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명이 한꺼번에 모임에서 빠지자, 동호회 분위기는 한동안 다소 적막해졌다. 방장은 성별 제한 없이 신입 회원을 받았다. 여자 인원에 비해 남자 구성원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았기에, 그간 신규 남자 회원은 받지 않는 상태였다.
'들락날락하는 사람들 많네. 요즘 통 모임이 없으니, 다른 모임을 가볼까?'
상황을 지켜보던 박하는 다른 방안을 모색했다. 박하에게는 기분 전환이 필요했다. 30대 친목 모임 <존예존멋 얼빠들>이라는 모임에서 산책 모임을 추진했다.
"박하 님, 저 지금 출발해요!"
32살 여자 회원 수지가 말했다.
"네, 저도 곧 가요."
박하는 남자 회원 한 명을 차에 태워 이동하기로 사전에 약속했기에, 만나기로 정한 장소에 잠시 정차했다. 모자를 쓴 남자 한 명이 서있었다. 박하는 차창을 내려 그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산책 가시는 분인가요?"
"네, 맞아요."
"타세요!"
박하와 동갑인데, 레브는 조용했다.
'혹시, 자가용이 없나?'
이동 중 차내에 적막이 흘렀고, 어색함을 참지 못한 박하가 입을 열었다.
"운전은 하세요?"
"아, 네. 오늘은 아버지가 차를 가져가셨어요."
"그렇구나. 차가 없는 건가 생각했어요."
"아니에요. 자가용은 있어요."
그들은 목적지에 닿았다. 근교에 위치한 한적한 공원에 사람 그림자는 드물었다. 평일이어서 모두가 일터에 간 모양이었다. 주차장에 당도하자, 매점 앞에 젊은 여자 한 명이 서 있었다. 박하가 손을 흔들며 외쳤다.
"혹시, 수지 님?"
그러자, 멀리서 여자가 대답했다.
"맞아요!"
"오래 기다렸어요?"
박하가 다가가 물었다.
"저도 방금 왔어요. 한 분 더 오신다는데, 알고 계세요?"
"아, 그래요? 운전하느라 연락 확인 못했어요."
수지의 말을 듣고, 박하는 휴대전화를 꺼냈다.
"출근했더니, 오늘 공사 못 한대서 갑자기 쉬게 됐네요. 혹시, 지금 산책 모임 가도 될까요?"
32세 남자가 모임에 참석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네, 오세요. 몇 시에 도착하세요?"
박하가 수락했다.
"공사 현장이 마침 공원 근처라서, 곧 도착해요. 사실, 이미 가는 중이었어요."
"네, 기다릴게요. 매점 앞에서 만나요."
박하, 레브, 수지는 마지막에 합류한 회원이 오기를 기다렸다.
"기다리면서, 각자 준비 운동하죠."
"운동, 진짜 오랜만이네요. 박하 언니는 운동을 참 좋아하시나 봐요."
"하하, 운동도 좋아하지만 먹기를 더 좋아해요."
"어머, 저도요!"
잠시 후, 차 한 대가 등장했다. 끼익, 하고 멈춰 섰다.
"저분이신가 봐요."
수지의 말에, 박하는 천천히 몸을 돌려 등장인물을 확인했다. 마지막 참석자는 긴 다리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스카라고 해요."
박하는 잠시 시간이 멈춘 듯한 기분을 느꼈다. 스카가 쓴 안경 유리알이 번쩍번쩍 빛났다.
'와, 우월한 기럭지! 우러러보는 거 좋다.'
박하는 그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오래 기다린 건 아니죠?"
"저희도 방금 왔어요."
스카가 묻자, 수지가 명랑하게 대답했다.
"이제, 슬슬 출발하죠."
말이 없던 레브가 재촉했다. 그들은 또래이면서, 남녀 성비도 조화로웠다. 덕분에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동갑이니, 우리 말 편히 할까?"
"그래, 좋아."
