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영은 보조석 문을 열어 산하를 태운 후 자신도 차에 올랐다.
"연휴 끝나고 출근하자마자 엄청 바쁜 하루를 보냈네요"
"그러게요. 비서실 직원들은 연휴에 출근했다고 하던데요"
차에 오른 찬영은 운전석에서 몸을 돌려 산하의 긴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네, 비서실로 제보가 들어왔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죠"
"지금도 일이 많은데 당분간은 일이 더 많아지겠어요"
"나보다 직원들이 할 일이 더 많아져서 산하 씨도 당분간 고생 좀 하겠어요"
"연휴 끝나고 출근하자마자 큰일이 생겨서 다들 걱정이 많기는 하지만 찬영 씨가 일을 주고 싶어 준 게 아니니까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요. 그리고 팀원들이 점심 감사했다고 전해 달래요"
"나 때문에 점심시간도 놓친 거라 신경 쓴 건데 고마워하니까 오히려 내가 미안해지네요"
"일 많아서 밥때 놓쳤다고 다 챙겨 주시는 건 아니니까요. 그런데 회사 모든 팀에 그러는 건 아니죠?"
약간의 질투심이 담긴 듯한 산하의 말에 그가 크게 웃었다
"모든 직원들을 이렇게 챙기는 건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산하 씨가 있으니까 기획팀까지 챙긴 거지 보통은 팀장들이 알아서 하게 두죠"
애교스러운 눈웃음을 지으며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을 부드럽게 만진 찬영은 자동차 시동을 켜고 집으로 출발했다. 늦은 밤 시간이어서 그런지 도로에 차가 많지 않아 신호도 걸리지 않고 막힘없이 시원하게 달렸다.
찬영은 오후에 준서에게 받은 문자에 대해 산하에게 이야기했다.
"오늘 준서한테 문자가 왔어요"
준서가 엄마한테 말하지 않은 모양이다. 산하가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잠시만요"
재킷 안쪽에서 핸드폰을 꺼내 산하에게 건네주었다. 산하는 건네받은 핸드폰을 열어 준서가 보낸 문자를 확인했는데 예쁜 카네이션 사진과 짧은 문자가 보였다.
"준서한테 문자 받고 내가 전화했어요.
어린이날 재미있게 보내게 해 줘서 고맙다고 주는 거래요"
"준서가 찬영 씨랑 진서 가고 나서 많이 서운해했어요"
"그랬어요!"
"찬영 씨가 진서 걱정할 때 저는 준서가 서운해할 거라고는 예상 못했었거든요"
"나도 예상 못했는데요. 우리 둘 다 준서를 너무 어른으로 봤나 봐요"
산하는 그가 하는 이야기에 머리를 끄덕이며 작게 한숨을 내 쉬고는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는 풍경들을 보면서 어제 준서가 한 이야기를 찬영에게 해야 될지 생각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찬영은 말없이 차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그녀가 오늘 무척이나 힘든 하루를 보낸 때문이라 생각한 그는 자신의 오른손으로 그녀의 왼손을 꽉 잡아 주었다. 자신이 손을 잡고 있는 그의 손을 본 산하가 조용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번 어린이날에 준서 아빠가 연락도 없고 선물도 보내지 않았는데 준서가 많이 기다렸나 봐요. 어제 찬영 씨 가고 나서 많이 속상했는지 울면서 말하더라고요. 그러다 찬영 씨하고 진서랑 너무 재미있게 같이 있던 시간 동안 많이 행복했다고 말했어요"
그녀는 찬영과 진서가 집으로 간 후 있었던 준서와 나누었던 이야기를 차분하면서도 담담하게 말했고, 이야기를 듣는 동안 찬영은 오늘 자신이 받은 카네이션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산하와 준서에 대한 마음은 처음 시작 때부터 가볍지 않았지만 약속한 것들도 지키지 못한 어른들 때문에 여리고 순수한 마음이 다치고 무척이나 아팠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준서가 보낸 준 카네이션이 더 소중하고 그만큼 무게감도 느껴지네요. 앞으로 준서가 살아갈 세상은 실망하고 마음 아픈 일 없이 언제나 행복하고 즐거운 일들만 가득할 수 있도록 해 줄게요. 나한테 말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얘기해 줘서 고마워요.
