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의 첫 직장 생활, 그 다음 컨설턴트로서의 격렬했던 배움의 시간 뒤 삼성전자에 ‘경력직’ 이라는 이름을 달고서 입사를 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회사 내 경력직 입사자 비율은 현저히 낮았던지라 경력직 출신은 보통 다소 신기한 인물이라는 시선을 받으며 일을 했다.
내가 그러한 시선을 받았던 것만큼, 대기업 공채로 커리어를 시작해서 10년, 20년을 일하고 있는 동료/선배를 비롯해 임원이 되어 30년 가까이 한 기업에 헌신하고 있는 분들도 내게는 모두 신기한 분들이었다. 내 세대의 아버지들이 보통 그러하셨듯 나의 아버지도 처음 몇 년 간의 교사 생활 이후에는 국내 처음 생기기 시작한 공중파 방송사의 보도국에서 30년 근속 후 퇴직하셨는데, 내가 사회 생활을 시작하며 느끼게 된 그 세월의 무게란 내가 감히 상상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머리말에서 언급했듯이, 어떠한 자리이든 배울 점이 넘치는 시기가 있고 한 템포 쉴 수밖에 없는 시기가 있으며, 조직의 염증이 진저리 쳐 질 만큼 잘 보이다가 또 왠만하면 내가 얻는 실제적 이득에 비해 별 일이 아닌 것으로 소화가 되어 내적갈등이 마무리되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을 참아내면서 한 곳에 뿌리를 두고 오래도록 자라는 꾸준한 길을 선택한 이들이 나는 오히려 더 대견해 보였다. 그들의 눈에는 ‘전배’라고 하는 어려운 이름을 달고 있는(그리고 이름만큼이나 어려운 프로세스를 거쳐야 하여 문턱이 높은) 사업부 간 이동도 쉽게 결정하는 것 같고 외부의 기회가 있을 때 삼성전자라는 회사도 흔쾌히 떨치고서 직장을 옮길 줄 아는 내가 신기한 사람이었겠지만, 한 가지 일에 오랜 뿌리를 내려 짙은 색으로 물들이는 이들이 내 눈에는 더 대단해 보였다. 그래서 그 분들이 그 곳을 떠나는 내게 부럽다 이야기할 때 나는 ‘내가 성질 급한 사람이라 그렇다’고 웃어 넘겼고, 사실 그게 진실인 면도 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한 곳에 머물러 두터운 토대를 함께 쌓은 끝에 소비자들이 사랑하는 훌륭한 성능, 멋진 디자인, 최고의 내구성을 가진 IT제품의 역사를 쓴 사람들이었다. 그 회사, 그리고 내가 몸담았던 사업부의 제품(노트북PC 및 크롬북)을 볼 때마다(그리고 쓸 때마다. 나는 누가 뭐래도 삼성노트북의 팬이다), 역시 인텔의 엔지니어들이 한 세대의 칩을 개발하는 것이 마치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 여기는 것을 보고 느꼈던 비슷한 감정을 떠올리게 된다.
당시 Strategic Alliance라는 생소한 이름을 달고, 아직 시장 확장 초기였던 크롬북(Chromebook) 사업을 둘러싼 회사 간 여러 입장을 챙기느라 상품기획/PM 쪽 임원과 개발임원을 번갈아 모시고 구글 본사에 분기에 한 번씩은 출장을 다녀가며 품을 팔았다. 어느 나라에 크롬북을 먼저 출시할 지, 타 제조사들이 발을 들여놓기 전 삼성 크롬북만 배타적인 권리를 가져가려면 구글에 뭘 주어야 하는지, 공동 홍보는 어떤 식으로 가져갈 수 있는지, 이러한 이야기를 구글에 하려면 당연히 상품기획/디자인/개발/PM/세일즈 부서에 숙제가 나갔고 회의를 하여 결론을 내야 했으며 양사 간 합의된 사항에 대한 추진을 위한 후속 숙제가 또다시 생겨났다.
물리적으로 출시가 되는 IT제품을 위해 구체적인 부분을 맡아 뛰느라 매일이 바쁜 실무진들 눈에는 임원들 모시고 출장이나 다니며 합의를 끌어 낸다고 회의나 자꾸 소집하는 사람(그것도 외부에서 들어온, 이질적인 경력직)이 충분히 반갑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런데, 삼성PC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나를 value add라는 것을 하는 사람으로 받아주고 구글 측에 이야기할 일이 생길 때 나를 찾아 주었다. 그것은 그들이 이미 본인이 하는 일이 ‘정말 중요하’다는 자각과 조직이 부여해 준 본인의 역할, 그리고 출시되는 제품에 대한 확신이 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 확신이 기반이 되지 않은 경우, 이질적인 이가 조직에 흘러 들어올 때 사람들이 내보이는 전형적인 반응은 노골적 견제 또는 적대감이다.
구글이라는 만만치 않은 상대를 대상으로 제품 관련 협의를 끌어낸 뒤에도 상품기획, 개발, 영업 등 하나의 제품을 둘러싸고 각기 다른 임무를 부여받은 부서들이 서로 다른 셈 법을 둘러싸고 각을 세우는 와중에서, 그닥 시니어는 아니었던 차장 정도의 경력직이 들어와 조직의 생리를 배워가며 여러 일을 중재하는 것을 두고 기특하다는 시선으로 함께 해 주었던 그들은, 나이를 더 먹은 지금 돌아보니 사실 대단히 성숙한 사람들이었다.
그 부서를 떠나온 지 한참이 지나 모시던 임원분들도 퇴임하시고 한참의 세월을 뒤로 하고 이직하신 분들도 있지만, 들려오는 소식을 가끔씩 들어보면 그들 중 많은 이들이 여전히 서로 지지고 볶아도 정 붙이고 사는 가족같이 그 자리에서 뿌리 박고 자라고 있다. 오랜 세월을 두고 떠나는 사람에 대한 아쉬움, 남아 있는 자들에 대한 역시나 진한 정 붙임. 결국 떠났으니 내 것이 되지 않았으나, 그 낭만은 나도 내 것이 아니나마 따뜻하게 부럽다. 그것은 그들의 인내에 대한 따뜻한 보상이 아닌가 싶다. 지금의 세계에 무슨 낭만이냐 싶지만, 어떤 형태의 정서적 보상이든지 그것은 사는 데에 힘이 되게 마련이다.
전자제품 전시장에서 분명 그들의 손을 탔을 물건들을 발견하면 손으로 꼭 쓸어 본다. 그러면 매 고비마다 마음에 떠오를 여러 생각을 눌러 담고 꾸준한 길을 걸어 매해 발전된 물건을 내놓는 그들이 존경스러이 생각난다. 끈기라는 이름으로 바꿀 수 있는 세월이 주는 정서의 역사는 아무나 가질 수 없다. 난 성숙했던 그들에게서 그걸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