스카와 수지는 쉴 새 없이 대화가 오갔다. 한편, 박하는 말수가 없는 레브가 지루했다.
"저기, 원래 말이 없는 편이야?"
"아, 낯가림이 있어서."
박하는 일부러 보폭을 늦춰서, 스카에게 다가갔다.
'스카랑 놀아야지!'
그들은 나란히 걸었다.
"저는 이런 모임 처음 해봐요."
"그래요?"
"몇 년간 계속 일만 했는데, 이제 좀 즐기려고요. 7년 사귄 애인과 헤어지니까, 만날 친구도 없네요. 연애 기간은 부질없어요."
"헉, 7년이요?"
박하는 화들짝 놀랐다. 눈물이 날 것처럼 울컥했다.
"누나, 말 편히 하세요."
"어, 그래. 7년 사귀었는데 왜 헤어짐? 결혼은?"
"결혼은 아무래도 집안끼리 수준이 맞아야 할 수 있는 거니까요. 전 여자 친구 아버님이 저희 집안을 무시하는 편이었죠. 저는 가족들이 모두 운송업 종사자거든요."
"저런, 안타깝네. 전 여친은 어디서 만났어?"
"나이트클럽에서 만났는데, 어찌나 예쁘던지!"
"나이트클럽? 세상에, 그런 데서 만나서 연애하기도 하는구나!"
"그렇게 예쁜 사람은 처음 봤어요. 제가 그녀에게 첫눈에 반했죠. 이제, 다 과거 일이지만요......"
스카가 헤어진 애인에 대해 회상하자, 고독해 보였다. 그의 과거 연애사를 듣고, 박하는 동정심이 들었다.
'아버지의 반대 때문에 단짝을 잃다니, 긴 세월 동안 둘 사이에 쌓인 추억도 굉장히 많을 텐데......'
스카가 물었다.
"누나는 애인 있어요?"
"아니."
"언제 헤어졌어요?"
"어, 그게...... 얼마 안 됐어. 이제, 일주일."
"엑, 진짜 최근이네요! 누나, 괜찮아요?"
"휴, 글쎄......"
스카는 '괜찮냐'라고 물어봐 주었다. 박하는 그 점이 내심 고마웠다. 그와 동시에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그는 과연 착하고 다정한 사람일까?
"어라, 문신했어?"
"네, 왜요?"
"아, 아무것도 아니야!"
스카가 겉옷을 벗자, 팔뚝에 그려진 복잡한 문신이 드러났다. 박하는 자신이 꼰대처럼 보일까 봐 말을 삼갔다. 스카에 대한 호감지수가 현저히 떨어졌다. 그녀는 다소 보수적인 면이 있었다.
'내 사람도 아닌데, 참견할 권리는 없지.'
"누나, 혹시 문신한 사람 싫어해요?"
"아니, 뭐...... 개성이니까, 괜찮아. 근데, 나중에 노인 되면 문신한 피부가 주글주글해질걸?"
"그래도, 하고 싶은 건 하면서 살래요. 7년 사귄 전 여자 친구와 어디 좋은 곳으로 제대로 여행도 못 가봤어요."
"왜?"
그는 자신의 20대 젊은 날을 후회했다. 억척스럽게 일만 하며 지낸 세월이었다.
"자영업자라서, 항상 일에 얽매여 있었어요. 화물차를 할부로 사서, 대금 갚느라 고생 많이 했거든요. 빚 때문에 늘 부담스러웠는데, 지금은 다행히 다 갚았어요. 그러니, 이제 맘 놓고 쉬려고요."
"그래, 고생 많았겠다."
"음, 누나는 남자 볼 때 어디 봐요?"
"갑자기, 그건 왜 물어? 나한테 관심 있어?"
박하가 어리둥절하자, 스카가 씩 웃었다.
"누나는, 저 어때요?"
그녀는 당시,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스카가 접근한 상대는 오직 박하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을.(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