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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HAS May 11. 2023

눈빛에서, 손 끝에서, 일상의 단어에서 조차도







새벽 네 시 알람이 울리자 먼저 눈을 뜬 찬영은 알람을 끄고는 품에서 잠들어 있는 산하를 깨웠다. 


"산하 씨, 일어날 시간이에요"


자신을 깨우는 목소리에 산하가 눈을 뜨자 그녀를 바라보고 있던 찬영과 눈이 마주쳤다. 

잠이 덜 깬 그녀의 두 눈에 차례로 입을 맞춘 찬영은 그녀가 일어날 수 있도록 품에서 놓아주었다. 

위태로웠던 지난밤과는 사뭇 다른 부드럽고 스윗 한 새벽을 맞이 했다.  

침대에서 벗어난 산하는 안방 욕실로 찬영은 거실에 있는 욕실로 이동해서 빠르게 나갈 준비를 했다. 



드레스 룸에서 가지고 온 양복으로 갈아입은 찬영은 넥타이를 손에 든 채 소파에서 산하를 기다리고 있었다. 산하는 장시간 비행기를 타야 해서 가볍고 움직이기 편한 랩 스타일 롱 원피스를 입고 머리는 자연스럽게 풀어 내리고 비행기 안에서 걸칠 카디건을 가방과 함께 손에 들고 안방에서 나왔다. 

소파에 앉아 있던 찬영은 산하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지긋이 바라보았다. 


"이 모습을 못 봤으면 엄청 후회할 뻔했어요. 

출장 가서 혼자 다니지 말고 어떤 남자라도 말 걸면 못 알아듣는 척해요"


자리에서 일어난 찬영이 산하에게 다가가 긴 머리카락을 쓸어 주면서 협박 아닌 협박을 하니 산하가 말갛게 웃으며 그의 옷을 정리해 주었다. 


"넥타이 제가 해 줄까요?"


말없이 머리를 끄덕이며 손에 있던 넥타이를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넥타이를 건네받은 산하는 와이셔츠 깃을 세우고는 넥타이를 목에 걸어 윈저 노트 형태로 매듭을 짓고 셔츠 깃을 내려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얼굴에 가볍게 입맞춤까지 하고는 슈트 재킷을 들어 그가 입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새벽 일찍 일어난 순간부터 그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떠나질 않고 있었다.   


"넥타이 많이 매 봤어요? 예쁘게 잘 매 졌어요"


"대학교 다니면서부터 아빠 출근하실 때 자주 해 드려서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어요"


예쁘게 매진 넥타이를 매만지고는 그녀 입술에 짧은 입맞춤을 했다.  

아슬아슬하게 위태로웠던 밤과는 달리 은밀한 터치와 달달한 말들 속에 서로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흘러넘치도록 달달한 새벽이었다.  준비를 마친 찬영은 한 손에는 서류 가방을 다른 한 손에는 현관 앞에 있는 큰 캐리어를 산하는 한 손에 가방을 다른 한 손에는 작은 캐리어를 끌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산하를 먼저 보조석에 태우고 자동차 트렁크에 캐리어를 실은 찬영이 차에 오르면서 공항으로 출발했다. 

출근 시간 전인 이른 새벽이라 도로에 차들이 많지 않아 예상보다도 일찍 공항에 도착한 두 사람은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는 공항 내 카페로 들어섰다. 

새벽부터 일어나 자신 때문에 공항에 들렀다 회사로 바로 출근을 해야 하는 찬영이 너무 오래 빈속일 것을 걱정해 가볍게 샌드위치라도 먹자고 산하가 말했기 때문이다.


"오늘 점심은 조금 일찍 먹어요. 이거 먹어도 찬영 씨는 조금 있으면 배고플 거 같아요"


카페에 나란히 앉아 그녀를 마주 볼 수 있도록 몸을 돌린 찬영이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긴 머리카락이 얼굴을 가리지 않도록 한 손으로 잡고 있어 먹는 것이 불편하진 그를 위해 양손을 다 쓸 수 있는 산하는 그가 음료수를 마실 수 있도록 컵을 들어 빨대를 입에 대 주기도 하면서 짧은 시간이지만 둘은 서로에게만 집중하면서 충분한 애정을 나누었다.  