언제라도 내가 준서나 산하 씨한테 뭔가 잘못하고 있다면 그건 내가 꼭 알아야 하는 것들이니까 감추지 말고 꼭 얘기해줘요"
"그럴게요"
"준서한테 카네이션 산하 씨 편으로 보내 달라고 했어요. 내일 출근할 때 꼭 가져와 줘요"
"그럴게요. 며칠 만에 준서가 찬영 씨한테 정이 많이 들었나 봐요. 고마워요"
"산하 씨도 진서한테 신경 많이 쓰잖아요. 그리고 내가 준서한테 주는 것 이상으로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무겁고 뜨거운 것을 받고 있잖아요 오늘처럼. 생각지도 못한 첫 카네이션을 준서한테 받아서 하루가 행복했어요"
혼자만의 만남이 아니라 서로의 자녀들까지도 보듬어야 하는 어려운 만남을 시작한 두 사람이지만, 자신에게는 사소한 일이 상대에게는 큰일이 될 수도 있는 이런 이야기들도 감추지 않고 대화를 통해 모든 것을 공유하면서 산하와 찬영은 둘 사이에 작은 오해도 만들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해외 출장은 제가 가기로 했어요"
"그럴 거 같았어요. 일주일은 못 보겠지만 관리자들보다 현업 담당자들이 가는 게 좋기는 하죠"
"바쁜 시기에 자리 비우게 돼서 마음이 편치는 않아요"
"일 때문에 가는 건데 미안한 생각하지 말아요. 신규 브랜드 준비할 때 도움이 될 테니까 잘 다녀와요"
"네, 많이 보고 와서 잘해볼게요"
찬영은 잡고 있는 그녀의 손등에 입맞춤을 하고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운 찬영은 산하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그녀의 집으로 올라가고 있다.
육 층까지 짧은 시간이지만 두 사람은 손을 꼭 잡고 나란히 서 있었다.
"진서는 부모님 댁에서 자고 있어요?"
"네"
"그럼, 잠깐 들어왔다 가요. 카네이션도 가지고 가고요"
"그러면 좋죠!"
찬영이 산하의 어깨를 감싸 안으면 그녀의 눈에 입을 맞추고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집 앞에 도착하자 산하가 현관문을 열어 찬영을 안으로 안내했다.
"들어와요. 준서는 방에서 자고 있을 거예요"
"준서 잠깐 보고 올게요"
찬영은 소파에 서류 가방을 내려놓고 손을 씻은 후 준서 방으로 갔다. 침대에서 자고 있는 준서는 자신의 키 만한 인형을 품에 안고는 잠들어 있었다. 침대로 다가간 그는 준서 옆에 조심스럽게 앉아 준서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만져 주면서 잠든 얼굴을 바라보다 머리에서 손을 떼고는 이마에 입맞춤을 해 준 후 이불을 정리해 주고 거실로 나왔다.
산하는 테이블 위에 따뜻한 레몬차를 올려놓고 찬영을 기다리고 있었다.
찬영은 소파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그녀의 곁으로 다가가 옆에 앉았다.
"준서도 잘 때는 인형을 안고 자네요"
"준서가 네 살 때부터 안고 자는 인형이에요.
지금 같아서는 어른이 돼서도 버리지 않고 가지고 있을 거 같아요"
"진서도 토끼 인형을 안고 잤었는데 이번에 선물 받은 상어 인형으로 바꿨어요"
인형을 안고 있던 진서를 생각하니 그녀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떠올랐다.
산하가 찬영에게 찻잔을 건네주었다.
"날씨가 덥기는 하지만 자기 전이라 따뜻한 레몬차로 준비했어요.
마시기 좋을 정도의 온도라 마시기 괜찮을 거예요"
"고마워요"
찬영과 산하는 거실 창밖으로 보이는 불빛들을 보면서 차를 마시며 레몬 향을 느꼈다. 거실 창문을 통해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에 산하의 긴 머리카락이 흩날리면서 그녀의 체향이 찬영의 코 끝을 자극했는다. 그녀를 닮은 작약꽃 향기가 느껴지는 듯했다.
"집에 가서 진서는 괜찮았어요?"
잠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넋 놓고 있던 찬영이 한 템포 늦게 답을 했다.
"아, 어제 본가에서 저녁 먹으면서 산하 씨랑 준서를 찾았는데, 설명을 해주니까 또 물어보지는 않더라고요.
아직 어려서 궁금한 마음과는 달리 준서만큼 표현을 못하는 거겠죠"
산하는 머리를 끄덕이고는 그의 어깨에 자신의 머리를 살포시 내려놓았다.
"겨우 월요일 밤인데 오늘 하루가 길어서였는지 기운 빠져요"
찬영은 어깨에 기댄 그녀를 팔로 끌어안으며 부드럽게 이야기했다.
