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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히 Nov 29. 2024

과자

  계절이 바뀌어 황량한 겨울이 됐다. 연말에도 수라는 여전히 혼자 집을 지켰다. 서울에서 남편의 병간호를 하던 자영은 가끔 집에 들러 딸의 상태를 살폈다. 자영의 빈자리는 간병인이 대신 채운 모양이었다.

  “청소부 아줌마 도움으로 어렵게 구한 간병인이야. 근데, 간병비가 만만치 않아. 입원 기간이 길어지니, 모두가 힘들구나. 아빠 곧 퇴원하실 거야. 넌, 별일 없지? 길냥이들도 모두 잘 있고?”

  “네, 다들 무탈해요.”

  “누룽지 다리에 상처 났길래, 연고 발라줬다.”

  “누룽지가 박 씨를 물고 오겠네요.”

  “장화를 신겠지. 아파트 입주권 갖다 주면 좋겠다.”

  수라는 대림시에서 8세 때부터 머물렀는데, 다른 구에서 살다가 대정구로 이사 왔다. 벌써, 10년 훌쩍 넘었다. 그런데, 시내동은 이름만 시내였다. 상당히 낙후했다. 번화가에 사는 미영이 수라네 동네에 놀러 왔을 때, 다소 충격받은 눈치였다.

  “대림에 아직도 이런 곳이 있었구나…….”

  “미영이 너는 시청 근처 살잖아. 얼마나 좋니? 부럽다! 일단 교통이 편리하고, 지하철도 있고. 식당, 학원, 카페, 영화관, 백화점 없는 게 없잖아!”

  “위치가 좋긴 하지. 근데, 번화가 산다고 다 좋은 건 아니야. 나 진실 아파트 사는데, 건물이 너무 오래됐어. 주차장도 비좁고, 별로야. 학군 밀집 지역이라서, 그냥 집값만 비싸.”

  수라는 자영에게 아버지의 안부를 물었다.

  “아버지 병환은 좀 어떠세요?”

  자영이 의사에게 들은 바로는, 타인의 신체 조직을 받을 때 우리의 몸에서는 강한 거부 반응이 일어난다고 했다.

  “새로운 장기들을 받아들이고, 적응하느라 시일이 더 오래 걸렸어. 기증자가 1명이 아니라, 너희들 2명이잖니. 아직 더 지켜봐야지. 젊은 간을 이식해서인지, 검은 모발이 나더라. 그이는 원래 백발이었는데.”

  이제나저제나, 한참 시간이 흘렀다. 퇴원이 요원했던 수찬은 마침내 병원 문턱을 넘을 수 있었다. 약 반년의 시간을 견뎌, 마침내 그리운 보금자리로 돌아왔다. 자식들에게 간을 기증받은 수혜자 수찬은 자신의 경험에 대해 훗날 이렇게 회상했다.

  “내가 이렇게 고통스러울걸 수술 전에 미리 알았더라면, 아마 간 이식 수술 안 받았을 거야. 생존하기 위해 죽음을 뛰어넘는 고통을 견뎌야만 했거든. 의사도 집도만 해봤지, 수술을 직접 받은 적은 없잖아. 그 고통을 감히 상상도 못 할 거다!”

  간 이식 수술만 하면, 가족의 화목해질 거라 수라는 막연히 기대했다. 그러나, 갈등이 이어졌다. 수찬의 병원 생활은 예상보다 늘어졌고, 퇴원 후에도 그는 여전히 암 투병 환자였다. 자영은 수찬의 뒷바라지를 하기 위해 불철주야 힘썼다. 그녀는 인터넷 검색은 물론이고, 관련 서적을 탐독하며 암 환자에게 유익한 식단과 생활환경을 만들고자 노력했다.

  반면, 수찬은 전혀 애쓰지 않았다. 수동적이었고, 살고자 하는 의지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곁에서 부모의 대조적인 모습을 목격한 딸은 의문을 품었다.

  ‘환자 본인이 스스로 완쾌하기 위해 힘써야 하는 게 아닌가? 도무지 애쓰지 않는데, 어째서 간병인 혼자 악전분투해야 하는 걸까? 좀 불공평하지 않나?’

  사실, 자영이 수찬을 필사적으로 살리려고 하는 자세만으로도 수라는 전혀 예상 밖이었다. 부모의 부부 관계가 평소 원만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미망인이 되면, 세상 사람들이 나를 얼마나 무시할지 상상조차 하기 싫다.”

  부부가 아무리 일심동체라지만, 배우자의 죽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딸은 충격에 휩싸였다.

