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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HAS May 11. 2023

부탁할게요





찬영과 진서 사이의 냉전은 부모님 집에 도착해서도 계속 이어졌다.

기분 좋게 나갔던 진서가 화난 표정을 하고 집에 들어서는 모습을 본 어머니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지만 찬영은 별일 아니라는 말 만하고는 진서를 거실에 두고 짐을 정리하러 이층으로 올라갔다. 


진서를 혼내거나 화를 내는 일이 없던 찬영이 뭐라고 했는지 아빠를 닮아 한 성격 하는 진서도 할머니 물음에 대답도 하지 않고 할아버지가 있는 서재로 들어가 버렸다. 



이층 서재에서 노트북을 보고 있는 찬영 핸드폰이 울렸다. 산하 전화였다. 


"산하 씨"


_"진서는 괜찮아요?"


"일 층에서 할아버지랑 있어요"


_"그냥 두지 말고 내려가서 한 번 봐요. 

아직도 화나 있으면 제가 통화해 볼게요"


"시간 지나면 풀릴 거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_"그러지 말고 내려가서 보고 전화 줘요.  제가 말해 볼게요."



찬영은 대답 없이 핸드폰을 귀에 댄 체 제 이마를 쓸어내리고 있었다. 



_"찬영 씨, 제가 부탁할게요. 

그렇게 놔두면 진서 상처받을 거예요"


부탁한다는 말에 찬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일 층으로 향했다. 


"알았어요, 내려가서 보고 전화할게요"


_"네, 기다릴게요"



일 층 서재에 도착한 찬영이 노크를 하니 문이 열리면서 어머니가 나오셨다.



"무슨 일인데 잘 울지도 않는 애가 울고 그러는 거야"


"진서 울어요?"


"아버지한테 안겨서 울고 있어 들어가 봐"


문을 열고 들어가자 할아버지한테 안겨 있는 진서 뒷모습이 보였다. 

찬영이 진서를 여러 번 불러도 꼼짝하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진서, 아빠랑 얘기 안 할 거야?"


진서는 말을 하고 싶지 않다는 듯 할아버지에게 안겨 머리만 흔들었다.  

찬영은 작게 한숨을 쉬고는 산하에게 전화를 걸었다. 



_"찬영 씨"


"진서 바꿔 줄게요 잠시만요, 진서 전화받아"



아빠가 하는 어떤 말에도 한 번의 움직임도 없이 그대로 있을 뿐이었다. 

딸에게도 같은 말을 여러 번 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찬영이 마지막으로 다시 말했다. 



"마지막이야. 엄마 전환데 지금 안 받으면 그냥 끊을 거야"



엄마 전화라는 소리에 진서가 얼른 고개를 돌려 아빠 얼굴을 한번 보고 손에 있는 핸드폰을 보더니 할아버지한테서 내려와 아빠에게 다가오자 찬영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산하 씨, 진서 바꿔 줄게요"


진서는 아빠한테서 핸드폰을 전해 받고는 서재 바닥에 그대로 앉아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집중하면서 핸드폰을 귀에 대고는 말없이 숨만 쉬고 있었다. 


_"진서야, 아빠랑 집에 잘 갔어?"


_"아빠가 진서가 미워서 집에 간 게 아니라 엄마가 내일 비행기 타고 일하러 가야 해서 엄마 힘들까 봐 진서랑 집에 가신 거야. 엄마랑 오빠는 여기서 자고 아빠랑 진서는 할머니랑 할아버지랑 같이 자는 건 알고 있지?"


진서는 핸드폰 너무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대답은 하지 않고 머리만 끄덕이면서 핸드폰을 꼭 쥐고 있었다. 


_"엄마 비행기 타고 일하러 갔다 와서 주말에 같이 놀아 줄테니까 이제 마음 풀 수 있지? 

진서 엄마한테 목소리 안 들려줄 거야?"


"... 네..."


_"착하네, 착한 진서가 아빠한테 화를 낸 건 잘못한 거니까 엄마랑 전화 끊고 나면 예쁜 목소리로 아빠한테 '죄송합니다' 하고 말하는 거야. 알았지?"


