리 모두의 학교야”라고 대답하는 선생님의 대답에 말문이 막혔다. 학교 화단을 정비하는 일이 카잉가 개인을 위한 일이 아니라, 학교에 다니는 다수의 아이들을 위한 일이라는 것을 잊었던 나. 지금 생각해보면 학교 보수 정비를 위한 예산이 학교 운영비에 반드시 포함되었을 테니 거기에 대한 증빙을 요구할 수도 있었겠지만, 당시에는 마냥 부당하다는 생각만으로 싸우려고만 했던 내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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