패션과 낭만이 있는 도시로 가는 해외 출장이지만 여성들만 다니면 질이 좋지 않은 나쁜 사람들의 타깃이 될 수 있기에 찬영은 걱정 어린 말들을 하고 있었다. 


"내 걱정은 하지 말고 조심히 다녀요. 

여자 셋만 가는 것도 걱정인데 누구라도 혼자 떨어지면 위험하니까 화장실도 꼭 셋이 같이 다니고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전화해야 돼요"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찬영 입술에 묻어 있는 작은 빵 부스러기를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털어 주고 그와 눈을 마주 보면서 맑고 환한 미소를 지으며 행복하게 웃었다.  

이른 새벽시간이라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애틋하게 애정 충만한 모습은 주변에서 바라보고 있던 모든 사람들 조차 가슴 설레게 만들어 버렸다. 


같이 출장을 가기로 한 직원들과 만나기로 한 시간이 다 되어가자 두 사람은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났다. 

공항 내부에 에어컨이 틀어져 있어 그런지 다소 쌀쌀한 듯한 실내 온도에 산하는 준비한 카디건을 원피스 위에 걸치고 찬영과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산하와 헤어진 후 밖으로 바로 나가지 않고 동행하는 직원 두 명 모두 도착해서 티켓팅을 끝내고 입국장으로 들어가는 모습까지 확인한 후에야 공항을 빠져나갔다. 



여자 친구를 출장을 보낸 후 혼자 출근하는 차 안에서 찬영은 그녀를 생각하며 미소 짓고 있었다. 

연애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멀리 출장을 떠나는 그녀가 빨리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자신이 이상하기도 했지만 이런 애틋한 감정을 느끼게 된 것이 살짝 설레기도 했다. 

아직까지 달달한 데이트는 제대로 하지 못했지만 주말이면 아이들과 함께 한 집에서 부대끼고 생활하면서 만난 시간에 비해 빨리 가까워지게 되었고 서로에 대해 많이 알 수 있게 되어서 무척이나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어머니 말대로 둘에게는 만난 횟수나 시간이 중요하지는 않았다.  


가볍게 입 밖으로 표현하지 않을 뿐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서로를 만지는 손 끝에서, 서로에게 말하는 일상의 단어에서 조차도 사랑을 말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다만, 한 번의 실패를 경험했기에 앞으로 한 걸음을 내딛는 것이 무척이나 조심스러울 뿐이었다. 

 

연애라는 감정을 느끼며 이성을 만나는 것이 그에게는 산하가 처음이었다. 

그래서 자신이 스스로 먼저 선택했고 그런 자신을 선택한 그녀와 끝까지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이 강하기에 어설프고 섣부르게 행동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조금 이른 시간에 회사에 출근한 찬영은 최종 미팅에서 지석이 추가로 올린 출장 스케줄을 다시 확인하고는 주간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 대 회의실로 이동했다. 

각 팀별로 지난주에 있었던 중요한 내용을 공유하고 이번주와 다음주에 진행될 업무들에 대해 공유하는 시간이기에 상당한 시간을 소요하는 회의다.  

영업 일 팀장이 지난주 중요 사항을 보고하고 있는 중에 대표님이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 오셨다. 

찬영과 직원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하고 찬영이 자리를 대표님에게 내어 주었으나 정중히 사양하시고 그 자리에 서서 당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만 빠르고 정확하게 전달하시고는 회의실을 나가셨다. 


"앞으로 두 번 기회는 없습니다.

또다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되면 당사자 실명 공개 및 해당 내용 모두를 공개할 예정입니다. 

대표이사인 나는 최종 결정만 할 것이며 실무에 대한 모든 권한은 윤찬영 상무에게 일임합니다. 

회사에 관련된 모든 보고는 윤찬영 상무를 거친 후 비서실을 통해서만 전달받겠습니다"


회의실에서 대표님 메시지를 듣는 사람들 중 몇몇 임원은 가시방석에 앉은 것처럼 회의하는 내내 그 자리가 불편하였을 것이다. 대표님은 부러 사람들이 불편하라고 회의 중간에 들어와 메시지를 남기고 나간 것이라 찬영은 생각했다. 



