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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정희 Dec 22. 2022

아마존에 대한 이야기

마이크로소프트는, 보통 삼성을 ‘관리의 삼성’이라고 부르는 것 이상 철저한 관리 체계에 기반하여 운영되는 기업이다. 각 조직들이 가지고 있는 명확한 색깔, 직원에 대한 철저한 인사/평가/보상 체계, 매 분기마다 정확함을 자랑하는 매출 forecast, 큰 문제없이 돌아가는 ERP(Enterprise Resource Planning) 및 CRM(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 시스템, 켜켜이 구분하는 고객 세그멘테이션에 기반하는 영업 전략부터 때로는 고객까지 옴짝달싹 못하게 만드는 MS윈도즈/오피스 라이선스 정책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관리 체계가 씨줄날줄로 엮여 회사가 운영된다. 추격자 위치일 수밖에 없는 클라우드 사업을 구축하는 데에 있어서도 마이크로소프트는 지름길을 찾기보다는, 오래고도 철저한 관리의 버릇을 버리지 않았다.


관리에 대한 회사의 집착은 일선에서 아마존 클라우드(정확한 이름은AWS, Amazon Web Services이다) 고객을 빼앗아 오느라 안그래도 에너지 소모가 큰 각국 지사들, 그 중에서도 특히 지사 영업 직원들의 불만을 부르곤 했다. 고객사 실무자들로부터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마존은 스타트업 정신이 살아 있어 고객에게 과감히 돈을 뿌린다더라’고 하니, 현장의 직원들은 답답했을 것이다. 고객과의 전략적 업무 제휴를 위한 얼마 간의 비용조차 APAC 총괄 조직의 1차 검토를 거쳐 본사의 허락이 떨어져야 집행할 수 있는 구조 아래, 일선의 어려움을 지켜보며 관리자로서 조력 또는 간섭을 해야 하는 지사의 Finance 팀으로서도 아마존에 대한 이야기는 진심 부러운 내용이었다. 실제로 한국 내 큰 기업의 클라우드 관련 Bidding에 AWS코리아와 정면으로 붙었을 때, 이중삼중으로 거쳐야 하는 프로세스와 시원하지 않은 투자 규모로 인해 마이크로소프트 코리아가 실기(失期)하는 일이 생기기도 했다. 그렇다 보니 나 역시 그런 부분에서는 AWS가 궁금했다. 30살 가까이 된 공룡이 어떻게 스타트업처럼 산다는 것일까?


그래서 마이크로소프트에 다닌지 만 2년이 되었을 때 AWS코리아로 오라는 이야기가 나오자 나는 크게 주저하지 않았다. ‘클라우드 시장을 알게 되었으니, 그 시장을 만들어 리더를 하고 있는 회사에도 다니고 싶다’ 하는 욕심 하나에 기반한 결정이었다. 시원하게 로컬 시장에 투자한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하는 궁금증도 있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여전히 사랑하고 있었지만, 클라우드 1등 회사임에도 스타트업 정신이 살아있다는 글로벌 회사를 내 회사로 만들고 싶다는 욕심으로 뱃속의 나비가 다시 한 번 팔랑거렸다. 삼성전자가 이미 훌륭했고 마이크로소프트는 그보다 더욱 세련된 방식으로 발전하고 있었으니 아마존도 비슷한 결의 글로벌 회사일 것이라 생각하기도 했다.


각자가 사업을 위해 전산실(혹은 대규모의 자체 데이터센터)을 운영하고 그를 위해 신규 인력을 뽑고 때에 따라 서버 업그레이드를 위한 투자 부담을 져야 했던 상황에서 기업을 해방하는 대규모 클라우드 시대를 만들어 낸 아마존은, 외부에도 잘 알려져 있는 ‘Day 1 정신(항상 시작하던 날의 마음 가짐으로 집중한다는 뜻)’으로 무섭게 성장해 왔다. 아마존 닷컴으로 시작한 회사가, 그 사업을 위해 기막히게 노하우를 쌓은 물류 사업(FBA: Fulfillment by Amazon) 및 클라우드(AWS: Amazon Web Services) 등의 영역으로 영리하게 확장하고, 그럼으로써 새로운 시장을 스스로 창출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보면 아마존은 대단한 회사임에 틀림없다.

