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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HAS May 11. 2023

소중해졌어요





진서가 좋아하는 노란색 이불을 덮고 누운 준서를 바라보며 찬영도 몸을 뉘었다. 


"준서가 집에서 안고 자는 고양이만큼 크지는 않지만 진서가 안고 자던 토끼 인형 있는데 그거라도 가져다줄까?"


"아니에요, 할머니 집에서도 인형 없이 그냥 자요. 

안고 자는 건 제 방에서 만이에요"


찬영은 준서 옆에 누워 이불을 정리해 주면서 같이 자는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일층에 게스트 룸이 있기는 한데 어른들이 사용하는 방이라 준서가 자기에는 불편하기도 할 거고 처음 온 날 혼자 자는 것보다 아저씨랑 같이 자는 게 좋을 거 같아서 같이 자는 건데, 이렇게 자는 거 불편하면 다음부터는 게스트 룸에서 혼자 편하게 잘 수 있게 해 줄게" 


"오랜만에 이렇게 자는 것도 괜찮은 거 같아요"


준서가 머리를 살랑살랑 끄덕이며 답했다. 


"오늘 자고 내일 진서랑 여기서 놀다 저녁 되면 엄마한테 가자.

내일 엄마 데리러 공항에 가야 해서 오후에 아저씨 집에 없는데 잘 놀고 있을 수 있지?"


"네, 할아버지랑 바둑 두는 것도 재미있고 진서랑 레고 만드는 것도 재미있어요"


아버지와도 제법 친해진 것 같아 찬영이 웃으면서 준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누구랑 같이 자는 건 다섯 살 이후 처음인 거 같아요"


"다섯 살 때부터 혼자 잤어?"


"네, 그 전에는 엄마랑 같이 잤어요"


준서는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어 주는 손길에 눈을 감고는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다섯 살 보다 더 아기였을 때는 기억이 별로 나지 않는데 기억나는 것들도 항상 엄마만 있었어요. 

아빠랑 뭔가를 같이하거나 같이 놀았던 기억이 없는 걸 보면 나를 안 좋았나 봐요"


머리를 만져주던 찬영의 손이 잠시 멈추었다가 천천히 다시 움직였다. 


"생일이나 명절에 선물은 챙겨주셨지만 같이 해 본 건 거의 없어요. 

유치원 행사에도 늘 엄마랑 할머니, 할아버지들만 오셨어요. 

오늘처럼 고기를 먹고 아이스크림을 먹었던 것도 엄마 말고는 아저씨가 처음이에요.

요즘 아저씨랑 같이 뭔가를 하는 게 재미있고 좋아요. 

그래서 엄마만큼 아저씨도 저한테는 소중해졌어요."


담담하게 말을 하고 있었지만 목소리에는 물기가 묻어났고 조금 떨리고 있었다. 

눈을 감고 있어 보이지 않았지만 엄마를 닮은 말간 눈에도 물기가 고여 있는 듯했다. 

찬영은 통상적인 위로나 어쭙잖은 말을 하는 대신 준서를 제 가슴으로 품고 천천히 등을 쓰다듬어 주면서 아픈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해지길 바랬다. 마음 깊이 숨겨 둔 말을 하고 싶어 자신을 찾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고난 성품이 온화하고 진중하여 작고 여린 마음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시간들이 상처로 남았음에도 누구에게 말하지 못하고 마음 깊은 곳에 묻으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철이 일찍 들어 버린 것 같았다. 


평소보다 다소 늦은 시간에 잠자리에 들어서인지 마음속에 품고 있던 말들을 해서인지 준서는 찬영 품에서 금방 잠이 들었다. 잠든 준서 얼굴을 살짝 만져보던 찬영은 때 이른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날씨 때문인지 땀이 송골송골 맺힌 게 느껴져 에어컨을 약하게 틀어 놓은 후 방문을 열어 놓고는 거실로 나왔다. 


일주일 동안 야근을 해서 몸이 무겁기는 하지만 준서 이야기를 듣고 나니 잠이 쉬이 오지 않을 듯하여 냉장고를 열어 맥주를 한 캔을 꺼냈다.  차가운 맥주가 유독 쓰게 느껴지는 밤이었다.  

준서에게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던 것은 자신도 진서에게 같은 아픔을 준 어른이기 때문이었다. 

손에 들고 있던 맥주를 단숨에 마셔버리고 한 캔을 더 꺼내 거실로 돌아와 테이블 위에 있던 핸드폰을 확인하니 돌아오는 비행기를 탔다는 산하 문자가 와 있었다. 

한숨 푹 자고 일어나면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착잡했던 기분이 조금은 풀렸다. 





