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이 밤은 물러날지니
아침, 새 아침이 밝아오리라
어제, 어제를 살아낸 나는
지금, 다름 아닌 지금 이곳에.
그러므로, 나는 오늘의 나를 살 것이라’
둘째까지 어린이집에 등원한 첫날, 우는 아기들을 뒤로하고 차에 탄 나는 평소 좋아했던 정밀아의 <서시> 노래를 틀고 볼륨을 높였다.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의 해방감이 느껴졌다.
3월부터 아기들 등하원을 내가 하게 되어서 면허를 딴 지 14년 만에 운전을 처음으로 시작했다. 겁이 많은 성격이라 평생 운전은 못 할 줄 알았는데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 일단 시작이나 해 보자는 생각으로 연수를 시작했다. 5일간의 연수를 받는 내내 조금 무섭긴 했지만 대부분 신났다.
둘째 아기의 적응 기간이 끝나자 아기 둘 다 어린이집에서 낮잠까지 자고 오게 됐다. 진정한 자유의 시작이었다. 둘째 아기 낮잠 첫날, 나는 무작정 영화관으로 갔다. 아무 영화나 볼 생각으로 갔는데 다행히 <미나리>가 상영 중이었다. 영화를 보고 좋아하는 수제 햄버거 가게에 가서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먹었다. 그리고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고 운전을 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아기와 24시간 붙어있다가 갑자기 내 시간이 생기니 뭔가 일상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육아가 잠시 휴식기를 주는 것만 같았다.
내년 복직 전까지 나에게 주어진 자유시간. 나는 스케줄을 짜기 시작했다. 우선 월수금은 운동. 화요일은 첼로 레슨, 목요일은 플라워 클래스를 하기로 했다. 그리고 틈틈이 그동안 못 만난 친구들과 약속을 잡거나 전시를 보러 가거나 영화를 봤다.
아기들이 등원한 뒤 하원 하기 전까지의 시간이 내겐 너무 짧게 느껴졌다. 몇 년 간 육아만 하느라 못 했던 내 취미 생활도 해야 했고, 두 번의 출산으로 망가진 몸을 회복하기 위해 아까운 시간을 운동에 쓰기도 해야 했다. 물론 등원 전 아기들과의 전쟁 같은 시간, 하원 후 잠들기 전까지 복잡다단한 일들은 매일 지속되는 일상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좋았다. 사실 너무 행복했다. 제한된 시간이지만 시간을 쪼개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고, 운전이 가능하니 남편 없이도 나 혼자 여기저기 돌아다닐 수 있게 되니 너무 편했다.
무엇보다 아기들이 훨씬 더 예뻐 보였다. ‘다정도 체력’이라는 말처럼 몸과 마음의 여유가 생기니 남편과 다투는 일도 줄어들었다. 연년생 육아로 지친 몸과 마음이 조금씩 회복되는 느낌이 들었다.
내년에 복직하면 다시 밥벌이 노동에 시달리는 것에 더해 아기들 돌봄 노동까지 추가되어 몇 배는 더 힘들어질 날들이 그려진다. 그러니 올해 좀 더 신나게 놀아야지! 다시 짊어질 노동의 시간을 위해 오늘도 1분 1초를 더 더 신나게 놀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