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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HAS May 11. 2023

자상함은 대를 이어




엄마와 통화를 끝낸 산하는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연결 음이 한참 지난 후에 준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준서 잘 놀고 있어?"


"응, 나 아저씨 집이야"


"아저씨 만나서 얘기 들었어. 진서도 잘 있어?"


"잘 있어"


"엄마 집에서 짐 정리하고 쉬고 있을 테니까 잘 놀다 와"


"알았어, 나 할아버지랑 체스하고 있어서 빨리 끊어야 해"


"어, 그래 알았어 끊을게"


준서는 엄마가 말을 끝맺기도 전에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산하는 꺼진 핸드폰을 바라보면서 허탈하게 웃었다.


"준서가 할아버지랑 체스해야 된다고 먼저 전화를 끊었어요"


찬영이 웃으면서 준서 편을 들어주었다. 


"할아버지가 오래 기다리시니까 준서가 먼저 끊었나 보네요"


"일주일 만에 통화하는 건데, 제가 밀린 거 같아요"


크게 웃으면서 찬영이 산하의 손을 잡아 주었다. 


"대신에 산하 씨는 내가 있잖아요. 앞으로 나만 보라니까요"


섭섭해하던 표정이 그의 말에 풀어지면서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피었다. 


"어른들께 죄송하네요. 애들을 두 명이나 맡긴 셈이 되었잖아요"


"두 분이 애들이 보는 게 아니라 애들이 두 분이랑 놀아주고 있는 거예요. 

체스하느라 바쁘다고 전화도 끊었잖아요"


본의 아니게 자신 때문에 독박 육아를 하고 계실 찬영의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이 들었지만 지금은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런데, 희수 씨야 이미 알고 있어서 괜찮지만 강지안 대리까지 알게 돼서 어떡해요"


"처음에도 말했지만 나는 우리 만나는 거 아는 사람이 많을수록 좋아요. 

그리고 강지안 대리도 가볍게 말하고 다닐 사람은 아닌 거 같으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처음부터 한결 같이 사적 만남이 공개되는 것을 개의치 않는 그 다운 말에 산하는 피식 웃고 말았다.  


"근데, 찬영 씨 점심은 먹었어요? 공항 오느라 점심도 못 먹은 거 아니에요?"


"생각해보니까 점심을 안 먹었네요. 산하 씨도 점심 먹어야 되지 않아요?"


"근처에서 먹고 들어 갈까요?"


"포장해서 집에 가서 먹어요. 집에서 편히 먹는 게 나을 거 같아요"


찬영은 공항에서 출발하기 전에 산하와 같이 갔던 일식당에 전화로 포장 주문을 하고는 차를 출발시켰다.

주말 나들이에 나선 사람들이 많았는지 집 근처까지 도착하는데 두 시간이나 소요되었다. 

식당에 들러 주문 포장된 음식을 찾아 집에 도착하니 다섯 시가 훌쩍 지났다.  



장시간 비행으로 피곤한 산하에게 샤워를 하라고 말한 찬영은 빠르게 식사를 준비하고는 준서와 진서를 저녁 시간에 맞춰 데리러 갈 수가 없을 듯해서 아버지께 전화를 걸었다. 

이제야 집에 도착해 두 아이를 먹일 식사 준비가 힘들 듯하여 힘드시겠지만 아이들 저녁까지만 챙겨주시면 조금 있다 데리러 가겠다는 말했다. 찬영 아버지께서는 먼 곳에 출장 다녀온 사람 편히 쉴 수 있게 아이들은 당신과 어머니가 잘 데리고 있을 테니 준서 엄마 편히 쉬게 해라고 말씀하셨다.  

아버지께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는 찬영의 목소리를 뒤로하고는 전화를 끊으셨다. 


아버지와 통화를 마칠 때쯤 샤워를 마친 산하가 주방으로 들어서자 찬영은 통화를 마친 핸드폰을 테이블에 올려놓으며 옆자리 의자를 빼주었다. 


"오래 기다렸죠?  여섯 시가 다 돼서 점심 아니라 저녁이네요"


"간단하게 먹고 쉬었다 조금 늦게 저녁 먹어요"


찬영이 빼준 의자에 앉으며 머리를 끄덕인 그녀는 와인이 담긴 잔을 찬영으로부터 건네받고는 단숨에 비웠다. 알코올 도수도 높지 않았고 시원하고 달콤한 맛이 열 시간이 넘는 비행으로 경직되어 있던 몸을 풀어주는 듯했다. 찬영은 빈 잔에 와인을 다시 채웠다. 


