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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히 Nov 27. 2024

근무

  수라는 당장 돈을 벌어야만 했다. 그 까닭은 순배 때문이었다. 순배는 수라를 거의 매일 만나고 싶어 했다.

  “누나, 보고 싶어요!”

  “엥, 우리 어제도 만났잖아?”

  “주말까지 기다리기 너무 힘들어요!”

  애정을 표현하는 순배의 마음이 귀여웠으나, 수라는 순배를 결코 자주 만날 수 없었다. 그 이유는 바로, 돈 때문이었다.

  수라는 간 이식 수술이 결정된 지난 상반기부터 쭉 어머니로부터 용돈을 받아 썼다. 하지만, 수라의 씀씀이에 비해 용돈은 터무니없이 적었다.

  회사에서 퇴사한 이후, 수라는 내내 쪼들렸다. 고정 수입은 소액인데, 고정 지출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돈 좀 제발 아껴 써! 허구한 날 그렇게 나다니니 돈이 없지! 집에 안 있고, 또 어딜 나가?”

  자영은 수라에게 핀잔을 줬지만, 외향성인 수라는 집에만 얌전히 있는 성격이 못됐다.

  어느 날, 순배가 진지하게 수라에게 물었다.

  “누나, 혹시 나 말고 다른 남자 생겼어요?”

  “응? 다른 남자라니? 너 말고는 요즘 특별히 연락하는 남자는 없어. 갑자기, 왜 그렇게 생각해?”

수라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순배를 쳐다봤다. 그러자, 그가 대답했다.

  “누나가 주말에만 만나자고 하니까요. 혹시, 평일에 만나는 다른 남자가 있나 해서요…….”

  “뭐? 푸하하 하하하! 그런 거 아니야.”

  순배가 걱정하는 모습이 순진해 보임과 동시에 귀여워서, 수라는 그만 폭소를 뿜고 말았다.

  “아, 사실은 데이트 비용이 부담스러워서 그래. 외출하면 다 돈이잖아. 식대, 간식비, 영화 관람비, 기타 등등. 원래, 숨만 쉬어도 동시에 지출이다. 자주 만나면, 그만큼 지출이 커지잖아. 만남 횟수를 줄여서, 돈을 아끼려고 했지. 이제, 오해가 풀렸어?”

  “누나가 그런 생각하고 있는 줄 전혀 몰랐어요. 그럼, 이제부터 데이트 비용 제가 다 낼 테니까 제한 없이 만나는 거 어때요?”

  “네가 돈을 다 낸다고? 나야 당연히 괜찮지만, 그러면 네 부담이 꽤 클 텐데?”

  “괜찮아요. 대신, 자유롭게 누나를 만날 수 있잖아요!”

  “내 시간을 산다는 거로군.”

  건강이 어느 정도 나아지자, 수라는 집 근처 미술 학원에서 강사로 근무하기 시작했다. 수라가 맡은 부서는 초등부였다. 초등학생들의 반응을 보니, 초등부의 강사는 자주 바뀌는 듯했다.

  “어! 선생님 또 바뀌었어!”

  “그러네! 왜 바뀌었지?”

수라는 멋쩍게 웃었다.

  ‘직원이 자주 바뀐다니 아무래도, 좋은 회사 아닌가 봐.’

  형제로 보이는 남학생 두 명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쌍둥이라고 했다.

  “너희, 쌍둥이라면서 왜 하나도 안 닮았어? 식별하기가 너무 쉬운데.”

  형제 중 형인 천룡이는 덩치가 크고, 통통하며, 쌍꺼풀이 진했다. 시도 때도 없이 스파이더맨 흉내를 냈다. 동생 해룡이는 개그맨 L을 닮았다. 피부가 희고, 웃을 때 귀여웠다.

  “선생님, 결혼 안 했죠?”

  해룡이가 눈을 빛내며 수라에게 물었다.

  “응, 아직. 어떻게 알았어?”

수라가 대답하고 되물었다.

  “젊으셔서요.”