커튼을 치지 않아 새벽부터 창문으로 비추는 햇살에 눈은 뜬 찬영은 품에 안겨 잠들어 있는 준서가 깨지 않도록 조용히 일어나 창문 커튼을 닫고는 운동하러 나가기 위해 일어났다.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일층으로 내려온 찬영은 신문을 보고 계시는 아버지께서 인사를 했다.


“일찍 일어나셨네요”


“어, 나이 들면 아침잠이 없어. 운동 나가게?”


“네, 준서 아직 자고 있어요. 혹시 내려오나 봐 주세요”


“알았다”


찬영은 아버지께 인사를 하고는 나가는 길에 게스트 룸에 들러 방 안을 둘러보고 운동하러 나갔다.



두 시간여 운동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마친 찬영은 자고 있는 준서를 깨웠다. 


“준서야, 일어날 시간이야”


아직도 깊은 잠을 자고 있는지 미동도 없는 준서를 깨우기 위해 찬영이 이불을 걷어내고 머리를 뒤로 쓸어 넘겨주었다. 


“아침 먹고 아저씨랑 외출해야 하니까 이제 일어나자”


꼼지락 거리는 작은 몸통을 두 손으로 주물러 주면서 잠을 깨워 주니 준서가 몸을 일으켰다. 

찬영은 준서를 안방 욕실로 들여보내고는 갈아입을 옷이 있는 가방을 가지러 이층 서재로 향했다. 



깨끗이 씻은 준서를 데리고 일층으로 내려오니 티브이를 보고 계시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께  인사를 했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오, 준서 일어났구나”


할아버지 반갑게 준서를 맞아 주셨다. 


“진서 깨우고 올 테니까 할아버지랑 티브이 보고 있어”


“네”


찬영은 준서를 깨우러 가기 전 주방에서 물 한잔 챙겨 준서에게 건네주고는 진서를 깨우러 갔다. 



잠시 후 진서를 안은 찬영이 거실을 지나 이층으로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진서를 씻기기 위해 이층 욕실로 가는 듯 하자 티브이를 보던 준서도 찬영을 따라 이층으로 올라갔다. 




아침 식사를 마친 찬영은 준서만 데리고 강남에 있는 키즈 전용 가구 매장으로 향했다. 

일층 게스트 룸에서 준서가 사용할 침대를 구매하기 위해서였다. 

찬영과 준서는 원하는 디자인이 나올 때까지 매장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화이트 톤의 빈티지한 디자인을 선택한 준서는 같이 사용할 침구까지 고르라는 찬영 말에 침대와 어울리는 크림 컬러를 선택했다. 결제를 마치고 집으로 배달을 요청한 찬영은 준서를 데리고 산하 집 근처 마트에 가면서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게스트 룸에 넣을 준서 침대와 침구 배달 사실을 알리고는 전화를 끊었다. 


일주일 출장으로 텅 비었을 것을 생각해 식료품과 과일 등을 구매해 준서와 함께 집 냉장고를 채워 넣었다. 

자신과 진서까지 와서 주말을 보내더라도 부족하지 않을 만큼 풍족하게 장을 봤다.  

냉장고를 채우고 간단하게 집안 청소까지 마무리 한 찬영은 준서를 데리고 부모님 댁으로 향했다. 



찬영이 준서랑 집 안으로 들어서자 어머니는 상의도 없이 일을 벌인 아들에게 잔소리를 하시고는 게스트룸에 있던 기존 침대는 던 침대는 월요일에 인부들을 불러 이층에 비어 있는 방으로 옮길 예정이라면서 준서 침대가 들어갈 공간을 만들어 놓으셨다.  잔소리를 마친 어머니는 침구류 세탁을 위해 세탁실로 가셨다. 



찬영은 아이들이 점심을 먹는 모습을 보고는 부모님께 준서와 진서를 맡기고 공항으로 출발했다. 

토요일 오후 시간에 공항까지 가는 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예정 이어서 서둘러 움직여야 했다. 직원들과 함께 오는 것을 알지만 기획팀 직원들은 두 사람이 만나는 것을 알고 있어 공항에 자신이 보인다고 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기에 출국장 앞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산하가 도착하는 시간보다 이십 여분 일찍 도착한 찬영은 벤치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벤치에 앉아 대기한 지 삼십 여분이 지난 뒤 출국장에서 나오는 산하 모습이 보이자 찬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떠날 때도 그랬지만 출국장으로 나오는 모습도 완벽하게 예뻤다. 


출국장에서 나오는 그녀를 향해 걸어가면서 전화를 걸자 산하가 핸드폰을 꺼내는 것이 보였다.  

걷던 걸음을 멈추고는 제자리에 서서 산하가 전화를 받자 찬영이 먼저 말을 했다. 