다만, 사업 영역과 진출 국가, 전세계 직원 수 모든 것에 있어 급격한 스케일업을 추구한 아마존은 글로벌 대기업이 되었음에도 철저한 관리와는 거리를 두었다. 역설적이게도 이 모습은, 자체 데이터센터 구축을 하며 살아온 고객사들을 클라우드 세계로 초대할 때에 때때로 필요했던 파격적 할인이라든지 클라우드 전문인력을 파견하여 사업 구축을 돕는 등의 과감한 투자 결정을 내리는 데에 속도감을 더하는 요인이기도 했다. 외부에서는 그것을 ‘스타트업 같은 대기업’이라고 표현한 것일 수 있고, 그것은 다시 아마존의 명확한 색깔로 자리 잡았을 것이다.


그런데 글로벌 대기업임에도 스타트업 같다는 아마존 방식이 궁금하여 입사했던 아마존 클라우드(AWS)가, 내 눈에는 흥미롭게도 마이크로소프트의 클라우드 관리 방식을 궁금해 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런 식(=전통적 윈도즈OS와 MS오피스 매출을 예측하고 관리하느라 모두를 옥죄는 철저한 관리 방식)으로는 고객에게 클라우드 전환을 설득할 수 없다’고 믿었던 내외부적 예측과는 달리 마이크로소프트의 클라우드 서비스 ‘Azure’는 AWS를 무섭게 추격하고 있었다. 후발 주자임에도 Azure는 2020년 들어서기 전 이미 글로벌 기준 AWS 시장점유율의 1/3 이상을 넘어서고 있었고, 회사의 이익에도 상당한 기여를 하기 시작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그런 식’이 AWS입장에서 그 무렵부터 충분히 경계가 되었을 것이다. AWS가 시장 개척자로서 독보적인 기술을 앞세워 독식하던 클라우드 영역은, 2010년대 후반부에 들어서면서는 마이크로소프트/구글 등의 공개적인 도전과 아낌없는 투자로 인해 이제 치열한 경쟁을 해야만 지킬 수 있는 시장이 되었다. 즉 마켓 리더인 AWS도 매출과 비용 관리에 철저해야만 훌륭한 재무상태로써 시장에 강력한 메시지를 던지는 플레이어로 남을 수 있다는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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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사정이 그렇게 변해가고 있는 줄 모르고 AWS에 조인한 나는 내심 많이 놀랐다. 아직 shaping 할 것이 많은 회사였고, 그래서 스타트업 같고, 다이나믹 하며, 그래서 더 생생한 경험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큰 어려움 없이 결정을 내려 조인한 그 회사에 다니는 내내 많이 고통스러웠다.

누가 지시하기 전 내가 맡은 일의 본질이 손에 금방 잡히는 것 같고, 내가 나를 위해 무엇을/조직을 위해 무엇을/나와 함께 하는 주니어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보이는 것 같은 나이와 위치가 되었던 것은 마찬가지였음에도 왜 마이크로소프트에서의 하정희는 만족했고 아마존에서의 하정희는 왜 힘겨웠는지.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시각으로 해석해보자면, 그것 역시 ‘자연스러움’의 문제가 아니었나 싶다.  회사도 개인과 마찬가지여서, 하던 버릇대로 일할 때 자연스럽고, 맞지 않는 옷을 급하게 입을 때 부자연스럽게 행동하게 되어 있다.


클라우드 시장 진입 후 회사 내외부 모두를 답답하게 만들었던 ‘관리의 마이크로소프트’ 식 확장 과정은 그 회사가 원래 살아온 방식이었던 만큼,몇 년 간의 불만은 있었을지언정 직원들에게 얼마간 익숙한 광경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이전 제품들을 SaaS화 하여 클라우드 제품군으로 묶어 어필하고 관리하는 과정도 사실 크게 혼란스럽지 않은 방식의 확장이었다. 물론 전통의 관리 방식을 클라우드 시대에 맞게 정착시키느라 내부적으로 많은 이들에게 인내를 요구하는 어려움을 반드시 거쳤지만, 다른 경험을 거친 뒤 돌아보는 지금 굳이 말하자면, 그 정도 어려움은 사실 우아한 역사였을 뿐이었다고 회사를 감히 칭찬하고 싶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공룡이 자연스럽게 견딜 수 있는 최대한의 변화를 회사 스스로의 시계에 맞추어 받아들인 것이었다.

사실 그러한 관리 방식은 마이크로소프트만의 전통이 아니었다. 국내 글로벌회사 영업 출신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내가 ‘마이크로소프트 방식’이라고 알고 있던 관리 체계는 전통적 IT 공룡, 즉 델/HP/IBM 등으로 대변되는 글로벌 IT회사들이 매출을 관리하는 데에 전형적으로 쓰던 관리 방식이었다고 한다.