업무 보고 회의가 끝난 후 찬영은 인사 팀장을 따로 불러 디자인팀 평가 변경안 준비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 중간 보고를 받았다. 인사 팀장은  초안으로 만들어진 서류를 찬영에게 보여 주었고 찬영은 수정해야 되거나 추가해야 될 사항들을 알려 주고는 다른 팀 업무평가 수정안도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초안 작성은 해당 팀장들에게 제출 기한 일주일을 주고 인사팀이 취합하고 일차 보고를 해달라고 한 후 팀장들이 제출한 내용은 팀장 인사고과에 반영하겠다는 내용도 같이 전달하라고 말하고 회의를 마쳤다.



산하가 비행기를 탔다면서 핸드폰을 끄기 전 마지막 통화를 한 후로 한 시간에 한 번씩 시계를 확인하고 있는 찬영은 도착하려면 아직 멀었는데 하루가 한 달 같이 시간이 흐르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도착했다는 전화를 기다리는 것과는 별개로 야근까지 하고 퇴근 한 찬영은 아침에 산하가 매 준 넥타이를 푸는 것이 아쉬워 드레스 룸에서 넥타이를 매만지면서 거울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 비행기 안에 있기에 연락을 하지 못하는 것인데도 연락조차 못하는 것이 이렇게나 힘든 줄 처음 알았다.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눕자 이른 새벽부터 하루를 시작해 누구보다 바쁘게 보낸 그는 바로 잠이 들었다. 

산하가 없는 동안 유일하게 일찍, 깊게, 푹 자는 날이었다.






전략팀 직원들과 TFT 관련 회의가 한창 진행 중일 때 찬영 핸드폰이 짧게 울렸다. 

재킷 안쪽에서 핸드폰을 꺼내 문자를 확인했다. 산하로부터 잘 도착했다는 문자였다.

회의를 하고 있어 끝나면 연락하겠다는 답장을 보내고는 핸드폰을 닫았다.


찬영은 회사 직원들에게 젠틀하기는 했지만 진중하고 점잖은 성격으로 직원들이 선뜻 다가가기 힘들었기에 김선호 차장과 전략팀 직원들을 제외하고는 개인적으로 말을 섞는 사람은 기획팀 김지은 실장을 포함 몇 명 되지 않았다.  

그래서 김선호 차장은 구내식당에서 찬영이 산하에게 먼저 인사를 건넬 때 예사롭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날 이후 무언가 모르게 분위기가 바뀐 찬영을 보고 두 사람이 만나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었다. 

지금도 핸드폰을 보는 짧은 시간 동안 그의 얼굴에서 설핏 미소가 보였다는 것을 김선호 차장은 알아보았다.



회의를 마친 찬영은 사무실로 들어와 산하에게 전화를 걸었다.  


"산하 씨! 잘 도착했어요?"


"네, 잘 도착했어요. 문자 기다릴 거 같아서 했는데 회의는 잘 끝났어요?"


"잘 끝났어요, 바로 움직이는 거예요?"


"네, 호텔에 체크인하고 바로 움직이기는 하겠지만 첫날이라 편집샵 두 군데 정도만 찾아보려고요"


"알았어요. 어디서든 남자 조심! 차 조심해요"


"네, 그럴게요"


긴 통화는 못했지만 핸드폰 너머 맑게 웃는 그녀 목소리가 들려오자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산하와 통화를 마친 찬영은 김선호 차장에게 현재 본사와 거래 중인 생산처 현황이 정리된 파일을 가지고 들어오라고 한 후 그와 함께 거래처를 등급별로 구분을 지어 계약 완료 시 연장할 곳들과 계약을 종료할 업체들을 선별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계약 종료 거래처의 경우 앞으로 계속 생산해야 할 상품을 그대로 생산할지 다른 업체로 이동을 해야 할지를 결정해야 하는데 이 부분은 상품 기획팀과 디자인팀 의견이 반영이 되어야 하기에 전략팀에서는 업체를 등급별로 나누어 계약 종료해야 거래처들만 선별해 놓고 차후 기획팀과 미팅을 진행하기로 했다. 


상품 생산 거래처 조정은 민감한 사항이기 때문에 최소 인원만 알고 있는 것이 본사로서는 관리가 훨씬 쉬워지기 때문에 찬영과 선호를 제외하고는 어떤 사람도 이 내용을 알 수가 없도록 보안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이 글은 제가 창작한 이야기입니다. 

부족한 부분이 많이 있지만 재미있게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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