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표지사진: 교토대 Seifuso Villa Garden 옆문
나의 인도학생은 연일 아침 일찍 숙소를 나서 이곳 저곳을 다닌다. 신사 혹은 절. 여행객이 가는 곳들 말이다. 아버지가 살아계실때 부모님과 조카와 교토에 관광하러 온적이 있다. 아마 2007-8년 쯤이지 않았나 싶다. 3박 4일이었다. 여러 절들을 다녔었다. 금각사 (킨카쿠지), 청수사 (기요미즈데라), 용안사 (료안지) 등이 기억에 남는다. 지금은 여러 절들을 다시 가고 싶지는 않다. 게을러서. 그래도 교토에 왔으니, 절 한 곳은 가야하지 않나 싶으면, 청수사에 갈 것이다. 절을 다 돌려면 거리가 제법 되어 운동도 되고 중간에 약수터도 있고, 다 돌고 난 후엔 소바 음식점을 비롯해서 앉아서 무언가를 먹으며 휴식을 취할 수도 있으니까.
나이 탓인가. 사람들이 짧은 여행보다는 한달살이가 좋다는 말에 이제는 공감한다.
오늘은 요가를 마치고 숙소에 돌아오지 않고, 반대편으로 정처없이 걸었다. 오늘은 일정이 없다. 어제 교토대학의 친구 실험실에 들러, 세미나를 하고 그 친구의 학생들과 공동연구과제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이 일본친구는 나에겐 특별한 친구다. 이름의 이니셜을 따서 H 라 하자. H는 나보다 정확히 10살이 적다. 올해 49세 혹은 50세, 생일이 지났는지 아직 안지났는지는 모른다. H를 처음 만난 것은 아마 2000년 전후일 것이다. 그는 당시에 도쿄대 박사후 연구원이었다. 그 실험실의 교수와 내가 공동연구를 그때 시작하여 그 연구실을 방문하였는데, 그때 H를 소개받았었다. 똑똑하여 미래가 촉망한 청년이라고. 그후 H는 나와 공동연구를 하기 시작했다. 2002년 쯤에 H와 나는 시카고 근처에 있는 연구소에 같이 실험을 하러 가기도 했고, 그 실험 뒤에 시카고 시내에 있는 박물관을 둘러본 기억도 있다.
그와의 공동연구는 계속되었는데.. 공동연구보다는 다른 연구로 H와의 인연은 깊어졌다. 그때는 2010년 여름이었다. 천안함이 한미공동군사훈련 중에 침몰된 그 해였다. 난 과학자로서 천안함침몰의 진실규명에 연관되게 되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나의 졸저 <과학의 양심, 천안함을 추적하다> (창비)에 기술되어있다. 그때 난, 도쿄대학 고체물리연구소에 방문교수로 나의 또다른 일본인 절친인 S교수 연구실에서 여름을 지내고 있었다. H가 속했던 교수의 연구실도 같은 연구소 건물내에 있었다. 그때, 소위 흡착물질이라는 백색물질들의 정체를 알아내려고 몇가지 실험과 시뮬레이션을 하려고 했었는데… 그 실험은 그 연구소에서 이루어졌었다. 방문자로서 그 연구소의 시설을 이용하려면 그 연구소 소속의 연구자가 참여를 해야했다. 나는 H에게 부탁을 했고, H는 나의 부탁을 흔쾌히 받아주었다. 그리고 그는 그 실험을 나와 같이 실행해 주었었다. 그의 정치적 성향이 어느쪽인지는 그때도 그리고 지금도 모른다. 그와는 정치이야기는 하지 않으니까. 그러나, 그때 내가 간략하게 상황설명을 했을때, 그는 그 문제를 과학적 진실 규명의 문제로 받아들였고, 과학자로서 당연히 나를 도와주어야한다 했다. 고마운 친구다. 옳은 일이라면,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도움을 주는 친구.
그후, H는 공동연구와는 별개로 언제나 깊은 우정을 간직한 사이가 되었다. H는 10여년 전에 도쿄대학에서 교토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이와의 인연으로 난 지금 교토를 방문중이고, Ashtanga Yoga Kyoto에서 요가를 하며 구루 케이고 야마구치를 만나게 되었다.
과학의 인연이 요가의 인연을 불러왔다.
교토에 도착한 다음날 새벽, 아쉬탕가 요가 쿄토 (Ashtanga Yoga Kyoto)에 가서 요가를 했다. 숙소에서는 걸어서 35분 가량 걸리는 곳이다. 갈때는 얼마나 걸릴지 가름을 할 수가 없어, 지하철을 타고 갔다. 한 정거장 사이. 올때는 그냥 걸어서 왔다. 중간에 쿄토가든 (Kyoto Garden) 안으로 들어와 가로질러 걸을 수 있어, 산책 겸 괜찮은 거리다.
