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자리

by SAHAS



찬영의 손에 이끌려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는 있지만 그녀의 모든 감각은 그의 움직임에 집중되어 있었다.

거실 소파에 누워 긴 숨을 고르는 그의 호흡 소리조차도 확성기를 댄 것처럼 그녀의 귀에는 크게 들려왔다.


찬영은 그녀 인생 중 두 번째 남자가 되었다. 첫 남자는 X 남편이었고 나이가 꽤 있었지만 항상 매너 있고 적당히 다정한 사람이었다.

같은 회사 선배였고 남자로서 능력 있고 점잖고 매너 있는 모습이 마음에 들어 청혼 받았을 때 큰 고민 없이 승낙하고 결혼을 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았다.


그녀에게 첫 연애가 이성적 연애였다면 찬영과 하고 있는 지금 연애는 감성적 연애다.

찬영은 산하에게 이성에 대한 긴장감처럼 그녀가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성적 끌림 같은 것을 느끼게 만드는 남자였다.

일상의 스킨십들을 처음 경험해 민망하기도 했지만 그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었고, 아슬아슬한 경계선까지 가는 짙은 농도의 스킨십으로 바뀌더라도 그는 항상 약속을 잘 지켜주었기에 그녀도 짙은 농도의 스킨십을 거부하지 않았다.


그녀를 침대에 뉘인 후 자신을 바라보던 그의 눈빛은 끓어 오르는 욕망을 최선을 다해 억누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안방을 벗어나는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소파에서 잠을 청하는 그의 숨소리를 들으면서 그녀는 그를 무척이나 좋아한다는 것을 실감했다.


찬영과 산하는 각자의 자리에서 늦게까지 잠들지 못하다 새벽녘이 되어서야 잠이 들었다.



▷▷▷▷


거실 창밖으로 어슴푸레 해가 떠오른 것이 느껴진 찬영은 눈을 떴다.

자신이 덮고 잔 이불을 정리하고 운동복으로 갈아 입은 그는 어젯밤의 여파를 운동으로 완전히 지우기 위해 집을 나섰다.

산하를 처음 만났던 산책로에서 두 시간 정도 달리기를 하니 몸이 가벼워지면서 본래의 이성이 돌아 온 듯했다.


깊은 잠에 들지 못했던 산하는 현관문 소리에 잠을 깨 거실로 나왔다.

소파가 정리되어 있는 것이 그가 운동을 하러 나간 듯했다.


찬영이 없는 거실에서 그녀도 내려가지 않는 열기를 명상과 스트레칭으로 풀어낸 후 그가 들어 올 시간이 되자 서둘러 씻기 위해 안방 욕실로 향했다.



운동을 마친 찬영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코 끝을 자극하는 은은한 커피 향이 느껴졌다.

집안으로 들어선 그의 눈에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안방을 확인하니 진서 혼자 자고 있었고, 준서 방에서도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어른 없이 아이들만 두고 나갈 성향이 아닌데 어디에서도 그녀가 보이지 않는것이 이상했다.

그때, 안방 욕실 문이 열리면서 그녀가 보였다.


"운동하고 왔어요?"


"네, 들어왔는데 안 보여서 걱정했어요"


그가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그녀에게 다가가 얼굴을 부드럽게 만졌다.


"피곤했을 텐데 오늘 같은 날 늦잠 좀 자지 그랬어요"


"늦잠 자는 편이 아니어서 괜찮아요. 산하 씨는 잘 잤어요?"


"잘 잤어요, 운동하고 와서 더울 텐데 씻고 나와요, 커피 내리고 있어요"


"그럴게요, 아이들 일어날 때까지 소파에서 쉬고 있어요"


"알았어요"


그녀의 목덜미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만지며 그가 말했다.



찬영이 씻기 위해 욕실로 들어간 후 산하는 거실 창문을 열고 핸드폰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 소파 깊숙이 몸을 기대앉았다.

새벽과 어울리는 청아한 목소리의 노래를 들으며 눈을 감으니 창문을 통해 선선한 바람이 그녀의 얼굴을 스쳐 지나고, 커피 포트의 은은한 커피 향은 바람을 타고 집안을 감쌌다.


막 샤워를 끝내고 나온 찬영은 소파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쉬고 있는 그녀를 보았다.

눈을 감고 음악을 듣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진한 향을 품고 있는 백색 작약꽃 같았다.

찬영은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의 얼굴에 짧은 입맞춤을 했다.


그의 입맞춤에 산하는 감고 있던 눈을 천천히 들어 올리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찬영과 눈을 맞췄다.

샤워를 마치고 나온 그의 모습은 머리부터 발 끝까지 '나 촉촉해요'라고 쓰여 있었다.

자신에게 아침부터 섹시함을 보여 주고 싶었다면 성공이라고 그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다 씻었어요? 머리는 왜 안 말렸어요, 내가 해 줄까요?"