"네"


_"엄마 만날 때까지 아빠랑 할머니, 할아버지 말씀 잘 듣고 잘 놀고 있어야 해. 

다음에 만나면 잘 지냈는지 물어볼 거야"


진서는 머리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_"잘 때 엄마 목소리 듣고 싶으면 아빠한테 전화해 달라고 해"


"네"


_"진서야, 이제 전화 아빠한테 바꿔줄까?"


진서가 밝아진 표정으로 찬영에게 핸드폰을 건네주고는 아빠 손을 잡자 찬영이 한 팔로 안고는 핸드폰을 넘겨받았다.



"산하 씨"


_"진서 괜찮아졌어요?"


"그런 거 같아요. 지금 저한테 안겨 있어요"


_"다행이에요. 찬영 씨가 조금 더 달래줘요"


"그럴게요"


_"끊을게요"


"네, 이따 전화할게요"



 찬영이 전화를 끊고 핸드폰을 뒷주머니에 넣고는 자신에게 안겨 있는 진서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죄송합니다"



진서는 산하가 말한 데로 아빠한테 사죄 말을 했고 그 말을 들은 찬영은 피식 웃으면서 머리를 만져 주었다. 찬영 아버지는 자신 앞에서 손녀와 영화를 찍고 있는 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는 그런 딸이 있어서 좋겠다"


"좋네요. 아버지도 이런 딸 하나 더 낳지 그러셨어요"


찬영이 피식 웃으면서 대답하니 아버지는 아들을 노려 보시면서도 애틋하고 애교 넘치는 진서와 찬영 부녀 사이가 좋아 보여 웃으셨다. 

당신 딸도 찬영만큼이나 드라이하고 차분한 성격으로 어릴 적에도 진서 같은 애교를 보인 적이 없어 아쉬웠는데 손녀딸은 지 아빠를 닮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명칭은 엄마로 확정이 된 거야?"


"당장은 아니어도 나중에는 그렇게 될 거니까 괜찮아요"



결혼을 하겠다는 은유적 표현을 들은 아버지는 기대에 찬 표정으로 찬영을 바라보았다. 




찬영은 진서를 안고서는 이층 서재로 향했다. 

서재 소파에서 진서와 같이 앉아 책을 보던 찬영은 산하가 무슨 말을 했는지 궁금해 진서에게 넌지시 물었다. 


"진서야, 엄마가 뭐라고 했어?"


"엄마 비행기 타고 일하러 가야 한다고. 

엄마 목소리 듣고 싶으면 아빠한테 전화해달라고 하랬어. 

아빠한테 죄송합니다 하라고도 했어"


다리 위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딸 머리 위로 입맞춤을 해 준 찬영은 책을 마저 읽어 주었다. 

아빠 책 읽는 목소리에 취해 잠이 들었는지 진서 머리가 앞으로 쑥 떨어지는 것을 손으로 받친 찬영이 읽고 있던 책을 테이블에 내려놓고는 진서를 안아 제 방 침대에 뉘었다. 


방문과 서재문을 열어 놓은 채 책상에 앉은 찬영은 산하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전화 연결음이 한참 지난 후에 산하 목소리가 들렸다. 


_"찬영 씨"


"바빴어요?"


_"바쁜 건 아니고 준서 원복 다림질하고 있었어요. 진서는 괜찮아요?"


"같이 책 보다 막 잠들었어요"


_"여기에서 나갈 때 표정이 제가 볼 때는 너무 귀여웠는데 부모님 집에서 별일 없었어요?"


"할아버지한테 안겨서 울고 있었어요. 

산하 씨 말 듣고 내려가 보길 잘한 거 같아요"


_"다행이에요, 일찍 해결돼서"


"앞으로도 산하 씨 말 잘 들어야겠어요"


_"하하하, '결자해지'라고 저 때문에 부녀지간에 싸움 난 거니까 제가 해결해야죠"


"고마워요. 산하 씨 아니었으면 진서랑 소원 해질 뻔했어요"


_"아니에요, 찬영 씨가 제 말 듣고 진서한테 가서 해결된 거잖아요"


"진서한테 처음으로 사과도 받았어요"


_"안 잊어버리고 잘했네요"


찬영은 산하와 길지 않게 더 통화를 한 후 기획팀에서 올린 출장 일정을 살펴보았다. 



