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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숲 Jun 29. 2021

코로나 시대 연년생 육아

그날 아침도 여느 때와 같이 첫째가 주저앉아 울고 있었다. 어린이집에 가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첫째의 등원 거부는 주기적으로 찾아왔고, 그 시기가 올 때마다 내 고난의 시기도 함께 시작됐다. 안 그래도 어린이집에 가기 싫은데 엄마랑 갓 난 동생이 같이 집에 있다고 생각하면 더 가고 싶지 않았겠다는 생각도 든다.


둘째 출산을 위해 집을 떠났을 때 아직 어린 첫째 아기에게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영문도 모른 채 갑자기 엄마가 2주 넘는 동안 집에서 사라지는 상황을 겪은 첫째 아기는 나에게 토라진 것 같았다. 주변에서 들은 얘기로는 둘째를 낳으면 첫째 아기들이 더 안아달라고 하고 엄마 곁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한다던데, 우리 집 첫째는 오히려 나를 멀리하려 하고 오히려 아빠에게 붙어 있으려고 했다. 마치 나를 여기 두고 떠난 엄마를 엄벌하려는 듯이. 갓 둘째를 출산하고 몸과 마음이 망가진 상태에서 첫째까지 이러니 모든 걸 다 내려놓고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


갓난아기인 둘째는 절대적으로 나의 케어가 필요할 수밖에 없었고, 그만큼 내가 첫째 아기와 보낼 수 있는 시간은 줄어들었다. 신생아인 둘째와 첫째를 한 방에서 재울 수가 없어 어쩔 수 없이 나는 둘째와 다른 방에서 잤고, 남편은 첫째와 함께 잠들었다. 첫째와 같은 방에서 잠들지 못하는 게 내내 마음에 걸렸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러던 중 코로나가 시작됐고, 3월에 새로운 어린이집으로 등원 예정이었던 첫째의 등원이 연기됐다. 나는 집에서 두 아기를 혼자 돌보기 시작했고, 하루하루가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 한 명만 케어하는 데에도 엄청난 에너지가 드는 일인데, 여기에 첫째 아기까지 돌보니 매일 한계에 부딪혔다.


혼자 두 아기를 계속 돌보는 일은 더 이상 어렵겠다는 판단에 첫째 아기는 긴급 보육으로 어린이집에 보냈다. 코로나 상황에 아기를 어린이집에 보내니 죄책감이 들었다. 내 몸 하나 살겠다고 아기를 사지로 내몬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몸과 마음이 너무 많이 지친 나로서는 그 죄책감을 품은 채 첫째를 어린이집에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 시절 둘째 아기가 잠들면 집에서 혼자 하염없이 울었다. 나는 어쩌자고 아기를 둘이나 낳은 걸까. 스스로 두 아기를 책임지지도 못하면서 무작정 이 아이들을 세상으로 불러들인 건 아닐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결국 한참을 울다가 둘째가 깨면 다시 눈물을 닦고 기계적으로 몸을 일으켜 육아를 시작했다.


첫째 아기는 새로운 어린이집에 조금씩 적응해나가는 듯하더니 불쑥불쑥 등원을 거부했다. 그날도 등원 거부가 절정에 이른 날이었다. 원래 타고 가던 아빠 차도 거부한 터라 남편은 하는 수 없이 혼자 출근했고, 나는 자동차를 좋아하는 첫째 아기를 꼬드기기 위해 택시를 타자고 제안했다. 택시를 탄다는 말에 첫째는 어린이집에 가겠다고 했고, 나는 그 말에 급히 대충 옷을 챙겨 입고, 부스스한 머리를 한 채, 둘째를 아기띠로 안고 첫째를 데리고 나가 택시를 탔다.


어린이집에 거의 도착해 갈 때쯤 멀리 어린이집이 보이자 첫째가 소리 내 울기 시작했다. 안 가겠다고 울어대는 첫째를 겨우 택시에서 내렸다. 그리고 택시에서 내린 자리에서 어린이집 문 앞까지 첫째 아기를 질질 끌면서 갔다. 안 가겠다고 온 힘을 쓰며 버티는 첫째를 끌고 가느라 내 몸은 사정없이 흔들렸고, 아기띠에 안겨 있는 둘째는 영문도 모른 채 울어댔다. 벨을 누르자 담임 선생님이 나오셔서 대성통곡하는 첫째 아기를 데리고 들어가셨다. 둘째를 달래서 재우고 다시 택시를 불렀다. 그 택시 안에서 나는 남편에게 통화하며 엉엉 울었고, 통화를 끊은 후 혼자 또 서럽게 울었다.


대책 없이 연년생 육아에 뛰어든 나는 그야말로 육아의 암흑기를 경험했다. 그즈음 나에게 둘째를 낳을지 고민하며 물어오는 친구들에게 무조건 둘째는 낳지 말라고 했다. 너를 지켜. 아기도 예쁘지만 너 스스로가 중요하다고. 일상이 무너지고, 몸과 마음이 한없이 지쳐버린 나로서는 연년생 아기들을 감당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코로나는 암흑기에 더 깊은 어둠을 드리워줬다. 지칠 대로 지쳤던 육아휴직 3년 차, 그리고 2살, 3살의 연년생 엄마였던 작년의 나에게 작은 위로를 건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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