"그러게요, 가끔씩 정신없이 일하면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게 재미있을 때가 있어요. 평이하고 평온한 직장 생활이 좋기는 하지만 이런 다이내믹 한 순간도 잘 즐길 줄 알아야 직장 생활도 오래 할 수 있어요"
"몸이 힘들기는 했지만 뭔가에 깊이 빠져 올인한다는 느낌이 무척이나 좋았어요"
다니는 직장에 좋지 않은 일이 발생하게 되면 직원들은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스트레스를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사람마다 개인차가 있기 마련이다. 찬영과 산하는 그런 스트레스를 기분 좋은 긴장감으로 생각했고, 발생된 문제에 집중하면서 그것을 해결하고 목표를 이루면서 성취감과 직업인으로서 만족감을 느끼는 것을 선호했다. 두 사람은 대화를 통해 스트레스에 대응하는 방법이나 일을 대하는 자세나 방식이 비슷하다는 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남자와 여자가 함께 공감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은 대화가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는 장점이 되고 비슷한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더 빨리,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동안 거실 벽에 걸려있는 시곗바늘이 열 두시를 넘겼다.
"피곤할 텐데 이제 가야 되지 않아요?"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있던 그녀가 살짝 고개를 들고 그의 얼굴을 부드럽게 만져 주었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어두운 거실 소파에서 내 얼굴을 만지면서 가라고 하는 건 반칙인데..."
시간이 늦었다고 말하면서도 자신을 만지는 그녀의 손길에 기분 좋은 찬영은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산하는 천천히 일어나 옆에 앉아있던 그의 다리 사이로 들어서더니 눈을 마주쳤다.
말간 얼굴로 바라보던 그녀의 얼굴 위로 잔망스러운 미소가 피어오르더니 두 손으로 그의 얼굴을 잡고는 나비가 꽃 위에 내려앉듯 자신의 입술을 그의 입술 위로 살며시 내렸다.
찬영은 소파에 등을 기댄 채 그녀가 해주는 담백하면서도 부드러운 입맞춤을 기꺼이 받았다.
이런 담백한 입맞춤도 녹진한 입맞춤도 그녀와 하는 모든 것이 그에게는 자극이 되었고 그때마다 수명이 단축되는 것 같았지만 그 시간조차 충분히 즐기기로 했다. 입술에서 떨어진 그녀가 찬영의 눈을 바라보았다.
"오늘은 여기까지요"
"허.."
찬영은 그녀의 말에 헛웃음을 흘리며 그녀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그녀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는 자신의 얼굴로 끌어와 잠시 멈추었던 입맞춤을 이어갔다. 산하는 앞으로 넘어지지 않으려고 그의 어깨를 두 손으로 잡았다. 그를 먼저 도발한 것은 자신이니 그가 해오는 농염한 입맞춤까지도 기꺼이 받아들였다.
두 사람의 입맞춤은 힘들었던 하루를 상쇄시킬 만큼 충분한 시간과 공을 들이면서 천천히 이어졌다.
입맞춤만으로도 충만한 시간을 보낸 찬영은 산하를 자신의 품에 안고는 입맞춤 후의 여운을 나누었다.
"많이 늦었는데 이제 가야 되지 않아요"
"나 힘들게 해 놓고서 모른 척하는 거 마음에 안 들어요"
그녀가 작게 웃으며 그의 어깨를 살살 두드려 주었다.
"인내심 강하고 약속 잘 지킨다고 했던 사람 어디 갔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약속을 너무 쉽게 한 거 같아요"
힘들다는 투정 섞인 말에 산하는 그를 살며시 안아주면서 폭탄을 투척했다.
"미안해요, 찬영 씨가 많이 힘든 거 같으니까 당분간 스킨십은 안 하는 걸로 해요"
"약속을 너무 쉽게 했다고 했지 스킨십을 안 한다는 말은 안 했어요"
찬영은 그녀를 품 안에 가두고는 스킨십 안 하겠다는 말을 취소하라고 종용했고 품 안에 갇힌 채 협박 아닌 협박을 듣던 산하가 맑게 웃으면 취소하겠노라 말했다. 원하는 답을 들은 찬영은 자신이 얼마나 인내심을 발휘하고 있는지를 느낄 수 있도록 그녀를 제 다리 위에서 앉혀 바짝 끌어안고는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는 체형을 느꼈다.
자신을 다리 위에 앉힌 속마음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조용히 안겨 있던 그녀는 자신을 안고 있던 팔을 풀고 그가 일어서자 자신도 얼른 일어나 식탁 위에 있던 카네이션과 준서가 남긴 쪽지를 그에게 건네주었다.
"준서가 찬영 씨한테 주는 카네이션이랑 쪽지예요"
"준서한테 고맙다고 전해줘요"
"네, 조심해서 가요"
현관 앞에서 서로를 끌어안고 짧은 입맞춤으로 작별 인사를 나눈 후 찬영이 문을 나섰다.
이 글은 제가 창작한 이야기입니다.
부족한 부분이 많이 있지만 재미있게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