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길거리 음식만 먹으면 병 걸려

우간다에서 발견한 재능_한식대첩의 서막

by 만다지
320399_155192597896926_6277474_n.jpg 2011년 휴가 때 치왕갈라에 갔다가 JICA 카이토(Kaito)와 함께 방문한 마콘도 마을 벤아저씨네 집에서 찍은 사진

'한식 몇 개월 안 먹는다고 별일 생기기야 하겠어?'라고 생각한 나는 정말 한국 식재료는 하나도 챙기지 않고 우간다로 향했다. 현지에 가면 현지식을 먹어야지 생각했기 때문에 내 캐리어에는 그 흔한 라면, 고추장, 된장 하나 없었다. 우간다에 도착하여 처음 2주간 머문 캄팔라에서 만난 한국인 봉사자들은 대부분 외식을 하거나 한식을 만들어 먹었기 때문에, 나도 뭐 좀 들고 들고 올 걸 그랬나 생각도 들었지만 현지식을 먹자는 내 각오대로 살아보자며 마음을 다잡았다. 다행히 우간다 길거리에서 흔하게 파는 롤렉스(Roll eggs)는 정말 맛있었고 매일 먹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 외에도 만다지(아프리카 도넛), 짜파티(Chapati) 등 저렴하고 맛있는 군것질 거리들을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었고, 가게에서도 항상 식빵을 구할 수 있어서 먹을 것에 대한 걱정을 크게 하지 않았다. 그리고 캄팔라에는 외국 식당들 뿐만 아니라 한국식당도 있어서 맛있는 것이 먹고 싶을 때 언제든지 찾아갈 수 있었다.


그러다 마사카 시내에서도 한참 떨어진 치왕갈라 마을에 도착하니 캄팔라에서의 짧은 생활이 꿈같이 느껴졌다. 카잉가는 물론이고 히로키도 나에게 "스스로 요리해서 먹지 않으면 살기 어렵다"고 몇번이고 강조했다. 나는 매일 마을에 나가서 롤렉스를 사 먹으면 되지, 굳이 조리도구까지 구입해가면서 요리를 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했다. 매일 롤렉스만 먹는 나를 보던 이메(Imetres)는 "너 그렇게 매일 길거리 음식만 먹으면 병 걸려"라고 말했고, 나는 정신이 번쩍 들어 서둘러 조리도구를 구입하고 요리를 시작했다. 냄비, 접시, 칼, 쟁반, 컵, 스푼, 포크... 무엇하나 품질이 우수한 게 없는 모조리 중국산 싸구려 물건들이었지만, 이것들로 별의별 음식을 다 만들었던 것 같다.


나의 첫 요리는 대범하게도 생선탕수였다. 한국에서 자취생활을 하긴 했지만 집에서 잠만 자는 생활을 한터라 요리 실력 같은 게 쌓였을리가 없었지만 삼촌집에서 얹혀 지낼 때 종종 탕수육을 만들어보곤 했던 기억이 났다. 히로키와 주말 시장에 갔다가 민물 생선 한마리를 구입했다. 집에 가져와 그 좁은 방안에서 제리캔 기울여 받은 물로 생선을 씻고, 뼈와 내장을 발라내고 있자니 어쩐지 살인자가 된 기분이었다. 생선 살을 잘 발라낸 후 계란물과 밀가루에 빠뜨렸다가 식빵을 가루내어 만든 빵가루를 묻혀 튀겨냈다. 후라이팬 대신 냄비에 기름을 잔뜩 붓고 튀겨낸 거라 바닥에 눌러 붙기 일쑤였지만 어떻게든 튀김과 같은 형상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피망, 양파를 볶다가 물과 토마토 소스를 넣고 끓였다. 보글보글 끓을 때 쯤 밀가루 섞은 물을 넣고 걸쭉하게 만들었다. 녹말 대신 밀가루를 썼던 것인데 흉내내기에는 괜찮았다. 튀겨진 생선튀김에 소스를 부으니 그런대로 생선탕수가 완성되었다. 히로키는 한입 먹어보더니 일본인 특유의 오바스러운 리액션으로 "에~"하면서 맛있다고 난리였다.


이후 나는 마을 푸줏간에서 소고기를 사다가 불고기도 만들고, 돼지고기 사다가 돈까스도 만들고, 야채 사다가 야채전도 부치고, 인도 향신료를 사다가 볶음밥도 만들고, 갓 짠 우유로 크림스파게티도 만들었다. 토마토는 짠맛을 갖고 있다는 것, 계란은 상온에 두어도 괜찮다는 것도 우간다에서 알게 된 사실이었다. 냉장고도 없는 곳에서 딱 먹을 만큼만 구입해 요리하는 것도 처음이었다. 주어진 환경 내에서 허락된 소비를 한다는 게 그렇게 슬픈 일만은 아니었다. 돈이 없어서 접근 못하는 것과 돈이 있어도 접근 못하는 것은 천양지차였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수만가지 종류의 상품 중에 내가 구입 가능한 상품은 가성비 라인으로 제한되었지만, 우간다는 상품 자체가 제한적이어서 내가 돈이 많거나 없거나 구입할 수 없는 건 똑같았다. 가난이라고 하는 것이 내게 주어졌다기 보다는 내가 선택한 가난이라는 점에서 이 시기 돈이 없어서 서글펐던 적은 없었다.


내가 우간다 사람들에게 해준 첫 음식은 바로 야채전이었다. 한국 밀가루와 달리 점성이 약한 우간다 아잠(Azam) 밀가루에 계란을 듬뿍 풀고 가지, 피망, 양파, 당근을 채썰어 소금과 함께 넣고 기름에 구워내면, 쫀득쫀득하고 바삭바삭한 야채전이 고소한 맛을 만들어냈다. 어른들이고 아이들이고 한번 맛을 보면 계속해서 먹었고 내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는 사람들을 보면 기분이 좋아져서 더 만들곤 했다. 나중에 봉사활동이 끝난 후 다시 치왕갈라에 갔을 때는 5학년 카툼바(Katumba)가 내 팔에 매달리며, "안티 킴(Auntie Kim), 우리 팬케이크 언제 또 만들어줄거야?" 수줍게 물었다. 요리 안하고 매일 롤렉스 사 먹겠다고 큰소리치던 내가 요리를 시작하고 사람들과 함께 음식을 나눴던 과정은 지금도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한편 정말 흉내낼 수 없는 한식은 미역국, 라면, 된장찌개 같은 요리였는데, 이것들은 캄팔라에 가서 한국인 봉사자들이 차려낸 밥상을 통해 맛볼 수 있었다. 내가 한달 넘게 혼자 치왕갈라에서 지내다가 캄팔라에 갔을 때는 한국 요리가 너무 맛있어서 연신 "와, 맛있다"를 연발하니, h오빠는 "너는 생고기 줘도 맛있다고 먹을 것 같다"고 말해 정말 많이 웃었다. 게다가 요리를 아주 잘하는 w는 한국인 봉사자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그녀가 내 생일날 끓여준 '다시다를 넣지 않은 소고기 미역국'의 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내가 캄팔라에 갈 때마다 귀한 한국 식재료를 나눠주기도 하고, 한상 푸짐하게 차려주기도 하는 한국인 봉사자들 덕분에 끈끈한 한국인들의 정을 느낄 수 있었다. 비록 당시 나는 챙겨온 게 없어서 나눌 게 거의 없는 탓에 염치less, 민폐녀가 되긴 했지만, 이러한 경험이 있어서 나는 항상 해외에서 만난 한국인 봉사자들을 위해 먹을 것을 만들어 나누는 것에 열심인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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