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엄마가 아니라 이모 같아.”
아기를 낳은 지 50 여일쯤 지나 친구가 집으로 찾아왔다. 아기 옷을 선물로 주고는 나와 아기가 지내는 모습을 보더니 불쑥 던진 말이었다. 친구가 보기에 내가 아기를 대하는 모습이 보통의 엄마 같지 않다고 느낀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출산하고 아기와 처음 대면한 순간에도 눈물은커녕 이 아기가 내가 낳은 아기가 맞는 건지 영 어색하기만 했다. 아기와 함께 집으로 돌아와 24시간을 붙어 지내도 어색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기가 낯설게 느껴질 때마다 생각했다. 난 모성애가 없는 걸까.
아기와는 백일쯤 지나 조금 친밀감이 느껴졌다. 나를 향해 싱긋 웃는 배냇짓을 할 때면 우리가 소통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아주 천천히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면서 나는 아기와 가까워졌다. 아기가 세 돌이 지난 지금은 나의 그 어떤 친구보다 가깝고 소중한 존재가 되어 있다.
물론 아기는 예쁘고 친밀하고 소중한 존재지만 나는 임신 때부터 늘 아이와 나를 분리했다. 나는 나, 아기는 아기. 엄마라고 해서 아기에게 절대적인 존재로 군림하거나 아기의 삶을 내 삶처럼 여기고 살아가는 일은 편하지 않게 여겨졌다.
일례로 나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 문제도 그렇다. 개인적으로 카카오톡을 좋아하지 않지만 다수의 사람이 사용하는 연락 수단이라 어쩔 수 없이 나도 종종 사용하고 있다. 카카오톡의 프로필 사진은 사람들이 자신의 근황을 전하는 중요한 도구로 기능하고 있다. 특히 연애, 결혼, 임신, 출산 등의 단계를 거쳐나가면서 다음 단계의 진입을 알리는 사진들이 열심히 올라온다. 프로필 사진만 봐도 그 사람의 근황을 바로 파악할 수 있다.
기혼 유자녀인 사람들이 주로 올리는 사진 중 절대적으로 많은 것이 아기 사진이다. 아기를 낳으면 으레 사람들은 아기의 사진을 프로필 사진에 걸어 둔다. 하지만 나는 지금껏 프로필 사진에 아기 사진을 올린 적이 없다. 그런 탓에 친구들이나 직장 동료들은 연락만 닿으면 아기 사진을 보여달라고 아우성이다.
나는 아기에게 물어보지 않고 SNS에 아기 사진을 올리는 것이 허락받지 않은 사진을 무단으로 게재하는 것처럼 불편하다. 물론 사진을 찍고 어딘가에 사진을 올리는 걸 내가 워낙 싫어하기도 하지만 내가 아닌 타인의 사진을 말없이 공개하는 게 꺼림칙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SNS는 나의 이야기가 담긴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직 나와 관련된 일이거나 내가 좋아하는 취향의 것들만 올린다. 아기에게 매몰되지 않고 내 삶을 지키고, 아기를 나에게서 독립시키려는 나의 의지가 반영된 행위라고도 할 수 있다.
지금은 아기에게 내가 세상의 전부일 수 있지만 머지않아 아기는 아기의 인생을 살아나갈 것이다. 나는 그 곁에서 평생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줄 생각이다. 나는 나의 삶을, 아기는 아기의 삶을 멋지게 살아가는 미래를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