"이거 마시고 한 숨 자면 몸이 좀 풀릴 거예요"


천천히 식사를 하면서 산하는 점심도 거른 찬영이 잘 먹는 소고기 초밥을 찬영의 도시락에 담아 주었다. 

일주일 만에 만나게 된 찬영과 산하는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은 애틋하고 따뜻한 마음이 넘치도록 흘러나왔다.


“준서랑 진서 데리러 갈 시간 되지 않았어요?"


"아버지가 산하 씨 피곤하게 하지 말고 오늘도 거기에서 재우라고 하셨어요"


"그래도 돼요?"


"아버지께서 먼저 말씀하신 거니까 부담 갖지 말아요. 

내 생각에도 오늘은 애들이 와도 놀아주기 힘들 테니까 부모님 댁에서 재워요. 

준서도 우리 부모님이랑 잘 지내니까 걱정 안 해 돼요. 걱정되면 조금 있다가 내가 잠깐 다녀올게요"


자신을 위해 아들을 기꺼이 봐주신다는 아버님 말씀에 산하는 그렇게 하겠다는 말과 함께 부모님께 감사하다는 말을 꼭 전해 달라는 부탁도 잊지 않았다. 



소파에서 찬영과 함께 티브이를 보면서 쉬던 산하는 몸이 조금씩 처지는 것을 느끼고는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좀 누워야 될 거 같아요"


찬영은 자신에게 기댄 그녀를 안아서 안방 침대에 눕히고 얇은 여름 이불을 덮어 주었다. 

침대에 누워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산하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고 이마에 입맞춤을 해주었다. 


"밤에 자야 되니까 두 시간 정도만 자고 일어나요 시간 되면 깨워 줄게요.  

산하 씨 자는 동안 나는 애들 좀 보고 올게요"


머리를 끄덕인 산하는 얼굴을 만지는 부드러운 손길에 눈을 감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잠이 들었다.  

잠든 그녀의 이불을 다시 한번 정리한 찬영은 아이들을 보러 부모님 댁으로 가기 위해 집안 문단속을 하고 현관을 나섰다. 



찬영이 부모님 댁에 들어서니 거실이 조용했다. 

아이들이 벌써 잠자리에 들 시간은 아니었기에 아버지 서재로 걸음을 옮겨 노크하니 문이 열리면서 준서가 나왔다. 


"아저씨!?"


"준서 잘 놀고 있었어?"


"네. 엄마는요?"


"엄마는 집에서 주무시고 계셔. 여기서 뭐해?"


준서와 같이 문을 열고 들어가니 부모님과 진서가 언제 설치해 놓았는지 빔 프로젝트로 영화를 보고 있었다. 찬영의 목소리가 들리자 아버지가 잠깐 돌아보더니 다시 영화 화면으로 고개를 돌리셨다.


아이들에게 히어로 영화를 보여주는 것이 좋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재미있게 보고 있는 것을 방해하면 안 될 듯 해 찬영은 준서를 데리고 거실로 다시 나왔다. 


"준서 오늘도 여기서 자도 괜찮겠어?"


"네, 괜찮아요. 

할아버지가 엄마가 비행기를 열 시간 넘게 타고 와서 힘들다고 여기서 하루 더 자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랬구나, 엄마가 준서가 걱정되는지 잠들기 전에 아저씨한테 가서 보고 오라고 했어"


준서는 머리를 끄덕이면서 할아버지 집에서 노는 게 재미있다는 이야기를 해 찬영을 기분 좋게 했다. 

 

"엄마 혼자 자고 있어서 아저씨 이제 가야 되는데, 아저씨 없어서 이층은 안되고 할아버지랑 진서 있는 일층 게스트 룸에서 혼자 잘 수 있지?"


"네, 걱정 안 하셔도 돼요"


"그래. 너무 늦게 까지 놀지 말고 내일 일어나면 아저씨한테 전화해"


찬영은 준서를 서재에 다시 들여보내고는 혼자 잠들어 산하가 있는 집으로 다시 향했다. 




잠이 들었던 산하는 밖에서 들리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눈을 뜨니 창문 너머로 비추는 붉은 노을빛이 눈에 들어왔다.  해가 떨어지고 있는 것을 보니 밤이 되어가는 듯했다. 침대 위에서 짧게 스트레칭을 하고 가볍게 일어나 욕실로 들어가 얼굴을 씻고 머리를 정리했다. 

거실에서 노트북을 보고 있던 찬영은 문 열리는 소리에 머리를 드니 산하가 안방에서 나오고 있었다.  

그가 작업하던 노트북을 닫고 소파 위로 올라앉으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산하를 향해 팔을 뻗어 그녀를 옆에 앉히고는 안았다.


"일하고 있었어요?"