  ‘이건 아버지를 사랑해서, 헤어지기 싫어서가 아니잖아. 단순히 본인이 손해 보고 싶지 않아서, 악착같이 살리려는 몸부림이잖아. 같은 말이라도 표현이 잘못됐어.’

  수라는 수저를 들었으나, 통 입맛이 없었다. 자영이 고심 끝에 신경 써서 준비한 음식들이었다. 수라도 유기농 재료들이 고가라는 것쯤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엄선한 재료인들 암 환자를 위한 식단은 일반인이 먹기엔 전반적으로 싱겁고, 맛이 없었다.

  ‘아, 식탁이 완전 그린벨트로군!’

  수찬도 식욕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암 투병 환자인들, 입맛은 수라와 다를 바가 없었다. 딸은 아버지의 눈치를 살폈다. 어느 날, 자영이 부재중인 틈을 타 수라는 햄버거를 2개 사들고 귀가했다. 혹여 어머니가 들이닥칠까 봐 마음을 졸이며, 부녀는 완전 범죄를 결탁했다.

  “매일 먹는 거 아니니까, 가끔 이런 일탈도 괜찮죠?”

  “그래, 딸내미 덕분에 인간다운 음식을 먹어 보네. 고맙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수라는 외출을 마치고, 돌아온 길이었다.

  “저 왔어요.”

그녀는 현관에서 실내로 들어서려는 순간,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거실은 난장판이었고, 바닥에는 곡식과 방석, 빗자루 등이 나뒹굴고 있었다. 그런데, 그 광경을 보고도 아무도 치우는 이가 없었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에요? 도둑이라도 들은 거예요?”

  “네 엄마가 그랬다.”

  거실 소파에 앉은 수찬이 무심하게 대답했다.

  “왜요?”

딸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네 엄마한테 물어보렴.”

  “왜 보고만 계세요? 안 치우실 거예요?”

  “내가 왜? 어지른 사람이 직접 치우겠지.”

수라는 두리번거리며, 자영의 위치를 파악했다. 그녀는 홀로 안방 바닥에 주저앉은 채였다. 수라가 자영에게 다가가 물었다.

  “대체, 왜 그러셨어요?”

  “네 아빠가 글쎄, 인터넷에서 과자를 몰래 주문해서 창고에 숨겨두지 않았겠니?”

  “무슨 과자요? 그걸 어떻게 아신 건데요?”

  “창고 청소하다 발견했다! 그래서, 내가 물었지. 당신, 이거 뭐냐고. 그랬더니, 미안한 기색은 하나도 없고 오히려 뻔뻔하더라! '각자 살아!'라는 거 있지? 자식을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배를 갈라놓고서, 저렇게 염치가 없을 수가 있는 거니? 여태 고생한 내 처지는 또 뭐고! 음식이 곧 건강과 직결되는 건데, 저렇게 인스턴트 식품을 몰래 먹으면 그간의 노력은 헛수고잖아! 내 말이 틀렸니?”

  수라는 그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자영의 의견도 맞고, 수찬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가 갔기 때문이었다. 물론, 아버지의 교만하고 이기적인 태도가 불씨였다. 부부 싸움의 현장을 목격한 성인 자녀의 입장에선, 한없이 혼란스러웠다.

  ‘어머니, 아무래도 배우자를 잘못 고르셨어요. 왜 하필 저런 안하무인에게 인생을 허락하셨어요? 물론, 두 분이 결혼하지 않으셨으면 저는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겠지만요. 휴, 다들 제정신이 아니야. 나도 곧 돌아버릴 것만 같아. 이 가정에 화목이 깃들 날이 과연 올까? 시간이 어서 흘러서, 문제를 다 해결해 주면 좋으련만......’

  자영이 수찬과 결혼하게 된 사연은 훗날 이모를 통해 수라는 듣게 됐다.

  “준우가 생겼거든. 그래서, 결혼하게 된 거야.”

  “헐, 난생처음 듣는 말이에요. 그런 줄 미처 몰랐어요. 이제야 이해가 가네요. 외할아버지가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도요.”

  “뭐라고 하셨는데?”

  “‘내 딸이 민 서방과 결혼하지만 않았어도, 지금쯤 뭐가 됐어도 됐을 것이디…….’라고 하셨어요.”

  “풉! 그러셨어? 언중유골이네. 형부도 그 시절엔 잘 나갔어.”

  “딸 가진 부모는 대부분 사위가 마음에 안 드시겠죠.”

  “아무튼, 수라 너는 신중하게 결혼하렴.”

  “저는 비혼주의예요.”

  “왜?”

  “불행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서요(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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