쿄토에 간다고 하니, 도쿄 시부야 소재 아쉬탕가 요가원의 선생 에리코와 그의 친구 Y 가 쿄토에는 아쉬탕가 요가원이 두곳이 있다고 했었다, Mysore Kyoto 와 Ashtanga Yoga Kyoto. Mysore Kyoto 는 쿄토에서 가장 오래된 아쉬탕가 요가원이고, Ashtanga Yoga Kyoto 에는 젊은 멤버들과 열정적인 선생들로 활기찬 곳이라고 알려주었다. 난, 두곳 중에서 그저 내 숙소에서 가까운 곳을 택했다. 그곳이 Ashtanga Yoga Kyoto (AYK)다.
AYK 는 작은 건물의 2층에 위치해 있다. 좁은 문을 열고 들어서면, 표지사진에 보여지는 좁은 복도가 있다. 이 복도의 중간 오른편에 커튼 건너편에서 거친 숨소리들이 들려왔다. 아, 요가실이 그 건너편에 있구나.. 커튼을 젖히고 들어서니, 좁고 기다란 요가실이 있었다. 6시 10분 경이었다. 왼쪽 한귀퉁이에 한 남자가 수건으로 눈가를 덮은채로 누워있었다. 요가를 이미 마치고 사바사나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선생이리라. 학생들은 오른쪽 편 가장자리부터 오른쪽 벽을 향해 보며 요가를 하고 있었다. 7명. 남자 3, 여자 4.
요가매트를 빌려야하는데... 하고 있는데, 한 여자가 들어왔다. 영어로 물으니, 커튼 안, 바로 왼쪽에 놓여있는 여행자가 빌려 쓸 수 있는 요가매트들을 가리켜 주었다. 영어 소리가 들리자, 사바사나의 사내가 손으로 수건을 걷고 잠깐 내 쪽을 보고는 다시 사바사나로 돌아갔다.
사람들 틈에 요가매트를 깔고 요가를 시작했다. 벽에서 두번째 열. 첫 열에는 3명의 여성. 내 양 옆에는 두 남자가 요가를 하고 있었다. 내 뒤에는 한명의 남자와 두명의 여자. 두시간 가량 요가를 하는 동안 한두사람이 요가를 마치고 떠났고, 서너명이 새로 들어왔다.
이 요가원은 매우 진지한 곳이다. 내 왼쪽에 있던 남자를 비롯해서 총 세명이 중급시리즈를 하였다. 그 세명 모두 중급시리즈에서 가장 어렵다는 카란다바사나를 제대로 하였다. 그 세명 중에서 한명은 심각한 인상의 50대 초중반 쯤 되어 보였고, 나머지 두명은 30대 전후로 보였다. 그 심각한 인상을 가진 50대 남자는 내 왼쪽에서 요가를 하였는데, 카란다바사나를 무려 다섯번을 하였다. 내눈에는 매번 제대로 하는 듯 한데, 자신의 마음에는 들지 않아서, 더 완벽하게 하려는지, 계속 반복하였다. 대단하다.
내가 오프닝시퀀스를 마치고 중급시리즈로 들어갈 무렵, 뒤쪽 귀퉁이에서 사바사나를 하고 있던 선생이 간단한 옷을 걸치고 우리들 앞으로 걸어왔다. 나의 예상대로 선생이었다.
그 선생의 이름은 케이고 야마구치 (Keigo Yamaguchi). 내가 요가를 마치자, 다가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케: 여행하고 있니?
나: 응.
케: 어디서 왔니?
나: 미국에서.
케: 너의 선생이 누구니?
나: 존 벌트만.
케: 아, 그 키가 매우 큰 사람?
나: 응. 교통사고를 당했다가 요가로 회복도 했었지.
케: 응, 그이를 알아. 인도 마이소어에서 여러번 보았어.
그러니까, 케이고와 나의 선생 존은 아는 사이다.
케: 오늘만 온 거니?
나: 아니, 내일과 모레도 올거야.
케이고는 위의 사진처럼 옅은 미소를 항상 띄고 말을 하였다. 내가 수강료가 3000엔이지 물으니, 응 하며 탁자 한귀퉁이을 가리키며, 거기다 놓아 하였다. '요가매트 대여료는 얼마니?' 하고 물으니, '그건 알아서 내' 하였다. 돈 개념이 없는 친구 같았다. ㅋㅋ
이 요가원은 에리코의 평대로, 열정적인 선생과 열정적인 멤버들로 활기찬 곳이다. 매우 잘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