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숲 Jun 22. 2021

엄마의 용돈

둘째까지 어린이집에 가고 난 뒤 자유로운 낮시간을 보낸 지 2주쯤 되었을 때였다. 여기저기 다니며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맛있는 커피를 마셨다. 그러다 한순간, ‘아, 내가 매일 너무 많은 돈을 쓰고 있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3년간 24시간 육아 풀타임에 지친 나를 위해 이 정도는 충분히 쓸 수 있다는 생각도 같이 들었다. 소비에 대한 약간의 불편한 마음이 생길 즈음이었다.


전화벨이 울렸다. 엄마였다. 무슨 일인가 싶어 전화를 받았더니 내 통장으로 50만 원을 보냈다고 했다. 나는 “50만 원? 갑자기 왜?”라고 물었고, 엄마는 “내년 복직하면 또 일하느라 정신없을 텐데 올해 돈 신경 쓰지 말고 먹고 싶은 거 마음껏 먹고 편하게 써. 엄마가 또 보내줄게.”라며 나에게 용돈을 보낸 것이었다. 요즘 나의 심리 상태를 어떻게 알고 이렇게 딱 용돈을 보내주신 건지 신기했다. 용돈이 생긴 건 기뻤지만 사실 마흔이나 된 딸이 엄마에게 용돈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조금 부끄럽기도 했다. 무엇보다 나는 엄마에게 ‘좋은’ 딸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나는 한국의 장녀답게 씩씩하고 책임감 있게 컸다. 딸 둘인 집에서 나는 주로 아들 역할을 했다. 부모님은 집안의 대소사를 나와 의논했고, 집에서 나는 과묵했다. 학창 시절 학교에서 돌아오면 동생은 엄마에게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하나하나 이야기했다. 오늘 나온 급식이 맛있었다거나 수업에서 있었던 일들을 조잘조잘 엄마에게 얘기하는 식이었다. 반면 나는 하교한 뒤 집에 오면 간단한 인사만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스무 살 독립한 후에도 나는 엄마에게 자주 연락하지 않았다. 나는 늘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며 내 삶을 살기에 바빴다. 동생과 같이 자취하던 시절에도 동생은 매일같이 엄마에게 연락했지만 내 연락은 뜸했다.


나는 엄마와 친한 편이었다. 딱히 비밀도 없었고 엄마에게 못할 얘기도 없었다. 그저 무뚝뚝했을 뿐이었다. 엄마와는 친구처럼 지냈지만 자주 싸웠다. 엄마는 나를 혼냈지만 나는 이해되지 않는 훈육에는 나름의 논리로 대응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내게 어른에게 버릇없이 말대꾸한다고 나를 더 혼냈고, 나는 어른이라도 잘못됐으면 아이가 지적할 수 있다고 응수했다. 엄마가 어른의 권위로 나를 누르려고 하는 게 싫었다. 그러다 보니 엄마가 동생 같은 딸은 한 트럭 데려와도 다 키우겠는데 나 같은 딸은 한 명만 더 있어도 키우기 너무 힘들다며 푸념하기도 했다.


엄마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자주 연락하고, 함께 맛있는 것도 먹고 쇼핑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주는 게 엄마가 원하는 딸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딸이 아니다. 무엇보다 나는 각자의 삶을 잘 살아가는 게 건강한 모녀 관계라고 생각한다. 엄마를 사랑하지만 나는 엄마보다 나를 더 사랑한다. 평생을 자식을 위해 살아온 엄마가 들으면 또 한 번 서운하겠지만. 그래서 늘 엄마에게 미안하다. 엄마가 준 용돈이 부끄러운 이유다.

이전 07화 자유로운 나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