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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히 Dec 06. 2024

매질

  수라는 외향적이고 적극적인 성격이었다. 주말이면 전국을 누비며, 세상을 둘러봤다. 여행 다니며 역사와 문화를 배우고, 스스로 즐거움을 찾았다. 여행 다니며 마주친 사람들은 주로 노인들이었다.

  "아가씨, 혼자 왔어요?"

  "네. 주말마다 여행을 다니는데, 고정적으로 동행할 사람이 아직은 없네요."

  "허허, 좋은 짝이 곧 생기겠죠. 젊을 때, 여행 많이 다녀요. 나이 들면, 힘들거든. 제한이 많아져요."

  "네, 그럴게요!"

은퇴 후 여행과 등산 등 취미 생활을 즐기는 그들을 보며, 그녀는 이렇게 생각했다.

  '난 젊을 때 여행 다니겠어. 나이 들어서는 집에만 있을 테야. 여행 다니려면, 보통 부지런해서는 안 되거든. 여행은 체력이 좋아야 해. 그러니까, 난 지금 여행 열심히 다닐래!'

  허리띠 졸라가며 아낀 돈으로 수라는 세상을 여행했다. 초반에는 한국 관광 공사에서 추천한 명소를 주로 다녔다. 추천지인 이유가 분명한 멋진 곳도 있었으나, 왜 명소인지 의아한 곳도 물론 존재했다. 주말마다 쉬지 않고 여행 다닌 덕분에, 수라는 어느덧 추천 목록의 명소를 거진 다 갔다. 게다가, 남은 명소들은 죄다 산이었다.

  '주말마다 여행 다니니, 슬슬 피곤하군. 혼자 다니는 것도 외롭고, 비용도 부담스러워. 어디, 동호회를 좀 알아볼까? 가입해서 활동하면 친구도 사귀고, 비용도 아낄 수 있지 않을까? 남은 목적지가 모두 산이니, 산악회를 들어야겠다!'

  수라는 회원수가 많은 산악회에 가입해 모임에 참석했다. 산행은 주로 일요일이었고, 전국의 명산을 가기 위해 이른 새벽에 집결해 이동하는 일정이었다. 여름이라서, 한낮의 기온은 살인적이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신속히 움직여야 하는 상황이었다. 

  수라는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분주히 외출 채비를 했다. 그녀가 식사를 하기 위해 주방과 거실을 오가는

과정에서 자영이 잠에서 깼다. 어머니는 딸에게 냅다 소리쳤다.

  "민수라, 이른 아침부터 뭐 하는 짓이야! 네가 시끄럽게 구니까, 자고 있는 사람들한테 피해를 주잖아! 넌, 예의를 국 끓여 먹었니?"

  "어서 나가야 돼요. 등산 가야 되거든요."

  자영의 성난 태도를 보고도 수라는 일말의 공감하는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일정과 목적을 우선시했다. 부모에게 정나미가 떨어진 건, 이미 오래전부터의 일이었다.

  "너, 그게 엄마한테 무슨 태도냐? 이거, 지나치게 시건방져서 도저히 안 되겠어!"

  이번엔 수찬이 가세하며 수라를 비난했다.

  "다들, 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에요? 그럴 거면, 그냥 저 식칼로 그냥 찔러 죽이세요! 이렇게 구차하게 살아서 뭐 해?"

  수라도 지지 않고 대응했다. 그러자, 수찬이 효자손을 들어 딸에게 일침을 가했다. 자영도 옆에서 거들며 딸을 구타했다. 수적으로 궁지에 몰린 수라는 더 이상 맞서지 않고, 방으로 들어갔다. 서둘러 방문을 걸어 잠그고, 상처 부위를 살폈다. 그녀의 좌측 종아리에 시뻘건 타박상이 남았다.

  '이 집에서 하루빨리 나가는 수밖에 없어. 이대로 여기 있다간 쥐도 새도 모르고 살해당할지도 몰라. 무슨 일이 있어도, 생존해야 한다!'

  수라는 배낭을 챙겨 거칠게 방문을 열고, 현관으로 달려 나갔다. 어느 누구도 딸을 붙잡지 않았다. 수라는 훗날, 부모를 고소하기에 이르렀다. 이번에도 부모가 일방적으로 수라에게 위해를 가했다. 담당 수사관으로부터 송치 결정서를 통보받고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모르는 번호로부터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검사: 대림지방검찰청 이송흡 검사입니다.

수라: 네.

검사: 얼마 전에 부모님과 상향동 우체국 앞에서 다투신 사건이 있잖아요? 경찰 조사도 받으셨고요.

수라: 다퉜다고 보기는 어렵죠. 일방적으로 당한 건데요......

검사: 예, 그 사건과 관련해서 조사해야 될 것 같아서요. 혹시, 다음 주 X요일에 나올 수 있나요?

수라: 몇 시요?

검사: 언제가 편하세요?

수라: 혹시 1시간 정도 걸리나요? 얼마나 걸릴까요?

검사: 한두 시간 걸릴 것 같아요.

수라: 그럼, 1시 반까지 가면 될까요?

검사: 여기 대림지방검찰청 OOO호 검사실입니다.

수라: 그럼, 신분증 들고 가면 되나요?

검사: 네, 입구에서 신분증 맡기셔야 돼요.

수라: 준비물이 더 있나요?

검사: 필요한 게 있으면, 요청할 거예요.

수라: 혹시, 담당자가......

검사: 접니다.

수라: 어, 혹시 ㅁㅁㅁ 검사님은 아니시고요?

검사: 저 재배당받았거든요? 문자 받으셨을 텐데.

수라: 제가 ㅁㅁㅁ 검사님한테 우편을 보냈거든요.

검사: 예, 그거 제가 받았어요.

수라: 네, 그럼 그날 뵐게요.



수라는 검찰청에서 검사에게 조사를 받았다. 그런데, 충격적인 건 수찬이 수라를 쌍방 폭행으로 고소한 사실이었다. 수라는 기가 막혔다. 수라는 피해자 신분이 아니라, 피의자로서 조사받는 자리였다.

  '피해자를 피의자라고 호도하다니! 이렇게 억울할 수가!'

  진술할 때, 수라는 과거에 부모로부터 구타당한 경험을 검사에게 고했다. 

  "독립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맞은 건, 효자손 사건이었어요."

  "누가 때렸나요?"

  "아버지요. 어머니도 옆에서 도왔고요."

  "맞은 원인은요?"

  "등산 가야 해서 새벽 일찍 일어나서 준비하던 중이었는데, 잠을 깨웠다고 때리시더군요. 아, 이건 사담인데, 제 친구가 그러더군요. '자녀가 등산 간다고 새벽에 일어나면, 보통 어머니는 밥 먹고 가라고 밥상을 차려 주시지 않나? 우리 어머니가 그러시거든. 심지어, 새어머니이셔.'

  부모가 자녀의 의견을 존중하지도, 인격체로 대하지도 않아요. 자녀를 마치 소유물로 생각하죠. 만약 자녀의 의견이 부모와 다르거나, 부모의 뜻에 반하는 행위를 하면 부모는 자녀에게 폭언과 폭행을 가하죠. 부모와 자녀가 상하 수직 관계예요. 동등하고 화목한 가정은 수평 관계라고 생각해요."

  검사는 별로 동의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오히려 수라를 의심하는 눈초리였는데, 수라도 그걸 느꼈다.

  '내 말을 믿지도 않고, 공감하는 눈치도 아니로군. 휴, 사건이 왜 이런 검사한테 재배당 됐을까?(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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