"김지석 대리 메일 확인하고 있었어요"


"아, 김 대리는 내일 출발하죠? 나만 편하게 쉬었네요"


"나는 잘 때 산하 씨 안고 있는 거면 충분해요"


한 침대에서 같이 자는 것이 익숙해진 산하는 부드럽게 웃으며 그을 바라보았다.


"준서랑 진서는 잘 있겠죠?"


"산하 씨 자고 있을 때 잠깐 다녀왔는데 걱정 안 해도 될 만큼 잘 놀고 있었어요"


"그래요? 어땠는지 궁금해지네요"


"아버지께서 빔 프로젝트를 설치하셨나 보더라고요. 

서재에서 애들이랑 영화를 보고 계셨어요. 진서랑 부모님은 저한테 신경도 쓰지 않아서 준서만 보고 왔어요. 

아버지가 준서한테 엄마가 열 시간 동안 비행기 타고 와 힘들 테니 하루 더 자고 가라고 말씀하셨대요"


"아버님도 무척 다정하시네요. 찬영 씨가 아버지를 닮아 다정한가 봐요”


"하하하, 산하 씨 말 들으니까 그런 것 도 같네요. 

아버지도 다른 사람들한테는 그렇지 않은데 어머니에게만큼은 다정하셨어요.  

요즘은 진서랑 조카들 한정이었는데 준서랑 산하 씨도 이제 포함된 거 같네요. 

아버지는 어머니가 결혼하고도 직장 생활할 수 있도록 많이 도와주셨어요. 그래서 누나랑 나는 일찍부터 자립심을 키우기도 했지만 대신 누가 터치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의 말을 듣고 있던 산하는 찬영만큼 부모님도 다정하고 자상한 분들이라 생각을 했지만 두 분이 좋은 분들이라는 것과는 별개로 자신으로 인해 진서에 이어 준서까지 돌보고 계시니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어깨 아래로 길게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던 찬영이 산하에게 물었다. 


"우리 저녁 먹어야 되는데 먹고 싶은 거 없어요?"


"음.. 크림 파스타요. 달달 한 게 먹고 싶어요"


"파스타 랑 샐러드만 얼른 만들어서 먹어요"


찬영이 일어나면서 산하의 손을 잡고 같이 주방으로 향했다. 


파스타 삶을 물을 올리고는 샐러드를 만들기 위해 산하가 냉장고를 열자 텅 비었던 냉장고가 넘치도록 꽉 차 있었다. 


"장은 언제 봤어요?"


"아침 먹고 공항 가기 전에 봤어요. 이렇게 먹을 일이 있을 거 같아서"


찬영이 그녀 입술에 가볍게 입맞춤을 하고는 끓는 물에 파스타 면을 넣었다.

세심하게 신경을 쓴 찬영 덕분에 다양한 야채를 꺼내 샐러드를 만든 산하는 펜트리에서 크림 파스타 소스를 꺼내 프라이팬에 부어 약한 불에서 가볍게 한번 끓이고는 짠맛을 조금 낮추기 위해 우유를 조금 넣은 후 익은 파스타 면을 소스에 넣고는 짧게 한번 더 끓인 후 접시로 옮겨 담았다. 


이제는 당연한 듯 나란히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하면서 찬영은 그녀의 얼굴 옆으로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귀 뒤로 쓸어 넘기고는 손으로 잡아 주었다. 자신의 머리카락을 잡아 주느라 찬영이 식사하는 게 불편해 보이자 산하는 파스타를 돌돌 말아 그의 입에 넣어 주기도 하고 와인을 마실 수 있게 잔을 입에 대 주기도 하면서 일주일 공백을 뛰어넘을 만큼 달콤한 시간으로 가득한 저녁시간을 보냈다. 



늦은 저녁 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 몇 개 되지도 않는 설거지까지도 같이 마쳤다. 


뒷정리를 끝낸 후 찬영은 출장지에서 돌아오지 않은 김지석 대리 업무 메일을 확인하기 위해 주방 테이블에서 노트북을 켜고,  산하는 찬영이 일을 하는 동안 따뜻한 국화차를 만들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자신도 출장지에서 작업했던 파일들을 살펴보면서 수정하거나 보강해야 될 부분들을 체크했다. 시간이 지나면 아무래도 기억이 희미해지기 때문에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정리를 해야 놓치는 것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늦은 저녁을 먹고 일을 시작한 두 사람이 노트북을 닫은 시간은 새벽 한 시가 넘어서였다. 

찬영과 산하는 잘 준비를 하기 위해 각자 욕실로 향했다.










이 글은 제가 창작한 이야기입니다. 

부족한 부분이 많이 있지만 재미있게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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