낮잠을 자고 일어난 진서가 아빠 방에서 나와 서재로 걸어 들어오는 걸 본 찬영이 자리에서 일어나 진서를 안아 주었다. 


"가서 물 마시자"


진서를 안고 일층 주방으로 내려가 물을 먹이고 식탁 위에 앉히고는 진서 머리카락을 정리하려고 하는데

다른 건 제법 하지만 머리 손질은 아직도 익숙하지가 않아 어머니에게 부탁했다. 



산하와 통화를 하고 난 이후부터 진서는 아빠를 포함해 어른들이 하는 모든 말을 잘 들었다. 

할아버지는 매사 조용했던 손녀가 산하와 통화를 하고 난 이후부터 미묘하게 바뀌었다고 생각했다. 

찬영 아버지는 저녁을 먹으면서 진서에게 전화로 무슨 얘기를 했는지 질문을 했다. 


"진서야, 엄마랑 통화할 때 무슨 얘기 했어?"


"엄마 비행기 타고 일하러 간다고 했어요"


무슨 뜻인지 해석하라는 아버지 눈빛을 받은 찬영이 해외 출장을 간다고 해석해 주니 아버지가 격하게 머리를 끄덕이셨다.


"아! 그리고 또 무슨 말했어?"


계속되는 아버지 질문에 찬영이 태클을 걸었다.


"어린애가 통화 한 내용을 뭘 그렇게 물어보고 그러세요. 엄연히 사생활 침해예요"


정작 본인도 물어보기는 했지만 아버지가 물어보는 건 마음에 들지 않아 진서 숟가락에 반찬을 올려주면서 그가 말했다.


"자꾸 진서한테 물어보면 저희 집에 도우미 부르고 여기에 안 와요"


"지금 협박하냐!? 그럼 네가 뭐라도 말을 해 보던가.

네가 말을 안 하니까 애한테 물어보는 거 아니야"


아버지가 식사를 하시다 갑자기 목소리를 높이면서 말씀하셨다. 


"진서 밥 먹다 놀래요. 목소리 낮추세요"


손녀 밥 먹다 놀란다는 소리에 할아버지가 급격히 소리를 낮추어 다시 말했다. 


"그러니까 뭐라도 얘기를 해봐"


아버지 말에 어머니도 수저를 잠시 내려놓고는 찬영을 바라보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만난 지 얼마 안 됐어요. 잘 만나고 있으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직장 다니고 있어서 평일에 못 보니까 주말에 애들도 같이 만나는 거예요"


"네들 나이에 만나는 횟수가 중요한 게 아니잖아. 

집에서 자고 올 정도면 단순하게 만나는 정도는 아니라는 거잖아. 맞아?"


그동안 궁금했지만 말을 못 하고 있던 어머니도 적극적으로 대화에 참여하셨다. 

찬영은 진서가 밥을 먹을 수 있도록 반찬을 챙기면서 산하가 불편해지지 않은 만큼의 정보를 오픈했다. 


"연애 조금 더 하다 결혼하기로 했어요, 언제 할 건지는 물어보지 마세요.

주말에 지금처럼 그 집에 갈 수도 있고 그 사람이 저희 집으로 올 수도 있고 그래요. 됐죠? 식사하세요. 

참고로 제가 다른 곳으로 이사 나가는 일이 생기지 않게 주말에 저희 집에 찾아오는 등의 일은 하지 마세요"


"준서 엄마는 나이가 어떻게 돼?"


식당에서 본 이후로 아버지는 계속 궁금했던 걸 물어보셨다. 


"서른 넷이에요"


"서른넷!  보기보다 나이가 있구나.  난 훨씬 어린 줄 알고 걱정했는데"


"저도 처음에 아들 있다는 얘기 듣고 놀랐어요"


찬영과 아버지 사이에 오고 가는 대화를 듣던 어머니가 이상함을 알아차렸다. 


