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정시 퇴근을 하며 차에 오르자 핸드폰이 울리면서 화면에 준서 이름이 보였다.
찬영은 블루투스 스피커로 전화를 연결했다.
"준서 오랜 만이네"
"안녕하세요"
"이 시간에 전화를 하고 무슨 일 있어?"
"그냥 아저씨가 궁금해서 전화했어요"
"아저씨 보고 싶어서 전화한 거야?"
직설적인 물음에 핸드폰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쑥스러워할 준서 모습에 찬영은 웃음이 났다.
"아저씨 지금 퇴근하는데 준서 저녁 먹었어?"
"아직 안 먹었어요"
"그럼, 오늘 아저씨랑 저녁 먹을까?"
"좋아요"
"금요일 저녁이라 차가 좀 막히니까 일곱 시 조금 넘어서 도착할 거야.
할머니 집 앞에 도착해서 전화할 테니까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올 수 있지?"
"네, 갈 수 있어요"
"알았어, 도착해서 전화할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찬영은 전화를 끊고 시간이 지체되지 않도록 서둘러 차를 출발했다.
일곱 시가 조금 지나 도착한 찬영은 준서에게 전화를 하고는 차에서 내려 엘리베이터 앞에서 준서가 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서 준서가 할머니 손을 잡고 내리면서 찬영을 불렀다.
"아저씨"
찬영은 자신을 부르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준서와 그 뒤에 있는 할머니를 보게 되었다.
"할머니 아저씨예요, 아저씨 저희 할머니예요"
똑똑한 준서답게 할머니께 찬영을 먼저 소개하고 찬영에게도 할머니를 소개했다.
찬영은 깍듯하게 인사를 건네고 자신을 소개한 후 명함 한 장 꺼내 산하 어머니께 드렸다.
"준서가 혼자 내려갈 수 있다고는 했는데 걱정돼서 같아서 내려왔어요"
"아.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올라가서 데리고 왔어야 했는데 번거롭게 해 드려 죄송합니다”
"준서한테 자주 얘기를 듣기는 했는데,
잘 만났는지 확인은 해야 될 거 같아서 온 거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말아요"
"감사합니다.
제가 데리고 가서 저녁 먹고 데리고 오겠습니다"
준서를 차에 태우고 찬영이 어머니께 인사를 하고 차에 오르자 산하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가셨다.
차에 탄 찬영은 준서에게 먹고 싶은 게 있는지 물었다.
"준서 먹고 싶은 거 있어?"
"음... 고기요"
"그럼 고기 먹으러 가자"
찬영은 조용한 한우 고깃집에 차를 세우고는 준서와 함께 식당 안으로 들어서자 그를 알아본 매니저가 인사를 건넸다.
“어서 오세요. 꼬마 손님이랑 같이 오셨네요”
“비어 있는 룸 있어요?”
“네, 들어오세요”
찬영은 준서 손을 잡고 매니저가 안내하는 룸으로 향했다.
조용한 룸으로 들어간 찬영은 준서를 의자에 앉히고는 어린이가 먹기 편한 살치살과 꽃등심을 주문했다.
"엄마랑 이렇게 오래 떨어져 본 적 처음이지?"
"네"
"엄마랑 통화는 됐어?"
"아니요, 문자는 계속 왔는데 통화는 못했어요. 아저씨는요?"
"아저씨도 통화는 못했어. 우리가 낮이면 엄마가 있는 곳은 늦은 밤이어서 통화하기가 쉽지 않아"
찬영이 알맞게 익은 고기를 먹기 좋게 잘라 접시에 올려 주면서 준서가 먹을 수 있게 챙겨 주었다.
"그래도 오늘 밤만 더 자면 내일 오니까 괜찮아요"
"아저씨도 그렇게 생각해"
고기를 구워 접시에 옮겨 주느라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찬영을 위해 준서는 자신이 먹는 만큼 찬영 입에도 고기를 넣어 주면서 저녁을 챙겨 주었다. 준서가 주는 고기를 받아먹는 찬영은 행복한 미소가 보였다.
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 근처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포장용 패밀리 사이즈 하나와 준서가 먹을 컵 사이즈 하나, 찬영이 마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구매해서 테이블에 앉았다.
"날씨 더운데 유치원 다닐 만 해?"
"유치원은 에어컨 잘 틀어줘서 괜찮아요"
찬영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저씨도 날씨 더운데 회사 다닐만해요?"
자신이 한 질문을 거꾸로 받게 된 찬영은 큰 소리로 웃으며 대답했다.