 AWS는 그러한 50년 된 마이크로소프트라는 공룡의 사업 관리 방식을 빠른 시간 안에 차용하고자 했다. 그런데 AWS가 과감한 투자 방식으로 영업 직원과 고객을 감동시키며 클라우드 시장을 창출하는 데에 집중하는 동안 아마도 의도적으로 (선택과 집중을 위해) 신경을 덜 쓴 부분이 몇 가지 있는데, 그것이 빠른 시간 내에 관리 방식을 새로이 정비하는 데에 있어 내부인들이 어려움을 겪는 원인이 되었다.


예를 들자면, 마이크로소프트가 자체적으로 개발하여 본인들 사업 관리에 seamless 하게 쓰이고 있는 CRM/ERP(=Dynamic 365), 여러 그룹에서 격무에 시달릴 직원들이 엑셀/워드/파워포인트로 협업하는 데에 있어 version 관리 필요 없이 동시에 작업할 수 있게 해 주는 Office 365,  Slack의 컨셉을 모방했다는 내외부적 의심을 거둘 수 없지만 결국 더 잘 만든 데다가 품질 좋은 화상 회의를 진행할 환경까지 결합해 버린 TEAMS 라는 협업 툴.

이것들은 마이크로소프트에게 있어서 내부 관리용일 뿐 아니라, 고객에게 판매하는 주요 전략 제품들이기도 했다. 이러한 환경 아래에서는 다음과 같은 스토리를 내세우기에도 적절했다 – “직원들의 시간을 아껴주는 장치를 회사가 이렇게 많이 마련해 두고 있으니, 잘 쓰고, 그 경험을 기반으로 영업도 잘 해 달라. 직원의 삶이 중요하다는 공감 능력 정도는 회사가 가지고 있다”


주요 IT 기업의 장단점을 비교 분석하는 책과 블로그 및 기사들 가운데 어떤 곳에서도 이러한 면을 조명한 경우를 보지 못했으나, 나는 이것이 매우 중요한 차이였다고 느낀다. AWS는 그러한 툴들의 필요 및 효용에 대한 정리된 시각과 철학을 세우기 전, 빠른 시간 내 철저한 관리 방식으로 회사를 탈바꿈 하기 원했다.


결과적으로 나와 우리 팀원들은 효율적 협업을 돕는 Office 365/TEAMS 등의 툴 없이 방대한 사이즈의 오프라인 식(마이크로소프트에서는 이것을 '온프렘' 또는 on-premise'라고 부른다) 엑셀 데이터를 버전 관리 하면서, 방대한 사이즈의 데이터를 조각조각 합치다가 오류가 없는지 몇 번이고 확인하고, 그러다 노트북이 데이터 프로세싱을 못해 통채로 멈춰버리면 망연자실 화면을 바라보다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시간을 허비했다. Forecast 걱정이 없이 초과 매출을 항상 달성한 호시절을 4-5년 보냈기에 CRM에 일관된 방식으로 세일즈 계획을 입력할 필요가 없었던 영업 직원들은, 이제 급작스러운 회사의 요구 앞에 불만이 많았고, 급작스러운 입력을 거친 데이터는 신뢰성이 떨어지게 마련이라, 우리는 데이타 입력 방식을 그나마 통일하기 위해 영업 리더들과 직원들을 설득하고, 해석이 되지 않는 데이터를 이해하기 위해 전화로 확인하느라 시간을 쓰면서 매주 '연간 forecast'를 APAC과 본사에 올렸다. 이런 류의 과정은 사실 회사 영업 DNA를 바꾸는 일이며 몇 년이 걸려도 이상하지 않은, 내부 설득과 교육이 필요한 과정이었지만 회사는 공식적인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와 동시에 매월 결산이 나오면 결산과 forecast 간 차이가 나는 원인을 주요 어카운트마다 분석해 영문으로 보고서를 올렸고, 분기 별로 지사 전체의 영업 계획을  APAC 리더에게 보고하는 것이 행사였는데, 그를 위해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여러 리더들이 제공하는 영문 Word 보고서의 의미를 해독 하느라 밤을 새우다 결국 새로운 구조로 영작하는 일을 반복했다.


적절한 툴과 시스템 없이도 촉박한 시간 아래 DNA를 바꾸어야 하는, 진정 스타트업 정신을 요구 받는 조직이었다. 다른 점은, AWS는 이미 연간 수십 조를 벌어들이는 글로벌 회사이며, 수만 명 직원이 얽힌 살림을 꾸려야 하는 공룡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전혀 자연스럽지 않았다.


(..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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