"그래 주면 엄청 고맙죠"


" 수건 저한테 주고 여기 앉아요"


소파에서 일어난 그녀는 찬영에게 수건을 건네 받고는 소파에 앉은 그의 앞으로 다가가 머리카락에 남아 있는 물기를 털어내주었다.

물기를 최대한 털어낸 산하는 안방 욕실에서 헤어 에센스를 손에 덜어와 그의 머리카락에 발라 주었다.


"내추럴하게 해 주면 될까요?"


"산하 씨가 해주고 싶은데로 해 줘요"


그녀가 웃으면서 스타일링을 마무리를 해 주었다.


"고마워요, 수건 세탁실에 놓고 커피 가져올 테니까 앉아 있어요"


"네"



찬영이 커피 두 잔을 들고 와 한 잔은 산하에게 건넸다.


"식전에 마시는 거라 연하게 물을 조금 더 탔어요"


"고마워요, 운동 얼마나 한 거예요?"


"음... 두 시간 정도 한 같아요"


"엄청 빨리 일어났네요, 오늘 집에 일찍 가서 좀 쉬어요"


"마음은 늦게까지 있다 가고 싶은데, 본가에 들러야 해서 점심 먹고 가야 될 거 같아요"


"부모님이 기다리시겠어요"


"저보다는 진서를 기다리시고 있겠죠"


그녀는 커피를 마시며 머리를 끄덕였다.


"집에 가서 가 걱정이에요"


"왜요?"


"진서가 산하 씨랑 준서를 많이 찾을 거 같아서요"


"아, 그 생각은 못했는데, 찬영 씨가 힘들어지겠어요"


"나도 산하 씨랑 준서가 보고 싶을 거 같아요.

시간으로는 나흘 같이 지냈는데 마음은 몇 년 같이 산 것 같아요"


말간 눈빛에 잔잔한 미소를 띤 산하가 찬영의 머리카락을 만져 주었다.


"많이 힘들면 저한테 연락해요, 진서가 마음 아픈 건 저도 싫으니까"


그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만지는 그녀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그럴게요"



커피를 마시던 찬영은 산하의 얼굴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다.


"산하 씨, 그 올림머리는 회사에는 하고 오지 말아요"


"왜요? 안 어울려"


"그 반대요. 산하 씨한테 엄청 잘 어울려요. 그래서 위험해요.

지금 모습은 남자들이 환장하게 좋아하는 거라 절대 다른 남자가 보면 안 돼요"


산하는 환하게 웃으며 찬영을 바라봤다.


"우선은 고맙다고 해야겠네요, 칭찬을 들었으니까.

위험하다고 한 부분은 잘 생각해 볼게요"


아침부터 자신을 홀리려고 하는지 찬영은 기분 좋은 말을 해주었다.

이렇게 다정한 말과 스킨십을 하는 그의 모습을 보는 사람은 그녀가 유일했다.

산하는 아침부터 기분 좋아지게 하는 그의 입술에 짧은 입맞춤을 했다.


"이건, 기분 좋아지게 해 준 선물이에요"


만족할 만한 선물을 받은 찬영은 환하게 웃으며 커피잔을 테이블에 내려놓고는 옆에 앉아 있던 산하를 두 팔로 들어 자신의 한쪽 다리 위에 앉혔다.


"선물이 아주 마음에 드네요"


"마음이 들었다니 다행이네요, 저 할 말 있어요"


"해 봐요"


"회사 TFT 에 참여하려고요, 일이 많아지겠지만 해보고 싶어요"


"하하하, 지금 이렇게 내 다리 위에서 이런 얼굴을 하고 할 말은 아닌 거 같은데요.

음. 일이 많아지기는 하겠지만 '직장인 서산하'의 커리어에는 도움이 될 일이니까 잘해봐요.

또 할 말 있어요?"


"아니요, 근데 이제 내려주면 안 돼요?"


"그건 안돼요, 조금만 더 안고 있을게요"


찬영은 자신의 다리 위에 앉은 산하가 떨어지지 않도록 두 손으로 허리를 잡았다.

그녀는 찬영의 어깨를 자신의 두 팔로 안았다.



준서는 거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눈을 떴다. 침대 위 시계를 보니 여덟 시가 넘었다.

자고 일어난 침대를 정리하고 나가니 거실에서 진한 애정 표현을 하고 있는 두 사람을 보게 되었다.

두 사람을 말없이 지켜보던 준서가 급한 생리 현상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욕실로 향했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준서가 인사하는 소리에 찬영이 얼굴을 돌려 준서를 바라보았다.


"준서 잘 잤어? 화장실 가는 거야?


"잘 잤어요, 급해요"


욕실까지 뛰듯이 걸어가면서도 대답은 꼬박꼬박 해 준다.

