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라가 순배와 알고 지낸 지 약 한 달쯤 지났을 때, 순배는 수라에게 사랑을 고백했다.
“누나, 사랑해요. 정식으로 사귀고 싶어요.”
수라는 그저 무심히 그냥 흘려들었다.
“네가 담배 끊으면, 진지하게 교제를 생각해 볼게.”
“정말요?”
“응.”
순배가 과연 금연에 성공했을까? 안타깝게도, 금연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순배는 직장인이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직장인에게 담배는 떼려야 뗄 수 없는 필수품이라고 했다. 근무 시 받는 업무 스트레스와 인간관계 문제 때문에, 담배가 없으면 버티기조차 어렵다고 했다.
“아니, 그건 그냥 핑계야. 나도 예전에 직장 다녀봤어. 물론, 반년 만에 때려치웠지만. 세상의 모든 직장인이 다 흡연자는 아니잖아? 금연은 정신력의 문제라고 생각해. 흡연자는 의지박약의 중독자일 뿐이야.”
마침, 순배가 다니는 회사에는 금연에 성공하는 직원에게 상금을 주는 좋은 제도가 있었다. 상금은 무려 100만 원이었다.
“와, 상금 탐난다! 금연 성공해서 상금 받은 직원이 진짜 있어?”
수라가 순배에게 물었다.
“유일무이해요.”
“아, 달랑 1명? 누군데?”
“폐암 판정받은 50대 남자요.”
“앗……. 암 환자시구나. 금연하실만하네. 그분 건강은 어떠셔?”
“항암 치료 계속 받으시면서, 출근하신대요.”
“병자인데도 불구하고, 생업을 포기할 수 없는 처지시구나. 아무튼, 너도 폐암 걸리기 싫으면 어서 담배를 끊으렴!”
“노력할게요……”
상금 수여자는 정기적으로 흡연 유무를 가리는 검사를 받아야 하고, 만약 니코틴 반응이 검출될 시에는 상금을 환수해야 된다고도 했다.
순배는 그 후로도 수라에게 진지하게 좋아한다, 사랑한다고 말했다. 수라는 건성으로 고맙다고만 대답했다. 수라의 입장에서 순배는 그저 나가 노는 상대였으니, 별로 아쉬울 건 없었다. 하지만, 순배는 수라와 결혼하길 원했다.
“뭐? 결혼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우리 사귀는 사이도 아닌데?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결혼을 말해? 성급하다!”
“누나랑 결혼하고 싶어요. 누나를 사랑하니까요.”
“결혼하려면 자금이 있어야 하는데, 너 모아 놓은 돈은 있어?”
“XX,XXX,XXX원 모았어요. 너무 적죠?”
“음, 나보단 많네. 난 땡전 한 푼 없어. 빈털터리야.”
수라는 순배를 배우자 감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20, 30대가 결혼 적령기이긴 하지. 40대 이후에 결혼하는 사람들도 물론 있겠지만, 그 나이엔 아무래도 다들 임자가 있을 테니까. 아니면, 이혼했거나. 그나저나, 순배를 평생 반려자로 사랑하며 함께 살 수 있을까?’
수라는 자영에게 순배에 대해 말했다. 순배가 일전에 서울 금와 병원에 수라를 보러 왔기에, 자영도 순배의 존재를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순배가 나랑 결혼하고 싶대요.”
“그 애가 몇 살이라고 했지?”
“저보다 4살 어려요.”
“그럼, 너무 어리지 않니?”
“다 컸는걸요. 성인이잖아요.”
순배는 성실하고, 온순했지만 수라에게는 순배에 대해 썩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들이 있었다. 순배는 수라에게 다정했지만, 배움이 짧았다.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엉망인 그의 편지를 읽을 때면, 수라는 결코 유쾌할 수 없었다.
‘휴, 가르쳐도 늘 이 모양이네!’
수라가 미영과 솔아에게 고민을 털어놓자, 친구들은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교수랑 학생도 아니고, 가르치긴 뭘 가르쳐? 맞춤법, 띄어쓰기가 좀 틀려도 손 편지 써주는 게 어디니?”
“그러게. 학생 지도하는 거 아니잖아. 피곤하게 대체 왜 그래야 해? 그냥, 좋은 게 좋은 거 아니야?”
자신의 편이 아니라 오히려 순배의 손을 드는 친구들의 반응에 수라는 놀라고 말았다.
“야아, 그래도 내가 좀 아깝지 않니?”
“나이에서 네가 기울잖아. 순배는 자그마치 4살 연하다! 싱싱한 20대!”
수라는 순배에게 제안했다. 순배가 독후감을 한 편 쓰고 수라에게 보내면, 이후에 만나기로 했다. 조건부 만남인 셈이었다. 순배는 독서에 별 흥미가 없었으나, 초반엔 꽤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2교대로 12시간을 근무하며 독서하고, 작문까지 한다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순배가 독후감 7편을 썼을 때였다. 수라는 이메일로 받은 순배의 독후감을 읽었다.