  “어머, 귀여운 애가 말도 참 예쁘게 하네! 너, 장차 크게 될 아이구나?”

  어린이들은 수라에게 관심이 참 많았다. 어디 사는지, 애인은 있는지 등 사적인 질문이 끝없이 이어졌다.

  “선생님, 몇 살이에요?”

  9살 여아 정은이가 질문했다.

  “삼겹살.”

  “아, 웃겨! 엉뚱한 선생님!”

  “애굣살.”

  “선생님, 갖고 싶은 거 있어요? 저는 동생이 갖고 싶어요!”

  10세 남아 민엽이가 엉뚱하게 끼어들었다.

  “그래? 엄마한테 동생 낳아달라고 말씀드려 봐.”

  “엄마가 원래 넷은 낳으려고 했는데, 둘도 힘들대요. 선생님은 언제 결혼할 거예요?”

  “선생님은 아직 애인도 없단다. 이상형은 술, 담배 안 하는 남자! 근데, 흔치 않아.”

  “술, 담배 안 하는 남자 많은데요?”

  정은이 토끼눈을 하며 말했다.

  “그래? 있으면 소개 좀 해줘.”

  “우리 할아버지요!”

  “으앙, 너무해…….”

  정은과 수라의 대화를 듣고, 아이들이 깔깔 웃어댔다. 미술 학원은 거의 왁자지껄 놀이터 수준이었다. 다른 과목에 비해 놀이 성향이 짙어서, 분위기도 또한 자유로웠다.

  학원에 매일 오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가끔 오는 학생들도 있었다. 학원에 목요일마다 오는 10살 남학생 준호는 저축왕이었다.

  “얼마 모았어?”

수라는 준호에게 질문했다.

  “X,XXX,XXX원이요.”

어린이의 통장 잔고는 수라보다 훨씬 더 많았다.

  ‘헉! 부럽다. 부자네.’

  “선생님은 얼마 모았어요?”

  “흠흠, 돈은 쓰라고 있는 거야! 자, 이제 수업하자!”

  수라는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예쁜 옷을 입을 때, 여행할 때 등 주로 돈을 쓰는 순간 만족을 느꼈다. 반면, 준호는 안 쓰고 모아두는 게 더 즐거운 모양이었다. 주말에 뭐 하고 지냈냐고 수라가 물으면, 그의 대답은 대부분 다음과 같았다.

  “집에서 쉬었어요.”

  준호는 돈을 거의 안 쓰는 모양이었다.

  ‘얘는 돈이 모이는 모습을 보며, 행복을 느끼는 걸까?’

  “육개장 과자 맛있던데. 선생님, 나 그거 사줘요.”

  학생이 스승에게 요청했다.

  “뭐? 너 돈 많잖아. 네가 날 사줘야지!”

  선생은 단박에 거절했다.

  “저 돈 없어요.”

  “무슨 소리야? 너, 나보다 부자잖아!”

그 많은 돈을 다 어디에 쓴 건가 싶어 수라는 눈을 치켜뜨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 저금해서, 쓸 돈이 없어요.”

황당한 대답이었다.

  “흥, 그저 모으기만 하면 그게 무슨 소용이니?”

  수라가 맡은 아이들 중 최고학년은 12세 남학생 지철이었다. 금요일마다 만날 수 있는 지철은 인물도 번듯하고, 총명했다. 어느 겨울날, 수라는 팝콘을 붙여 눈 내리는 날을 표현하는 수업을 했다. 지철이 표현한 그림은 눈싸움하는 모습이었다.

  소년이 눈을 던지자, 눈덩이에 불이 활활 타오르며 날아가 눈사람의 몸을 뚫고 소녀에게 맞았다. 그런데, 그 소녀의 얼굴은 괴물이었다.

  ‘으, 징그러워! 여자를 하필 괴물로 표현했담?’

  한편, 지철은 수라에게 학구적인 질문을 했다.

  “선생님, 파란 불꽃과 빨간 불꽃 중 어느 게 더 뜨거워요?”

