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요셉 대성당과 철길 마을
토요일 새벽 6시, 알람 소리를 듣고 눈을 번쩍 떴다. 여행 셋째 날의 아침이었다. 몸을 측면으로 굴려 호텔 침대에서 힘겹게 일어났다. 요통 때문에 전신이 고통스러웠다. 통증을 최소화하기 위해선 거동이 느려질 수밖에 없었다.
'으악, 죽을 것 같아. 너무 고통스러워!'
다행히 숙취는 없었다. 세수를 마치고, 옷을 걸친 후 식당에 입장했다. 식사가 가능한 시간이었는데, 아직 음식 준비가 덜 된 모양이었다. 우리를 본 직원은 다소 당황한 듯 보였다.
"아직 손님이 우리뿐이네. 녹색 쌀밥은 아직 안 나왔어. 다랑, 뭐 주문할 거야?"
"난 계란 프라이 부탁해."
다랑이 말했다. 나는 쌀국수를 주문했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여유롭게 식사를 마쳤다. 창 밖에는 보슬보슬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 언제까지 와? 아, 오늘 일정은 망했네!"
비 오는 날씨가 달갑지 않았지만, 성 요셉 대성당 내부를 관람할 수 있어서, 기뻤다. 어제 아침에 갔을 땐 문지기가 출입을 제한해서 실망스러웠다. 인터넷에 누군가 공유한 정보에 의하면, 운이 좋아야 내부를 관람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런 면에서, 우린 행운아였다.
혹시라도 누군가 입장을 저지할까 봐, 조마조마했다.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성당 내부는 엄숙하고, 고요했다. 곧 미사가 있는 모양이었다. 아름다운 스테인드 글라스를 보며 감탄했다. 호기심이 일어 미사에 참석하고 싶었으나, 어서 철길 마을로 이동해야만 했다.
성 요셉 성당은 19세기말 고딕 복고풍의 신고딕 양식으로 지어졌고, 약 4백만 명의 신도가 있는 하노이 로마가톨릭 대주교구 소속의 성당이다. 노트르담 대성당을 닮은 건축 양식으로 묘사된다. 이 성당은 1886년 12월에 문을 열었고, 인도 차이나에서 프랑스 식민지 정부가 건설한 최초의 건축물 중 하나였다. 현재는 하노이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당이다. (https://ko.wikipedia.org/wiki/%EC%84%B1%EC%9A%94%EC%85%89_%EC%84%B1%EB%8B%B9_(%ED%95%98%EB%85%B8%EC%9D%B4))
"오후엔 비 그친대. 우리 걸어서 철길 마을부터 가는 게 어때? 거긴 외곽이거든. 늦게 가면 붐빌 것 같아서, 지금 일찍 다녀오는 게 나을 것 같아."
다랑이 제안했다.
"동선은 맞아?"
철길 마을은 추천받은 명소였다. 검색하니, 특별한 맛집이나 카페 추천지는 없었다.
"왜 갈 만한 곳이 없지? 뭔가 있어야, 거기서 시간을 보낼 텐데."
인터넷 정보에 따르면, 위험해서 마을이 폐쇄된 적도 있다고 했다.
"지금도 폐쇄된 상태야?"
내가 묻자, 다랑이 대답했다.
"아냐, 폐쇄 안 됐어. 곧 기차가 한 대 지나갈 거야. 저쪽에서 오나 봐. 가보자!"
다랑은 기차를 좋아한다고 했다. 반면, 나는 기차에 별 관심이 없는 편이었다.
철길을 따라 걸었다. 우리 둘 뿐이라서, 사진을 부탁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그렇다고 모르는 사람한테 부탁하는 것도 별로 끌리지 않았다. 철길 위에서 마주 보는 모습이라든지, 손을 잡고 걷는 장면을 연출하고 싶었으나 실현할 수 없어서 아쉬웠다.
"이래서, 여행은 3명 이상 와야 돼!"
"그러게. 귀남 형은 왜 슈히 눈 밖에 나서 여행도 같이 못 온담......"
"그 오빤, 어차피 오래가지 못할 상대였어. 외롭다고 해서, 조언해 준 건데 도리어 내게 화를 내다니! 충고를 받아들일 줄 모르니, 너무 한심하잖아."
우리는 지나간 인연에 대해 잠시 언급했다.
이른 아침이라서, 영업 중인 상점이 드물었다. 가게 사장들이 가게 문을 열고 청소하며, 이제 막 영업 준비 중이었다. 고개를 들어 건물을 관찰했다. 1층은 업소이고, 2층부터는 상인들이 실제로 거주하는 가정집인 것 같았다. 베란다 여기저기 빨래가 널려 있어서, 그렇게 짐작했다. 대부분 3층 이상의 건물들이었다.
출입문이 닫히고, 행인의 출입이 통제됐다. 고개를 돌려 입구를 살피자, 관광객들이 다수 모여 서있었다. 그들의 시선은 우리를 향해 있었다.
"응? 저 사람들은 저기 갇혀서 이쪽으로 못 왔네."
"우린 기차가 지나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어!"
"와, 진짜 위험하다......"
상인들이 크게 소리치며, 관광객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조심하라는 뜻 같았으나, 그 모습이 너무 사나워서 겁이 날 정도였다. 우리는 어느 업소의 벽 쪽으로 찰싹 붙었다. 아직 개점하지 않은 상태였다. 뭔가 주문했다면 편히 좌석에 앉았겠지만, 쓸데없는 지출로 경비를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호텔에서 조식을 배불리 먹어서, 배가 든든한 터였다.
기차가 경적을 울리며 지나갔다. 우리는 그 모습을 동영상으로 촬영했다.
"오, 승객이 타고 있네? 어디로 가는 기차일까?"
우리는 베트남에서 주로 택시를 이용했기 때문에, 기차나 시내버스를 탄 적은 아직까지 없었다.
기차가 움직이는 모습을 촬영하는 다랑의 모습도 영상에 함께 담았다. 내가 그를 촬영하는 걸 눈치챘는지, 다랑은 곁눈질로 나를 훑었다. 그 모습이 웃겨서, 그 모습만 캡처해서 다랑에게 전송했다.
다음 목적지는 호아로 감옥 박물관이었다. 프랑스가 베트남을 통치한 시절, 정치범들을 감옥에 가뒀다고 한다. 프랑스 입장에선 범죄자였겠지만, 베트남의 입장에선 영웅이었을 것이다. 음침하고 암울한 감옥의 모습을 둘러보며, 안타깝고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한편,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 한 여직원이 독서 중이었다.
여성 박물관을 향해 걸었다.
"저건 뭐라고 읽는 거지? 미킹돔?"
다랑이 간판을 보고 읽었다. 폭소했다.
"풉! 저건 MY KINGDOM이잖아."
"아, 그러네! 글자가 너무 붙어 있어. 띄어쓰기를 안 해서, 한 단어인 줄 알았어."
뭔진 몰라도, 장난감 가게 같았다.
카페에 들러 음료를 주문했다. 아보카도 스무디와 코코넛 커피로 목을 축였다. 레트리버 한 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인도를 거닐고 있었다. 유아들을 데리고 나온 젊은 엄마들도 보였다. 작고 낮은 좌석들은 여성 박물관 앞까지 죽 이어졌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