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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숲 Jun 08. 2021

우리가 만난 건

‘신촌 술터디’ 멤버는 총 6명이었다. 유일한 남자 멤버였던 그는 첫인상이 좋지는 않았다.(물론 그도 나의 첫인상이 좋지는 않았다고 한다.) 같이 스터디를 하면서도 데면데면하게 지냈다.


어느 날 공덕 족발집에서 술을 마시던 날, 인디밴드 ‘눈뜨고코베인’(눈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음악을 좋아하는 나는, 특히 인디음악을 열렬히 사랑했던 나는 눈코 이야기에 반색했다. 대부분의 멤버들은 눈코를 알지 못했고, 무슨 그런 이름의 밴드가 있냐고 깔깔댔다. 그때 한 멤버가 그에게 “선생님도 인디밴드 좋아한다고 하지 않았어요? 눈코 밴드 알아요?”라고 물었고, 그날 처음으로 둘이서 잠깐 음악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고도 한동안 데면데면한 사이는 지속됐다. 중간중간 그가 책상 위에 올려놓은 연필과 필통, 파일 등 문구들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슬쩍 살폈다. 내 취향에 맞는 문구들이 많았기 때문이다.(나는 음악만큼이나 문구도 열렬히 사랑한다.)


한 계절이 지나고 초여름이 시작되던 때, 나는 한 대학교에서 진행하는 여름방학 전공 특강 수업을 신청했다. 스터디 멤버 중 나 포함 3명이 신청했지만 나중에 한 명이 취소하는 바람에 우리 둘이 같은 수업을 듣게 된 것이다. 어색한 사이라 혹시 마주치면 겸연쩍게 인사해야 하나 고민하기도 했다.


특강 첫날 오전 수업을 끝내고 점심을 먹으러 가려고 자리를 일어서는데 그가 다가왔다. “혹시 점심 같이 드실래요?” 나는 순간 적지 않게 당황했지만 태연한 척 “아, 네. 그래요.”라고 짧게 대답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함께 수업을 듣는 선후배들이 많았던 그는 혹시 내가 혼자 밥을 먹나 싶어 나에게 말을 걸어온 것이었다. 당시 나는 혼자 밥 먹는 것에 매우 익숙했고, 음악을 들으며 혼자 밥 먹는 시간을 좋아하기도 했다. 그래서 ‘뭐지? 아 어색해.’하는 마음이 컸다.


어색했지만 어색하지 않은 척 스몰 토크를 나누던 우리는 밥을 먹다가 자연스레 먹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가 나물을 무쳐 먹는다는 얘기에 나는 물었다.


“요리를 잘하시나 봐요. 어머니가 좋아하시겠어요.”

“저는 어머니가 2년 전에 돌아가셔서요.”

“앗, 아, 죄송해요. 그런 줄도 모르고 제가 실수했네요.”

“아니에요. 저는 엄마랑 좋은 추억이 많아서 괜찮아요.”


그는 아주 담백한 목소리로 담담하게 말했다. 나보다 네 살이나 어린 그가 갑자기 큰 사람으로 보였다. 이런 대화를 하는 사람의 멘털은 얼마나 단단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지난번에 짧게 나누었던 눈코 이야기를 시작했고 이내 음악 전반에 대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리고 좋아하는 음악의 많은 부분이 겹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그날부터 우리는 매일 점심을 같이 먹고 커피를 마셨고,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에서 내내 좋아하는 음악을 함께 들었다. 그리고 저녁에는 자기가 좋아하는 밴드의 음악들을 압축해서 서로의 메일로 보냈다. 그는 주로 외국 인디음악에 조예가 깊었고, 나는 한국 인디음악에 빠져 홍대를 전전하던 시절이었다.


밤마다 메신저로 이야기를 나누던 우리는 어느덧 매일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통하는 게 많았고, 많은 부분에서 비슷한 취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우리는 만나서 공부를 한다는 핑계로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영화를 봤다.


서로의 이야기에 빠져들어 매일매일을 보내던 우리는 그해 시험을 보기 좋게 망쳤다. 다음 해에 나는 기간제 교사로, 그는 도서관에서 수험생으로 일 년을 보냈고, 같은 해 나란히 합격했다.


결혼에 큰 뜻이 없었던 나는 그를 만나 결혼이라는 제도에 들어왔고, 아기를 좋아하지 않던 나는 그를 만나 아기 둘을 낳았다. 역시 미래에 대한 섣부른 예단은 금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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