"네 아버지는 준서 엄마 본 적 있는 거야?"


"아니야, 식당에서 밥 먹고 있는데 찬영이랑 들어오는 걸 나 혼자 멀리서 봤어"


아버지가 서둘러 대답하셨다. 


멀리서 라도 얼굴을 봤다는 아버지 때문에 찬영 어머니는 준서 엄마라는 사람이 더 궁금해졌다.  



청문회 같았던 저녁 식사가 끝나고 찬영은 진서를 일층에  잠시 두고 이층 드레스 룸에서 내일 출근하면서 들고 갈 와이셔츠와 넥타이, 속옷, 양말까지 챙겨서 서재 소파 위에 올려놓았다. 


진서가 잠들기 전에 씻기기 위해 이층 방 욕실로 데리고 갔다. 

산하가 뭐라고 했는지 모르겠지만 평소보다 더 말을 잘 듣는 진서 때문에 씻기는 것이 수월해져서 다른 날 보다 유독 딸이 더 예뻐 보였다.

자신을 닮아 한 성격 하는 진서가 고집을 부리거나 말을 안 들을 때면 엉킨 실타래를 푸는 것처럼 대화하는 게 어려웠는데 오늘은 산하 덕분에 화해를 빨리하게 되어 마음이 홀가분했다. 

산하에게 딸이랑 대화하는 방법을 배워 볼까 생각도 했다.  



침대에 누운 진서에게 책을 읽어 주면서 머리를 만져 주는데도 눈을 감지 않고 자신을 계속 바라보는 것이 원하는 게 있는 듯했다. 


"아빠한테 할 말 있어?"


"어.... 네... "


평소에는 아빠한테 반말을 하다 뭔가 잘못을 하거나 부탁을 할 게 있으면 존댓말을 사용했다.


"뭔데, 얘기해 봐"


"... 엄마한테 전화해 주세요.."


찬영이 읽던 책을 덮고는 진서를 바라봤다. 


"진서야, 아빠랑 약속 하나만 해"


진서가 머리를 끄덕여 보였다.


"아빠가 이렇게 재워주는 날에는 괜찮지만, 아빠 늦게 와서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진서 재워주는 날에도 엄마한테 전화해 달라고 하면 안 되는 거야. 아빠랑 약속하면 엄마한테 전화해 줄게"


진서는 꼭 약속을 지키겠다면서 아빠랑 손가락 걸고 약속을 했다. 

어리기는 하지만 약속한 것은 잘 지키는 아이라 찬영도 승낙을 하고는 산하에게 전화를 걸자 연결이 바로 되었다. 


"산하 씨"


_"네, 무슨 일 있어요?"


"진서가 목소리 듣고 자겠다고 해서 전화했어요"


_"아, 바꿔 주면 제가 말할게요"


"스피커 폰으로 바꿀게요, 잠시만요"


스피커 폰으로 전환해서 누워 있는 진서 배 위쪽으로 전화를 대 주었다.


"진서 말해도 돼"


늦은 밤인 걸 아는지 진서가 조용히 불렀다


"엄마" 


_"진서 이제 자는 거야?"


"응"


_"엄마랑 약속한 거 잘 지켰어?"


"응, 밥도 많이 먹고 아빠랑 할머니랑 할아버지 말도 잘 들었어"


_"진서가 약속을 잘 지켜서 엄마가 아주 많이 행복하네"


"진서도 많이 행복해"


_"하하하, 진서가 예쁜 얼굴만큼 말도 예쁘게 하네. 

이제 전화 끊고 잘 자고 내일 어린이집도 잘 가"


"응"


산하와 통화가 흡족했는지 진서가 눈을 감았다. 

찬영은 진서가 눈을 감았다고 전해 주고는 통화를 마무리했다. 

눈을 감고 잠을 청하는 진서 머리를 잠이 들 때까지 부드럽게 만져 주었다. 











이 글은 제가 창작한 이야기입니다. 

부족한 부분이 많이 있지만 재미있게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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