"회사에서도 에어컨 하루 종일 틀어서 줘서 괜찮아.
그리고 더워서 회사 안 가면 백수 되는 거라서 회사는 더워도 추워도 꼭 다녀야 해"
백수가 되지 않으려면 더워도 추워도 꼭 회사에 나가야 한다는 대답을 들으면서 아이스크림을 떠먹던 준서도 머리를 끄덕여 주었다.
아이스크림을 다 먹은 준서는 찬영 손을 잡고 함께 차가 주차되어 있는 주차장으로 향했다.
주차장에 도착한 찬영은 뒷 자석에 준서를 앉히고 안전벨트를 메어 준 후 운전석에 올랐다.
"아이스크림은 집에 가서 바로 냉동실에 넣어야 해"
"네"
"오늘까지만 할머니 집에서 잘 자"
"... 네..."
대답하는 목소리에 힘이 빠진 듯해 찬영은 몸을 뒤로 돌려 준서 얼굴을 살폈다.
"준서 아저씨한테 말하고 싶은 거 있어?"
생각을 하는 듯 아무 말이 없던 준서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 오늘 아저씨랑 같이 자면 안 돼요?"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말이 준서 입을 통해 나와서 찬영은 잠시 당황했다
"아, 준서가 아저씨랑 같이 자고 싶구나.
그러면 준서 할머니께 전화로 먼저 말씀드리고 갈아입을 옷 챙겨서 갈까?"
"네"
"준서 핸드폰으로 할머니께 전화 걸어서 아저씨 바꿔 줄래"
준서는 서둘러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고는 할머니에게 아저씨 집에서 자겠다는 말을 하고는 찬영에게 전화를 건네주었다. 찬영은 준서가 자신과 같이 있고 싶어 하니 자신이 데리고 재운 후 내일 엄마가 오면 집으로 데려가겠다고 말을 하고 준서에게 필요한 것들을 챙기러 갈 테니 준비해 주십사 말을 했다.
할머니는 기다리고 있겠다는 말을 하시고는 전화를 끊으셨다.
찬영은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는 준서와 같이 할머니 집으로 올라갔다.
할머니는 저녁을 먹고 온 두 사람을 집안으로 들이시고는 준서에게 필요한 짐을 챙기라고 말씀하시고 찬영과 거실에서 짧게 이야기를 나누셨다.
“갑자기 이렇게 가도 괜찮은지 모르겠네요?”
“예전에 저희 집에서 놀다간 적도 있어서 괜찮습니다. 저희 부모님이 준서를 많이 예뻐하세요”
“애 둘을 보는 게 쉽지 않을 텐데..”
“준서가 어른스럽기도 하고 부모님 두 분도 계시니까 그런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짐을 다 챙겼는지 준서가 가방을 들고 거실로 나와 찬영 곁으로 다가왔다.
“필요한 거 다 챙겼어?”
“네, 할머니가 옷은 챙겨 주셨고 제가 필요한 것도 다 챙겼어요”
찬영이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을 건네받고는 준서 손을 잡고 어머니께 인사를 했다
“제가 잘 데리고 있다가 내일 산하 씨 오면 집으로 데리고 가겠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오늘 푹 주무 세요”
산하 어머니는 찬영 손을 잡고 나서는 준서를 현관까지 배웅했다.
준서와 함께 들어오는 찬영을 본 어머님은 오랜만에 일찍 퇴근 한 찬영보다 준서를 더 반기셨다.
"준서 저녁은 먹고 온 거야?"
"네, 아저씨랑 먹었어요"
"잘했네"
찬영은 보이지 않는 진서 행방을 어머니에게 물었다.
"진서는 벌써 잠들었어요?"
"아니야, 아버지랑 서재에서 놀고 있어"
찬영은 냉장고에 아이스크림을 넣어두고 준서와 아버지 서재 문 앞에서 노크를 했다.
안에서 들어오라는 소리에 찬영이 문을 열자 진서가 준서를 알아봤는지 오빠를 부르며 총총총 달려왔다. 찬영 아버지도 오랜만에 놀러 온 준서를 반갑게 맞았다.
"준서 오랜만이구나.
이렇게 늦은 시간에 온 걸 보니 오늘은 여기서 자는 게야?"
"안녕하세요. 여기서 자고 내일 엄마 오면 가요"
"엄마가 내일 도착하는구나. 오늘은 여기서 재미있게 놀다 자거라"
"네"
"진서야 씻고 잘 준비해야 "
오랜만에 오빠도 보고 아빠도 본 진서는 두 사람 손을 잡고 할아버지 서재를 나왔다.
