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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연 작가 (김재연)

머릿속 상상을 종이 위에 형상화시키는 작업, 작가 김재연

by 미술사가 나리

어린 시절에 재연 작가는 집안에서 샤프들과 제도판, 여러 가지 모양의 자 같은 도구들을 쉽게 찾아낼 수 있었다. 무엇에 쓰는 물건들인지 정확히 알지는 못했지만, 무엇인가를 그리고, 모양을 만들어내는 도구 임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재연 작가의 아버지는 건축가셨고, 그분은 그림과 조각, 글씨 쓰는 일 등, 모든 예술적 활동에 천부적인 재능을 지니신 분이셨다. 아버지의 예술적 재능을 그대로 물려받은 재연 작가는 어릴 때부터 항상 무언가를 그리고, 만들고 있었다. 스스로 그림을 잘 그릴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확신을 가지고 그림을 그렸다. 어떤 때는 상상했던 그대로 그림이 그려졌지만, 또 어떤 때는 머릿속에 그려 본 이미지들이 제대로 종이 위에 옮겨지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럴 때는 상상을 실체로 만드는 일에 실패했다는 생각에 실망을 하곤 했다.


최근 몇 년 간 세상 모든 사람들이 세상 밖에 나오지 않고 집 안에 머무르는 시간이 왔을 때, 재연 작가는 혼자 집에서 그림 그리기와 피아노 치기를 시작하였다. 하루 종일 태블릿 위에 그림을 그렸다 지웠다 수백 번을 반복하다 보니 제법 맘에 드는 그림을 얻어내기도 하였다.


재연 작가는 그의 일상의 소소한 것들, 주변의 사소한 일들을 놓치지 않고 잡아내어 그것을 그림 혹은 글로 바꾸어 놓는 일에 익숙하다. 매일매일 겪게 되는 사건들, 마주치는 사람들, 찍어두었던 사진들, 다른 사람의 그림이나 사진들, 귓가에 들려오는 음악과 노래들, 이것들 중 어느 하나도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는다. 이런 것들과의 만남이 가져다준 자극들은 재연 작가의 머리와 가슴을 지나 손 끝으로 전해져 아름다운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만들어진 작품들은 그것이 글이던 그림이든 간에 재연 작가표 감성으로 똘똘 뭉쳐진 채 모습을 드러낸다.


이 글 표지에 실린 작품 <바람이 분다>(2022)는 데이비드 호크니의 아이패드 드로잉의 선명한 초록빛 색채를 연상시킨다. 초록 잎사귀들이 무성하게 춤을 추듯 리드미컬하게 자라 있는 들판 위에 작고 소박한 오두막 한 채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이 집은 보는 관객들 자신의 마음의 집일 수도 있고, 또 내가 아는 어떤 이의 마음의 집일 수도 있는 그런 작은 집이다. 하늘에는 파스텔톤 연핑크와 오렌지색이 뒤섞여 있고, 그들이 맞닿으며 만들어내는 다양한 선들이 해 질 녘 노을 지는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상하로 이분된 화면은 핑크색 상단의 안정적이고 수평적인 느낌과 초록빛 하단의 뾰족뾰족하고 수직적인 느낌이 리드미컬하게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이 둘 사이에서 우리의 시선은 어두운 선홍색 지붕과 남색 몸체를 지니고 환하게 불이 켜져 있는 작은 오두막집으로 향한 후 그곳에 멈추게 된다.

<너, 들꽃>,2022, 종이 위에 수채


재연 작가는 현생 직업이 라디오 방송 작가였다. 그는 글과 글씨를 쓰면서 모든 걸 시작한, 글을 쓰는 사람, 즉 '작가’이다. <너, 들꽃>이란 작품에는 오른편에 주홍빛 꽃망울을 터트린 이름 모를 들꽃이 그려져 있다. 왼쪽에는 재연 작가가 쓴 글 '당신은 예쁜 사람이다'가 재연 작가체로 쓰여 있다.

이 글은 그가 쓴 글 중에서 본인이 제일 좋아하는 글이라고 했다.


당신은 예쁜 사람이다

당신은 착한 사람이다

당신은 정직한 사람이고 대견한 사람,

소박한 사람, 귀하디 귀한 사람.


숨 막히는 세상 속에도

예쁘게 피어 숨 쉬는

가여운 들꽃 같은 사람.


'난 그래도, 괜찮은 사람 하나 알고 있어.'

말할 수 있게 해 준 당신은

그럼에도 희망이다.


당신은 고마운 사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다.


내 맘에도 쏙 드는 아름다운 글이다. 재연 작가는 먼 훗날 직접 본인의 필체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서 100퍼센트 재연 표 핸드메이드 동화책을 만들고 싶어 한다. 그가 만들 동화책의 이야기와 그림들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정말 궁금하고 기대가 된다. 그 책을 손에 들고 읽으면 책에서 사랑스럽고 감각적인 재연 작가의 향기를 맡을 수 있지 않을까?


<엄마는 인어공주> 스케치 초안, 2022, 아이패드 드로잉

아르누보와 상징주의로 분류되는 화가 구스타브 클림트의 작품이 연상되는 <엄마는 인어공주>에는 고개를 아기 쪽으로 90도로 꺾은 채 아기를 품에 안고 있는 인어공주 엄마가 그려져 있다. 엄마는 사람의 다리 대신 물고기의 지느러미를 지니고 있다. 실은, 인어공주 엄마는 다리를 맘대로 쓰지 못하는 장애를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아이는 제대로 걷지 못하고 매사에 더디고 아픈 엄마를 장애인이 아닌, 잘 알 수 없지만 뭔가 멋지고 신기한 세계에 살고 있는 인어공주라고 생각하고 있다. 아이의 순수함과 엄마에 대한 사랑은 아프고 몸이 불편한 엄마를 아름다운 인어공주로 바라보게 해 준 것이다. 이 작품에서도 우리의 마음속에 따뜻함을 전해주는 재연 작가 특유의 내러티브를 읽어낼 수 있다.


재연 작가는 그가 만나는 각각의 사람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정을 지니고 있다. 그 사람들을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보기 원하며, 또한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그들에게 내어 보인다. 그의 마음 기저에 깔린 이런 태도는 여과 없이 그의 그림에서도 읽힌다. 솔직하고 따뜻한 사람, 사랑받기 원하고 사랑을 전하고 싶어 하는 사람, 이러한 재연 작가가 앞으로 그려낼 그림들이 더 기대되고 기다려지는 것은 나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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