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가 열창하는 무더운 여름이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주룩주룩 흘러내리는 삼복더위였다. 초복과 중복이 지나고, 말복이 찾아왔다. 늦은 오후, 딸 혼자 덩그러니 집에 남아 있었다. 때마침, 부모는 출타 중이었다. 수라는 말복 기념으로 치킨을 먹기로 결정했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자영의 동선을 파악해야만 했다. 치밀하게 계획한 작전이었다.
"여보세요? 언제 오세요?"
"저녁 약속이 있어서, 늦을 거야. 아빠도 어디 가셨어. 수라, 혼자 밥 잘 챙겨 먹어라."
수라는 통화를 종료하고 잽싸게 치킨을 주문했다.
"안녕하세요. 치킨 한 마리 시내동 XXX-X 번지로 배달해 주세요. 몇 분이나 걸릴까요?"
기회는 이 때다 싶었고, 신이 났다. 아버지는 언제 귀가하든 무관하나, 어머니에게만은 절대 들키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과자를 쟁여놓은 걸 보고, 어머니가 그 난리를 쳤지. 만약, 치킨이 걸리면 난 사망감이다! 휴, 지난번에 아버지랑 햄버거 먹은 건 안 들켜서 천만다행이야.'
수라는 지난 초복과 말복에도 치킨과 백숙을 먹으며, 몸보신을 잘했다. 치킨은 지인과 외식할 때 먹었고, 자영이 요리한 백숙은 가족들과 식사하는 자리였다. 백숙이 싫은 건 아니지만, 수라는 치킨이 훨씬 더 맛있었다. 그녀는 모처럼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기 위해 거실의 에어컨을 틀었다.
'집에 혼자 있으니까, 해방감 느껴진다! 으, 환자 식단 지겨워. 아픈 사람 하나 때문에 온 가족이 무슨 고생이람?'
수라는 새것을 선호하는 편이라서, 늘 신제품을 골랐다. 방금 주문한 치킨도 역시 못 먹어본 맛이라서 호기심에 결제했다. 그런데, 이변이 생기고 말았다. 치킨을 주문한 지 약 15분도 채 되지 않아 갑자기 현관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철문이 끼익, 철컹하는 소리를 내며 여닫혔다.
'어, 누구지? 아버지인가?'
수라는 현관으로 나가 마당을 살폈다. 아니길 바랐으나, 자영이었다. 수라는 질겁했으나, 침착하게 물었다.
"왜 빨리 오셨어요? 약속 있으시다면서요?"
"어, 취소됐어. 저녁 먹었니?"
"아뇨, 아직이요."
그로부터 약 10분이 지났을까? 초인종이 울렸다.
"배달 왔습니다!"
수라는 자영의 눈치를 살피며, 현관으로 달려 나갔다.
'개 망했네! 어머니가 엄청 잔소리하실 텐데......'
수라는 떨리는 마음으로 식대를 계산했다. 고생해서 번 돈 XX, XXX원이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죄지은 것도 아닌데, 겁먹을 게 뭐 있어? 당당하게 먹으면 되지!'
그녀는 치킨을 안고, 실내로 돌아왔다. 향긋한 냄새를 맡으니, 설렜다. 수라는 음식을 거실 식탁에 놓았다. 어머니가 오셨으니 혼자 몰래 먹을 순 없고, 같이 먹으려는 요량이었다. 그리고, 화장실에 들어가 손을 씻었다. 그녀가 화장실 문을 열고 나오자, 별안간 참외 1개가 날아와 퍽 하고 수라의 복부를 가격했다.
"아야! 이게 무슨 짓이에요?"
수라는 놀라서 눈을 치켜뜨며, 복부를 방어했다. 범인은 바로 자영이었다. 그녀의 안색은 붉으락푸르락 노여운 기색이 완연했다.
"너, 지금 제정신이니? 아빠가 암 투병 중인데, 치킨이 목구멍으로 넘어가?"
자영은 참외 1개를 집어 수라에게 또 던졌다. 수라는 민첩하게 피하며, 대답했다.
"그게 딸한테 할 소리예요? 간 이식 수술해서, 아버지 살려드렸으면 충분하잖아요! 건강한 사람한테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대로 못 먹게 하는 게 정상인가요?"
수라는 가족들이 부재 중일 때, 혼자 비밀스럽게 배달 음식을 먹으려 했던 상황이었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으려 했으나, 자영이 예상외로 일찍 귀가한 탓에 계획이 무산된 꼴이었다. 수라는 논리적이고도 차분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했으나, 자영의 다음 행보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뚫린 입이라고 그렇게 말한다 이거지? 에잇, 그럼 아예 못 먹게 해 주마!"
자영은 식탁에 가지런히 놓인 포장 음식을 들어 마룻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지난번 과자 사건 때도 목격한 것처럼, 어머니의 폭력성을 수라는 예전부터 인지하고 있었다. 자영은 화가 나면 물건을 집어던지고, 폭력을 휘둘렀다. 대화로 침착하게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화풀이부터 하는 성미였다.
'저 여자는 미친 게 틀림없어. 부부 싸움할 때만 그런 줄 알았는데, 이제 자녀에게도 손찌검을 서슴없이 하네!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지? 음식 하나도 마음대로 못 먹는데, 이런 대접받으면서 부모와 살고 싶지 않아. 이 집에서 더 이상 살 수 없다. 무슨 부귀영화를 보겠다고 여기 붙어있어? 이렇게 비참하게 살 바에야, 나가서 하루라도 행복하게 살다 죽겠어. 당장, 여길 빠져나가자!'
몇 초 전까지만 해도 수라의 노동의 결과이자 노력의 산물이었던 맛있는 음식은 바닥에 던져짐으로써 가치와 의미를 상실했다. 그 꼴을 지켜보는 수라의 심정은 억울하고, 미칠 것만 같았다. 거실 한복판에서 쏟아져 나뒹구는 닭고기 조각을 바라보며, 그녀는 망연자실했다.
'피 같은 내 돈! 아까운 내 돈!'
수라는 한없이 곤두박질치는 듯한 감정을 추스르며, 무릎을 꿇었다. 포장 용기를 들어 서둘러 방으로 달려갔다. 자신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신속히 방문을 걸어 잠갔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무자비한 자영이 다음에 어떤 짓을 할지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수라는 어둠 속에서 숨죽여 울었다. 정신은 피폐했으나, 식욕에는 이상이 없었다. 뱃속에선 음식을 달라며 아우성을 쳤다. 그녀는 맨손으로 먼지가 들러붙지 않았을 거라 짐작되는 부분만 골라내 입에 욱여넣었다.
'이제, 이 집에 딸은 없다.'
수라가 독립하게 된 계기 중 두 번째 사건이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