찬영은 거실 소파에 준서랑 진서를 내려놓고는 옷 갈아입고 올 테니 기다리라고 하고는 이층으로 올라갔다.
양복을 벗고 가벼운 옷으로 갈아입은 찬영이 거실로 내려와 진서와 준서 둘을 데리고 이층으로 갔다.
욕실에서 준서에게 새 칫솔을 꺼내 주고 세면대 앞에 둘이 나란히 세워 놓았다. 준서는 혼자서 양치와 세수를 모두 끝내고는 진서가 쓰는 로션까지 찾아서 발랐고 진서는 찬영이 씻겨 주었다.
준서와 진서 모두 잘 준비가 끝나자 찬영은 준서에게 진서 재우고 올 동안 이층 서재에서 책을 보고 있으라고 말을 하고는 서재 문을 열어 놓고 진서를 안고 일층으로 향했다.
아이 둘을 동시에 재워야 해서 정신이 없었지만 준서가 조금 커서 진서를 재울 동안 자신을 기다려 줄 수 있다는 게 다행스러웠다.
부모님은 혼자 두 아이를 케어하는 찬영을 거실에서 지켜보기만 할 뿐 선뜻 나서서 도와주겠다는 말씀을 하지는 않으셨다. 당신들에게 부탁을 하지 않았기에 혼자 할 수 있다고 생각하셨다.
일층으로 진서만 데리고 오는 것을 본 찬영 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나 이층으로 올라가 준서를 찾으셨다.
이층 서재에서 책을 읽고 있는 준서를 발견하시고는 맞은편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셨다. 볼 때마다 찬영과 닮았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러는지 자꾸 눈이 가는 아이였다.
친 손자가 아니라는 안타까움이 있지만 준서 엄마와 결혼을 한다고 하면 손자가 될 수 있다는 마음에 섭섭함이 조금은 가시는 듯했다.
찬영은 진서를 침대에 눕혀 주고는 낮은 목소리로 동화책을 천천히 읽어 주었다.
매일 퇴근이 늦어 아빠 얼굴을 자주 보지는 못했지만 전화를 해 떼를 쓰거나 하는 경우가 없이 또래 아이들에 비해 의젓한 아이였다.
한참 책을 읽다 진서를 보니 산하에게 선물 받은 아기 상어를 가슴에 꼭 끌어안고는 어느샌가 잠이 들어있었다. 주먹만 한 볼 위에 붙어있는 머리카락을 정리하고 얼굴에 가볍게 입맞춤을 해 주고 얇은 여름 이불을 잘 덮어 주고는 방에서 나왔다
찬영이 이층 서재로 올라오니 아버지가 준서와 함께 서재에 계셨다.
"준서야, 이제 자러 가자. 아버지도 이제 주무세요"
준서를 데리러 찬영이 서재로 들어오자 아버지도 자리에서 일어나시면서 머리를 끄덕이셨다.
"자러 가야지.
진서 보다 컸다고 해도 아직 일곱 살 아동이야. 아무도 없는 곳에 혼자 두는 거 아니다"
아버지는 아무도 없는 이층에 혼자 있는 준서가 걱정되어서 올라오신 것이었다. 진서에 비해 어른스럽기는 했지만 아버지 말씀처럼 초등학교도 입학하지 않은 아이라는 것을 자신이 간과했던 것이다.
"앞으로 조심할게요, 안녕히 주무 세요"
"안녕히 주무 세요"
찬영에 이어 준서가 인사를 하니 할아버지는 준서에게 손을 흔들어 주시고는 계단을 내려가셨다.
찬영이 준서를 제 방으로 데리고 가자 준서가 그를 바라보았다.
"아저씨랑 같이 자는 거예요"
"응, 오늘은 아저씨랑 같이 잘 거야"
"흠..."
"왜? 같이 목욕도 한 사이에 같은 침대에서 같이 자는 건 안 되는 거야?
아저씨 침대 넓어서 네가 뒹굴면서 자도 돼"
여러 번 굴러도 될 만큼 큰 침대를 본 준서는 머리를 끄덕이며 침대 위에 있는 작은 베개에 머리를 대고 눕자 베개와 세트인 노란색 어린이용 이불을 찬영이 덮어 주었다.
어른인 자신과 같은 이불을 덮고 자다 혹여라도 좋지 않은 일이 생길까 진서 이불 중 준서가 덮고 자기 괜찮은 이불을 찾아서 가져다 놓았다.
이 글은 제가 창작한 이야기입니다.
부족한 부분이 많이 있지만 재미있게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