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온기의 내러티브를 전하는 일러스트레이터, 그림이 좋아
처음 그를 만났을 때 왜 '그림이 좋아'라는 닉네임을 붙였는지가 궁금했다. 그 이유를 묻는 내게 그는 그의 최근의 경험에 대해 나누어 주었다. 대학교 때부터 15년 이상 그림을 계속해서 그려온 그가, 약 반년 전쯤 그림을 그릴 수 없었던 시기가 왔고, 다시 좋은 그림을 그리고 싶은 마음을 담아 '그림이 좋아'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불러주는 그 이름 때문이었는지 정말 신기하게도 그 이후로 다시 그림이 좋아지고 행복하게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는 얘기를 해주었다.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마음으로 그 만의 마법의 주문처럼 지었던 이름이 그에게 마술과도 같은 결과를 가져다주었나 보다.
그는 어린 시절에는 케이블 Mtv 가 보여주는 감각적인 영상과 팝아티스트들의 화려한 앨범 표지, 뮤직 비디오 등에서 색다른 감동과 신선함을 느꼈고, 그때 느낀 감정들을 그림으로 옮겨 표현하는 것을 즐겼다. 그러나, 이제 성인이 된 지금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과의 대화나 요즘 읽고 있는 책의 내용에서 작품의 영감을 얻고 있으며, 그 영감이 상상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 글 표지에 올린, 그림이 좋아 작가의 작품 <나의 빛을 너에게>(2022)는 지구에 살고 있는 여린 소녀들에게 은은한 빛을 기꺼이 내어주고 있는 달의 여신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달빛의 여신 아르테미스를 연상시키는 여신은 따스한 황금빛으로 그려진 채, 손 위에 동그란 지구별을 올려놓고 사랑스러운 눈길로 응시하고 있다. 달의 여신의 풍성하게 물결치는 머리카락과 리드미컬한 곡선으로 표현된 여신의 몸은 우리의 마음에까지 그녀가 품고 있는 따뜻함과 부드러움이 흘러와 닿게 해 준다. 온화해 보이는 노란색과 파스텔톤 하늘색이 풍기는 포근하고 은은한 향기는 우리의 코끝으로 날아와 그 향기에 취한 우리를 그들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작가 특유의 섬세하고 따뜻한 내러티브가 담긴 이 그림에서, 반짝이는 별들 사이에서 원형의 지구를 들고 있는 달의 여신은 아름다움과 사랑스러움의 결정체로서 등장하고 있다.
그림이 좋아 작가의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과 동물들은 지금 막 동화나 만화책 속에서 뛰쳐나온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전부터 진행되고 있는 이야기의 한가운데에서 잠시 뛰어나와 우리와 마주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따뜻하고 아름다운 자기만의 내러티브를 품은 채, 그의 그림 앞에 선 관객인 우리에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요청한다. 때로는 우리에게 자신들의 이야기 속 주인공이 되어달라고 초청하기도 한다.
그림이 좋아 작가는 색채와 이미지들을 부드럽게 반복적으로 쌓아감으로써 화면에 풍부한 깊이감을 부여하고 있다. 그의 작품 <다정함을 줄게> (2022)의 화면을 자세히 살펴보면, 달의 여신이 앉아있는 달과 우주 공간에 다양한 크기의 비눗방울 같은 원들이 중첩되어 있어, 보는 우리로 하여금 화면의 깊이를 가늠하도록 해준다. 저 멀리 지구에 사는 사람들에게 달빛을 통해 자신의 은은한 사랑과 온기를 전하고 있는 달의 여신은 옆에 앉아 눈을 맞추고 있는 귀여운 달나라 토끼의 가장 좋은 친구이기도 하다. 달의 여신의 무릎 위에 앙증맞은 한 손을 살포시 얹고 있는 동그란 눈망울의 토끼를 한 번 품 속에 꼭 껴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은 이 그림을 보게 되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피할 수 없는 자연스러운 반응일 것이다.
달의 여신 팔꿈치 뒤에 새겨진 조그만 초승달 모양을 발견한 관객들이라면 잘 숨겨둔 작가 특유의 섬세하고 귀여운 센스를 함께 찾아낸 기쁨에 조용히 미소를 지을 수도 있다.
만화, 동화 캐릭터와 유사하게 인물 묘사를 한다는 점에서 그림이 좋아 작가의 작품은 팝아트, 네오 팝아트적인 특성을 보인다고 할 수 있지만, 그들 예술 속 등장인물들은 다소 차가워 보이고 물성이 강조된 비인간적인 면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 이에 반해, 그림이 좋아 작가의 인물들은 따뜻하고 감성적인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화면에 모습을 나타내고 있으며, 그림을 보는 관객들과 눈을 맞추며 대화하고자 한다. 또한 작가는 그의 그림이 생생하고 따뜻한 에너지를 보는 이들에게 전하여주는 매개체가 되어주길 소망하고 있다.
매일 새벽 음성 플랫폼에서 방을 열어 친구들을 맞이하는 작가의 방 마무리 멘트를 나는 참 좋아한다.
" 안녕? 새벽별 친구들! 매일 새벽, 어스름한 어둠을 헤치고 나와 친구가 되어주어 고마워.
나는 매일 너를 위해 문을 열고 집을 치우고 따뜻한 차를 끓일 거야. 네가 오지 않아도
설레는 마음으로 너를 기다리겠지. 온다면 더 좋고."
그림이 좋아 작가의 작품 앞에 서면 어디선가 이런 따뜻하고 상냥한 말투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관객들을 대하는 그의 그림 또한 이런 사랑스러운 환대의 연장선 상에 놓여있다. 그림이 좋아의 그림 속 작가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고 그들의 이야기에 동참해보는 것은 팍팍한 일상에서 맛볼 수 있는 행복한 일탈의 경험이 되어줄 것이 분명하다.
오늘 아침은 그의 작업실에 찾아가 얼굴을 마주 보며 따뜻한 차를 함께 마시고 싶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