찬영의 다리에 앉아 있는 상태로 산하는 한숨을 내 쉬었다.


"이런 모습을 준서한테 너무 자주 들키는 거 같아요"


"이 정도는 괜찮아요, 그리고 준서도 익숙해졌을 거예요"


찬영이 산하의 얼굴에 입맞춤을 해 주고는 그녀를 자신의 품에서 놓아 주자 산하는 아침 준비를 위해 주방으로 향했다.

급한 용무도 해결하고 세수까지 한 준서는 소파에 앉아 있는 찬영의 옆으로 가 앉았다.


"준서 마실 거 줄까?"


"물이랑 우유 한잔 주세요"


"잠깐 기다리고 있어"


찬영은 준서가 주문한 것들을 챙겨 거실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물 먼저 마시고 우유 마실 거지?"


"네"


준서가 머리를 끄덕이고는 물을 다 마신 후 컵은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내일 월요일인데 유치원 준비물 있어?"


"음.... 없어요"


찬영은 준서의 머리를 정리해 주고는 빈 잔을 싱크대에 가지고 가 씻어 놓았다.

산하는 찬영에게 진서를 깨우라고 얘기하고 아침 식탁 세팅을 시작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준서와 진서는 소파에서 티브이를 보고 있었다.

찬영은 쇼핑센터에서 구입한 준서와 진서의 커플 트레이닝 복을 가지고 나왔다.


"준서랑 진서 잠옷 벗고 옷 갈아입자"


티브이를 보던 준서가 소파에서 일어나 잠옷을 벗어내니 찬영이 갈아입혀 주었다.

진서도 찬영의 손에 옷을 갈아 입고는 다시 소파에 앉아 티브이로 눈을 돌렸다.

찬영은 갈아 입힌 잠 옷을 가지고 세탁실로 가 세탁기를 돌렸다.


안방과 준서 방 청소를 마친 산하가 거실로 나오면서 옷을 갈아입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실소를 흘렸다.

둘 다 시선은 티브이에 가 있고 찬영의 말에 팔다리만 움직이는 모습이 귀여워 보였다.


소파를 아이들에게 빼앗긴 두 사람은 거실 바닥에 앉아 마른빨래를 정리했다.


"진서랑 찬영 씨 옷 중에서 몇 벌은 여기 놓고 가는 건 어때요?"


"그럴까요. 왠지 자주 오라는 말로 들리는데요"


찬영의 말에 산하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정리된 빨래들 중 몇 가지를 골라 드레스룸으로 가지고 가 옷장에 넣었다.


"다음에 우리 집에서도 같이 놀아요"


"좋아요"


산하가 진서와 찬영이 가지고 가야 할 것들을 챙겨 주었다.

찬영은 가지고 갈 짐을 차 트렁크에 미리 실어 놓고 올라왔다.



네 사람의 점심은 찬영이 준비하기로 하고 산하가 옆에서 도와주었다.

요리를 많이 해보지 않았다고 했던 그는 괜찮은 요리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많이 해보지 않았다고 하기에는 꽤 좋은 실력인데요"


"보기에만 그래요, 산하 씨에 비하면 많이 부족하죠.


부모님 댁 일 봐주시는 분이 계시는데 저희 집은 일주일에 두 번 와서 봐 주세요.

그래서 직접 할 일이 많지는 않은데 진서가 있으니까 직접 하게 되더라고요.

잘하는 건 아니지만 먹을 만은 해요"


"이 정도면 잘하는 거예요. 자신감을 가져도 될 거 같아요"


점심 식사가 끝나고 뒷정리까지 마무리가 되니 찬영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준비했다.


"본가에 들렀다 집으로 가는 거죠?"


"네, 걱정하고 계실 테니까 얼굴 먼저 뵙고 가려고요"


산하가 머리를 끄덕이며 진서의 손을 잡고 엘리베이터에 먼저 오르고 뒤이어 찬영이 준서를 데리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온 찬영은 진서를 카시트에 태운 후 준서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저씨한테 하고 싶은 말 있으면 언제든지 전화해, 인라인은 주말에 더 연습하자. 엄마 잘 지키고."


"네, 안녕히 가세요"


준서가 반듯하게 인사를 건넸다.

찬영은 그런 준서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후 산하를 바라보았다.


"나흘 동안 고생 많았어요, 가서 연락할게요"


산하의 얼굴에 가벼운 입맞춤을 한 후 차에 올라 시동을 켜고 자신의 집으로 출발했다.


준서와 집으로 올라온 산하는 거실에 있던 장난감들을 정리했고, 준서는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누웠다.

네 사람으로 시끌시끌했던 집안은 무척이나 조용하고 고요했다.


산하와 준서는 찬영과 진서가 떠난 빈자리를 자신의 방식으로 정리하고 있었다.












이 글은 제가 창작한 이야기입니다.

부족한 부분이 많이 있지만 재미있게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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