‘휴, 자꾸 같은 말을 반복하네. 위에서 쓴 문장을 또 썼어. 진짜 쓸 내용이 없었나 봐. 순배야,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하는 거 티 많이 난다.’
수라도 역시 갈수록 지쳤다. 독후감을 검토하고, 내용을 수정하는 작업도 은근히 체력을 요하는 일이었다.
순배는 여전히 흡연자였고, 독후감을 굉장히 쓰기 싫어했다.
수라가 과거에 만난 남자를 떠올렸을 때, 흡연자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20대 초반에 만난 4살 연상의 애인이 엄청난 골초였다. 교제한 지 반년이 되어가자, 결혼 이야기가 나왔다. 수라는 애인과 헤어지고 다시 만나기를 반복했으나, 그가 흡연자라는 점이 무척 싫었다. 이별은 쉽지 않았지만, 결국 미련 없이 헤어졌다.
두 번째로 만난 흡연자 애인은 수라보다 2살 위의 오빠였다. 수라가 담배를 싫어한다고 하자, 바로 금연했다. 연애는 즐겁고 행복했지만, 4개월쯤 지나자 수라는 상대의 단점을 파악해 버렸다. 남자는 의욕이 없고, 무능력했다. 사실을 말하자면, 경제력이 낮았다. 수라는 이번에도 또, 과감히 이별했다. 연애 기간은 8개월이었다.
수라는 도무지 흡연자를 이해할 수 없었다.
‘한심하다, 구순배! 흡연이 건강에 해로운데, 알면서도 일부러 건강을 해치는 게 말이 돼? 흡연해도 물론, 건강하게 장수할 순 있지. 하지만, 난 절대 싫어!’
전해 들은 바에 의하면, 금연에 성공한 사람이 세상에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성공자는 3명이었고, 모두 남자였다.
A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그의 아버지는 흡연자였다. 아들의 교복에는 아버지가 핀 담배 냄새가 뱄다. 학교에서 선생님과 친구들이 그에게 담배를 피우냐고 물었다.
“아, 제가 아니라 아버지가……. 저는 안 펴요!”
그가 집에 돌아와 아버지께 그날 있었던 일을 말하자,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미안하구나.”
아버지는 곧 담배를 끊으셨다.
B가 9살이었을 때, 어머니가 둘째를 임신하셨다. 딸이라고 했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병원에 갔는데, 의사는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했다.
“곧 태어날 따님도 훗날 결혼을 하겠죠. 만약 아버님이 따님 손을 잡고 식장에 직접 들어가고 싶으시다면, 지금부터 금연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아버지는 당장 담배를 끊으셨다.
C는 10대 때부터 오랫동안 담배를 피워왔다. 그와 연년생인 누나는 20대를 넘기기 전에 시집을 갔고, 곧 출산했다. 그녀는 남동생의 흡연이 자신의 아이에게 해가 될까 봐 염려했다. 삼촌은 사랑스러운 조카를 위해 마침내 그 어려운 금연을 해냈다.
수라는 순배에게 더 이상 연락하지 않았고, 순배도 역시 연락하지 않았다. 결국, 그들은 헤어졌다. 반년이 채 안 된 시점이었다.
‘아, 우리는 여기까지인가 보다. 시간을 그렇게 오래 줬는데, 어쩜 담배를 못 끊냐? 나를 향한 마음이 겨우 그 정도였나 보지.’
그로부터 5년 후, 모르는 번호로부터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수라는 시내버스를 탄 채 이동하는 중이었다. 퇴근 시간이라서, 만석이었다.
“여보세요?”
“민수라 씨 번호 맞나요?”
“네, 그런데요. 누구세요?”
“저예요. 구순배.”
수라는 당황해서, 말을 잇지 못했다.
“혹시, 기억하세요?”
“어어. 기억해.”
“잘 지내셨어요?”
“응. 너도 잘 지냈니?”
“저는 누나랑 헤어진 후, 아무도 안 만났어요.”
“그랬구나.”
“다른 여자를 만나야 하는데, 별로 만나고 싶지 않더라고요.”
“너, 지금도 담배 피우니?”
“네.”
수라는 순배에게 실망한 지 이미 오래였고, 무려 5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는데도 여전한 걸 보고 재차 실망하고 말았다. 통화는 별 실속 없이 종료됐다. 승객들이 많은 공공장소여서이기도 하고, 서로 더 이상 할 말이 없기에 어색한 분위기에서 대화가 마무리됐다.
게다가, 당시 그녀에게는 이미 다른 남자가 있었다. 그는 질투심이 강한 사람이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