  ‘미술 강사에게 과학을 질문하다니…….’

  수라는 잠시 당황했지만, 침착하게 인터넷을 검색해 답을 구했다. 정보에 의하면, 파랑 불꽃이 가장 연소가 잘 되고, 제일 뜨겁다. 빨강 불꽃은 파랑 불꽃보다 덜 연소되고, 온도도 더 낮다고 했다.

  호기심 많은 그는 지질 공부를 하러 다음 달에 미국을 잠시 다녀올 예정이라고 했다.

  ‘오, 나도 얘랑 같이 미국 가고 싶네!’

  초등부 어린이들 중 수라를 가장 좋아하고 따르는 아이는 1학년인 소원이었다. 소원은 수라를 살갑게 대했다. 소원은 자신의 간식인 샌드위치를 아껴뒀다가 수업 시작 전에 수라와 함께 먹었다.

  수라는 그 마음이 예쁘고 고마워서, 다음 시간에 바로 소원에게 과자를 선물했다. 음식을 나눠 준다는 건, 수라에게 중요한 의미이기도 했다.

  ‘어린이에게 음식은 상당히 높은 우선순위에 속하는 건데!’

  또 어떤 날에 수라는 학원 현관 앞에서 소원을 마주쳤다.

  “어, 소원이 벌써 왔어?”

  “네! 학교 끝나자마자 바로 왔어요. 선생님, 몇 시에 학원 와요?”

  “오후 2시. 왜?”

  “선생님, 매일 보면 좋겠어요!”

  이 말을 듣고, 수라는 매우 놀랐다. 적극적으로 애정을 표현하는 아이는 드물었고, 소원뿐이었다. 게다가, 더 놀라운 것은 소원이의 적성이었다.

  아이는 그리기를 싫어하고, 만들기만 선호했다. 그런데, 소원의 어머님은 그리기 위주로 교육하기를 원하시는 게 결정적인 문제였다. 어머님은 수라에게 이렇게 질문했다.

  “보통 여덟 살 아이들은 이 정도 수준인가요?”

  수라는 당황하고 말았다. 미술 학원을 매일 다니는데, 왜 발전이 없느냐는 물음인 셈이었다. 그녀는 수라에게 회화 중심의 지도를 해줄 것을 재차 당부했다. 수라는 그러겠노라 약속했지만, 소원에게 그대로 전달하자 아이는 매우 속상해했다.

  “엄마 때문에 못 살겠네!”

  이야기를 들어본즉슨, 소원이는 요즘 집에서까지 미술 개인 지도도 받는단다. 그리기 위주로 배우는데, 소원이는 그리기가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그런 말을 듣자, 수라는 난감했다. 결국, 학부모로부터 수업 취소 연락이 왔다. 당연한 결과였다.

  마지막 수업을 했는데, 소원은 훌쩍훌쩍 울었다.

  “이제, 그리기가 좋아졌어요.”

  “선생님이랑 헤어지기 싫어서, 그렇게 말하는 거 아니야?”

  소원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가 우니까, 수라도 덩달아 눈물이 났다. 수라는 아이의 손과 어깨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선생님도 소원이랑 헤어진다니 너무 슬퍼. 우리, 이제 그만 울고 화장실 가서 세수하자.”

  어른과 아이는 세면대 거울을 통해 서로 얼굴을 힐끗 봤다. 소원도 수라도 눈시울이 붉었다.

  바로 그때, 소원의 아버님이 딸을 데리러 학원에 왔다. 아이의 엄마도 분명 마중을 왔을 텐데, 끝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아니, 왜들 울어요?”

  “오늘이 소원이랑 마지막 수업이라서요. 소원아, 잘 가! 건강히 잘 지내!”

  수라가 학원 현관 앞까지 나와 소원 부녀를 배웅했다. 그로부터 몇 분 후, 퇴근한 수라는 운전석에 앉아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소원의 엄마로부터 문자가 와 있었다.

  “선생님, 수업 계속할게요(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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