_”일주일 만에 보니까 더 예뻐졌어요”


산하는 핸드폰 너머 목소리에 주위를 둘러보다가 자신 앞에 서 있는 그를 발견하고는 환하게 웃으며 자신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있는 그에게 다가가 안겼다. 

산하를 따라 나오던 희수와 지안은 앞에서 그녀를 가볍게 안아주는 찬영을 보고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나왔어요?"


"산하 씨 도착 시간을 내가 모를 리가 없잖아요"


가벼운 포옹으로 인사를 한 찬영은 뒤이어 나온 두 사람에게도 인사를 했다. 


“두 분도 고생 많았어요. 주말 푹 쉬고 월요일에 회사에서 봐요”


"네, 저희 먼저 가겠습니다"


산하도 희수와 지안에게 인사를 하고 공항버스를 타기 위해 에스컬레이터로 이동하는 모습까지 확인했다. 

떠날 때와는 다르게 청바지에 체크무늬 롤업 남방을 걸친 모습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대학생 같아 보였다.  찬영은 한 손에는 캐리어를 또 한 손은 산하 손을 잡고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주차장에 도착한 두 사람은 트렁크에 캐리어를 싣고는 차에 올랐다. 

생각지도 못하게 찬영을 보게 된 산하도 일주일 내내 그녀를 기다렸던 찬영도 주차장까지 오는 내내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산하는 운전석에 앉는 찬영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가기 전에 봤던 얼굴하고 하고는 다르게 조금 까칠해 보이는 것이 매일 야근하면서 저녁도 제대로 챙겨 먹지 않은 듯했다.


"찬영 씨, 매일 야근했어요?"


"왜요?"


"월요일에 마지막으로 봤던 잘생긴 얼굴이 안 보여서요"


그녀 말에 찬영이 웃으면서 몸을 돌려 산하를 바라보았다. 


"야근하면서 도시락으로 대충 때웠죠?"


"식당까지 나가기 번거로워서요. 직원들도 같이 먹으니까 편하기도 하고"


"찬영 씨가 식당을 안 가니까 직원들도 어쩔 수 없이 도시락을 먹는 게 아닐까요"


"그런 생각은 안 해 봤는데, 그럴 수도 있겠네요"


"아빠가 짜장면을 먹는데 자식들이 탕수육을 먹을 수 없잖아요. 

찬영 씨 몸도 챙겨야 하지만 직원들 몸도 생각해 줘요. 

직장인들이야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밥은 제대로 먹이면서 일을 시켜야죠"


일주일 만에 만나서 구겨진 얼굴로 잔소리를 하면서도 눈은 찬영과 마주 보고 있었다. 산하 잔소리를 들으면서도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지워지지 않았다.  


"다음 주부터는 꼭 그렇게 할게요. 

산하 씨랑 직원들 때문이라도 제대로 먹어야겠네요"


다음부터 제대로 된 식사를 하겠다고 찬영이 대답을 하고 산하에게 입맞춤까지 하고 난 후에야 구겨졌던 그녀의 얼굴이 풀렸다. 


화창한 주말 오후 도로에 차가 많아서인지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정체가 계속되었다.


"산하 씨 집으로 바로 갈게요"


"준서가 기다리고 있어서 엄마 집으로 갈게요"


"준서는 어제 나랑 같이 부모님 댁에서 자서 지금은 진서랑 놀고 있어요"  


준서가 부모님 댁에서 잤다는 말에 놀란 산하가 찬영을 바라보았다. 


"어제 퇴근 시간에 준서가 전화를 했어요. 궁금해서 전화했다고 해서 같이 저녁 먹고 잠도 같이 잤어요. 

그래서 어제 뜻하지 않게 산하 씨 어머니를 뵀어요"


"찬영 씨가 곤란했겠네요"


"어머니가 뭘 물어보거나 그러지는 않으셨어요. 

준서가 종종 얘기해서 우리가 만나는 건 알고 계신 거 같았어요"


찬영이 제 엄마와 만났다는 이야기에 산하는 머리만 가볍게 끄덕일 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산하 씨, 어머니한테는 도착했다고 전화드려야 하지 않아요?"


"아. 깜박했어요"


산하는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내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저예요 지금 도착해서 집으로 가고 있어요"


_"고생 많았어. 공항버스 타고 오는 거야?"


"아니요, 찬영 씨가 공항으로 마중 나왔어요"


_"피곤할 텐데 마중까지 나갔어?"


"네"


_"준서가 어제 그 사람이랑 저녁 먹고 집에서 잔다고 갔어"


"방금 얘기 들었어요. 잘 놀고 있데요 걱정 안 하셔도 돼요"


_"다행이네, 피곤할 텐데 집에 가서 쉬어"


"그럴게요, 엄마도 쉬세요"








이 글은 제가 창작한 이야기입니다. 

부족한 부분이 많이 있지만 재미있게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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